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王과 세 명의 딸

문일호 기자(ttr15@mk.co.kr) 2023. 1. 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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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 분석 시리즈
성기학→YMSA→영원무역홀딩스→영원무역
YMSA 존재로 저평가된 홀딩스 저가 탈출?

아웃도어의 왕과 세 명의 딸이 있다. 왕은 세 딸 모두와 함께 왕국을 건설했다. 왕이 나이를 먹으면서 다음 왕위를 결정해야했다. 왕은 일단 첫째 딸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궁궐 밖에서 수완을 발휘한 둘째 딸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둘째 딸은 승계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아웃도어 왕국은 겨울에 더욱 인기가 높아지는 ‘겨울왕국’이다. 이제 딸은 아버지를 뛰어넘을 아웃도어를 직접 제작할 심산이다. 다른 나라 이름 뒤에서 돈을 버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내년에 이 왕국은 생긴지 50년이 된다.

이 아웃도어는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등으로 유명하다. 노스페이스는 직접 만들고, 룰루레몬은 주문이 들어오면 상표를 붙여주고 파는 OEM 방식이다. 이쯤되면 이 왕국이 영원무역그룹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은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오리털로 점퍼를 만들면서 성공했다. 무역 규제를 받지 않는 방글라데시를 중심으로 생산 공장을 세운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글로벌 의류회사들이 원하는 최고의 품질과 소재로 승부하다보니 명성이 쌓였고, 결국 노스페이스의 국내 판권을 따내면서 지금의 왕국이 이뤄졌다.

그러나 왕국을 세우는 것 보다 왕위를 물려주는게 힘든 과정이다. 열심히 일만 하다보니 어느덧 딸들은 성장했고, 자신은 나이가 8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 딸들은 아버지 회사에서 각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장녀 성시은씨는 원래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와이엠에스에이(YMSA)에서 사내이사를 맡으면서 영원무역의 리더가 될 것 처럼 보였지만 비슷한 시기 해외에서 활동한 둘째 성래은씨에게 밀렸다. 성시은씨는 이제 그룹내 사회공헌활동을 맡고, 성래은씨는 최근 그룹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승계 레이스는 일단락됐다.

다음 회장이 지목됐지만 실제 승계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도 영원그룹의 지배구조는 옥상옥(지붕 위의 집)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 지배구조는 ‘성기학 회장→YMSA(비상장)→영원무역홀딩스→영원무역+영원아웃도어(비상장)’구조로 성래은 부회장의 존재감은 없다. 결국 성기학 회장과 YMSA가 성래은 부회장의 지주사(영원무역홀딩스) 지분 확대에 도움을 줄 것이다. 현 지배구조에서 ‘성기학’과 ‘YMSA’가 사라지고 ‘성래은’이 올라가는 순간 영원무역그룹의 승계작업은 마무리된다.

YMSA 지주사 제외하고 홀딩스 체제 전환

둘째 딸 성래은 부회장, 차기 회장 낙점돼

영원무역그룹 핵심 지배구조도
일단 YMSA는 정식 지배구조에선 사라졌다. 2017년 지주사 요건이 자산 5000억원으로 상향되자, 성기학 회장은 자진 신고를 통해 YMSA를 빼버렸다. 성 회장과 그의 오너가는 YMSA 지분을 40% 넘게 갖고 있었으니 YMSA의 자산을 늘려 지주사로 전환하면 끝이었다. 자산을 늘리는 방법은 여럿 있다. 언론에서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그러나 그런 편법은 성 회장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기존 영원무역을 인적분할하면서 영원무역홀딩스(지주사)와 영원무역(사업회사)로 나눠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영원무역그룹의 핵심은 누가뭐래도 YMSA다. 2012년 말 기준 YMSA의 최대주주는 성 회장 및 특수관계인(45.6%)이다. 비상장사이다 보니 2012년 이후 지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결국 YMSA을 성래은 부회장으로의 승계 작업에서 중요한 발판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얘기하진 않지만 성기학 회장과 기획팀은 YMSA와 홀딩스의 합병을 계획하거나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래은 부회장은 물론 다른 두 딸의 지분율이 대폭 올라가며 지배력이 튼튼해진다. 성래은 부회장이 홀딩스 지분 매입을 최근 시작했지만 영원무역홀딩스 지분율이 고작 0.03%다.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주식을 사는게 나을까. 영원무역홀딩스는 단순 지주사가 아니다. 노스페이스 판권을 갖고 있는 영원아웃도어(비상장)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영원무역은 룰루레몬 파타고니아 등의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곳으로 영원무역홀딩스와 서로 다르다. 노스페이스를 보고 투자한다면 영원무역홀딩스를, 룰루레몬이 계속해서 잘 나갈 것으로 보면 영원무역 주식을 사는게 낫다.

배당을 노리고 투자한다면 ‘머니무브’를 따라가보자. 승계를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 성기학 회장과 성래은 부회장에게 배당금을 꽂아주는 영원무역홀딩스가 매력적이다. 현 주가 수준에서 영원무역홀딩스 배당수익률은 3.26%, 영원무역 2.13%다. 그러나 주가를 보면 망설여진다. 최근 5년 주가상승률로 보면 영원무역홀딩스는 고작 2.8% 밖에 오르지 못했다. 같은기간 43.4% 오른 영원무역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영원무역홀딩스 주가가 덜 오른 것은 국내 특유의 지주사 할인율을 적용받고 있으며, 향후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YMSA와 합병되면서 주식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리스크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무역홀딩스는 노스페이스 사업으로 꾸준히 돈을 버는 사업회사 성격도 있으며, 합병 상대가 비상장사라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힘든데다 성 회장의 스타일상 합병의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영원무역과 같은 중소기업에는 새해부터 세제혜택을 주기로 하면서 성 회장의 지분 증여는 본격화될 것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는 ‘최대주주 주식할증 과세’가 있다. 기업 최대주주가 물려받는 주식 가치에 20%를 할증해 상속가액을 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증여를 하는 기업 중 중소기업들에겐 이런 할증이 붙지 않는다. 당연히 성 회장 일가에겐 올해가 지분 증여 찬스다.

작년말(2022년 12월 29일) 영원아웃도어는 2022년말로 끝나는 노스페이스 라이선스 계약을 2029년말 까지 7년 연장했다. 노스페이스 상표권은 일본 골드윈이 갖고 있는데 기존 계약을 갱신하면서 ‘경업금지’도 삭제했다. 경업금지란 노스페이스 이외엔 다른 브랜드로 옷을 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제했으니 성래은 부회장은 해외 경험을 살려 노스페이스 이외의 브랜드를 만들어 신사업에 나설수 있게 된 셈이니 영원아웃도어를 지배하고 있는 영원무역홀딩스의 주가 호재로 볼 수 있다.

※다른 기업 지배구조 분석은 매경엠플러스(www.money-plu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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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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