"내가 출연한 사극도 연극도 피의 역사"
이방원·수양대군 역할 이어
극단선택하는 예술가 담은
연극 '레드' 화가 로스코役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수양대군, 연산군, 흥선 대원군… 배우 유동근을 떠올리면 곤룡포를 입은 근엄한 임금이 떠오른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불호령을 내리는 왕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친숙한 그는 최근 약 30년 만에 연극 '레드'로 무대에 돌아왔다.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유동근은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마크 로스코로 완벽하게 변신을 끝낸 상태였다.
그는 연기인생에서 맡았던 굵직한 역할과 이번 배역에 대해 "결국 통하는 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방원이 됐건 수양대군이 됐건 모두 피의 역사니까요. (연극 레드에서도) 훅 지나가는 대사 안에 섬뜩함이 있어요. 로스코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비극이라는 것을 아주 가까이 하며 살았던 인물입니다."
작품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였던 로스코가 1958년 뉴욕 고급 레스토랑에 걸리게 될 벽화를 의뢰받고 작업하던 중 계약을 파기해버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크고 작은 캔버스와 물감이 담긴 양동이가 가득한 작업실에서 스승인 로스코와 조수 켄이 나누는 대화가 중심을 이룬다. 피카소, 잭슨 폴록 등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름들부터 철학, 종교, 음악, 세대교체, 인생까지 다양한 논쟁이 무대 위에 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동안 드라마 촬영장이 주무대였던 유동근은 연극 무대로 복귀해 매회 새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수염 붙이고 왕 연기만 하다가 프로이드, 니체를 논하고 있으니까 놀랍죠. (웃음) 지금까지도 대본을 놓지 못합니다. 대사를 다 외웠어도 허덕이고 분석하고 떠드는 수밖에 없어요. 끝없는 열정,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걱정과 공포, 이 작품만이 갖고 있는 메시지를 로스코를 통해 전달해야 하니까요."
작품은 100분간 진행되는 2인극인 탓에 대사량이 어마어마하기로 유명하다. 유동근은 "이순재 선배님이 연극을 보러 오셨다가 '그 많고 어려운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냐'고 놀라시더라"며 "남들보다 3주 정도 먼저 연습을 시작하고 제작사 측에 부탁해 발성과 호흡법을 연습했다"고 열의를 표했다.
미래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을 다룬 연극처럼 그도 젊고 어린 배우들이 몰려오는 현실이 두려울까.
그는 "그런 두려움은 없다"고 못박으면서도 "예전만큼 좋은 작가와 오리지널 창작성이 높은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방송계 현실이 걱정스러울 뿐"이라고 쓴소리를 남겼다. 다음달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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