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나문희 "우리 할머니들도 구박받으면서 이겨내야지"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나문희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우물을 파왔지만, 자신이 한 곳에 굳어있길 바라지 않는다. 전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나문희의 무기이자 힘이다.
코로나19를 딛고 3년 만에 개봉하게 된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제작 JK필름)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다.
나문희는 극 중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역을 맡았다. 나문희는 "제가 괜히 조마리아 여사님한테 누를 끼칠까 봐 걱정했다"며 "아들을 희생시키려는 엄마의 힘을 못 표현할까 봐 출연을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윤제균 감독의 '끈질긴' 설득이 있진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나문희는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더라"며 "영화 '하모니' 때 윤제균 감독과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의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래도 저를 믿으니까 시키시지 않았겠냐"고 웃음을 보였다.
특히 조마리아 여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아들 안중근 의사의 희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작품 내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지만, 어쩌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다.
나문희는 "너무 엄청난 분이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희생시킬 수 있냐. 아직도 저는 공감이 잘 안 간다"고 고백했다.
또한 나문희는 극 중 명장면으로 꼽히는 조마리아 여사가 직접 아들 안중근의 수의를 짓는 장면을 언급하며 "기가 막혔다. 지금도 생각하면 속이 울멍울멍해진다. 목까지 울음이 차올랐다. 오히려 연기로 표출된 건 덜한 것 같다. 그것보다 훨씬 더 속마음이 많이 슬펐다. 말로써 표현하는 것도 안되더라"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나문희는 "사실 슬픈 연기를 할 때 우리 식구들을 떠올린다. 조금 미안하긴 하다"며 "동시에 기도도 한다. '내가 연기할 때만 쓸 테니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없게 해 주세요'라고 많이 기도했다"고 이야기했다.
'영웅'은 국내 최초 라이브 녹음 방식을 선택했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배우들이 현장에서 직접 넘버를 소화했다.
연기와 동시에 노래까지 병행해야 하는 탓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런 나문희를 도운 것은 피아노를 전공한 큰딸이었다. 나문희는 "딸에게 레슨을 받았다. 호흡 같은 건 좋다고 하더라. '영웅'이나 '뜨거운 씽어즈'를 할 때 부지런히 레슨을 받아서 호흡을 많이 갖고 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문희는 "일반 연기와 차이점은 느끼지 못하겠다. 그냥 하라면 한다. 저도 이제 많이 늙었다. 대중이 생각하는 그런 힘은 없다"며 "다만 사는 날까지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고 웃음을 보였다.
동시에 아들 안중근 역을 맡은 배우 정성화의 남다른 친화력 덕분에 더 큰 감정이 끌어 올랐다. 나문희는 "정성화는 그냥 아들 같았다. 우리 딸보다는 어리지만 처음부터 아들처럼 '훅' 들어왔다"며 "그러다 보니 보낼 땐 정말 아들을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슬펐다"고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와 함께 나문희는 "안중근 의사는 의병 대장으로서 죽임을 당할 걸 알면서도 끝까지 일본 사람에게 굴하지 않았다"며 "그런 부분에서 조마리아 여사가 대단한 것 같다. 그런 아들의 뜻대로 하라는 게"라며 "엄마 입장에선 아들이 10살이어도, 30살이어도, 50살이어도 내 자식은 아이 같다. 어떻게 내 자식한테 그럴 수 있겠냐. 제가 아무리 표현하려고 해도 훨씬 덜 표현된 것 같다. 실제로 조마리아 여사의 속은 어땠겠냐"고 털어놨다.
앞서 나문희는 '영웅'을 비롯해 영화 '아이캔스피크'에서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이에 대해 나문희는 "그동안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비극적인 걸 많이 해왔다. 다만 제 입장에선 가벼운 게 많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호박 고구마"라며 "할머니라고 무거울 필요는 없지 않냐. 우리 할머니들도 어떨 땐 구박을 많이 받지만, 구박을 받으면서도 이겨내야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나문희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숏폼 플랫폼 틱톡에서 활동 중이다. 나문희는 "그걸 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내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면 그게 또 재밌더라"며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은 나를 '하이킥'으로 안다. 맨날 호박 고구마를 가져오더라"고 말했다.
어느덧 배우로 60년 넘은 인생을 살아온 나문희는 여전히 연기를 '사랑'한다. 나문희는 "나에게 있어 에너지, 원동력은 그냥 생각을 하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것 같다. 60 몇 년 동안 하나의 일을 해오면 벼르지 않아도 그만큼은 나온다"며 "나는 이 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난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아울러 동료 배우들에 대한 응원도 전했다. 나문희는 "요즘 (김)영옥이가 TV를 틀면 나오더라. '오징어 게임'에 나왔을 땐 박수를 쳤다. (고)두심이도 안 나오는 게 없다. 너무 잘한다"며 "이순재 선생님도 전에 같이 일해보니까 대학교에서 계속 수업을 하고 계시더라. 이번에 연극 '갈매기'도 연출하셨는데 꼭 보려고 한다. 선생님이 너무 애쓰신다. 신구 선생님도 정말 감동이다. 얼마 전에 '모범형사2'에 나온 박근형도 쉬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끝으로 나문희는 "주인공 하기 싫다. 귀찮다. 작은 배역으로 꿀 따 먹는 거 하고 싶다"며 "배우로서 책임까진 몰라도 사명감은 있다. 우선 관객이 공감을 많이 해야 하니까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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