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피해자, '날림' 토론회 보이콧 "발제문도 주지 않아"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배상 결정과 관련해 외교부와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실 주관으로 해법 마련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예정된 가운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대리인단은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며 토론회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1일 이들은 '피해자 들러리 세우는 날림 토론회 당장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피해자 측이 이번 토론회와 관련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철저히 무시돼 왔다"며 고심 끝에 토론회에 불참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행사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외교부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토론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면면이 누구인지 등도 전혀 모른 상태였다. 특히 토론회를 하루 앞둔 11일 현재까지 발제자의 발제문조차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10일 외교부에 토론자, 행사 개요, 발제문 등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의 발제문 등에 대해 "보안을 이유로 11일 오후 6시까지 제공하겠다며 양해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들은 "아무리 요식행위로 치른다고 하더라도 토론자에게 발제문조차 미리 제공할 수 없다면, 이런 토론회는 왜 하는 것인가? 보안이 문제가 된다면 공개토론회를 왜 하는 것인가? 눈 감고 '듣기만 하라'는 것이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이번 토론회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답을 정해 놓은 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라며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라고 하지만, 정부는 이미 원고 측과 무관하게 방향을 정해 뒀다.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발표하고, 가해자인 일본 피고 기업이 져야 할 배상금을 난데없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원고에게 지급하는 방안이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요구는 귀를 막은 채, 정부가 이미 방향을 정해 둔 채 갖는 의견 수렴이 무슨 의견 수렴인가? 그것마저 최소한의 요건도 무시한 채 이렇게 졸속으로 치른다는 말인가? 피해자들을 들러리 세우는 이런 날림 토론회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동원 사안과 관련한 외교부 행태에 대해 피해자 측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해 7월 외교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심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는데, 당시 의견서에는 한일 양국이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해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법원 판단을 미뤄달라는 듯한 내용이 포함됐다.
또 당시 민관협의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회의에서 외교부는 피해자 측에 의견서 제출에 대해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 측은 "신뢰관계를 완전히 저버리는 행위"라면서 민관협의회에 불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11월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로 양금덕 할머니가 선정돼 국민훈장을 수여 받을 예정이었으나, 외교부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보류'의견을 냈다. 이를 두고 외교부가 일본을 의식해서 이러한 행태를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해 7월 민관협의회 이후 외교부가 줄곧 피해자 측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태를 보여왔는데, 이번 토론회까지 이같은 문제가 이어지면서 공개토론회를 통한 해결방안 모색에 합의점을 찾더라도 피해자 측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포함된 '한일의원연맹'이 아니라 정진석 의원실만 토론회를 주관하게 되면서, 토론회가 사회 각계 각층의 의견을 모으는 장이 아닌, 특정한 입장을 전달하는 자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피해자 측은 불참 의사를 밝혔으나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상대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임재성 변호사와 지원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임 변호사와 김 실장 측은 피해자 측의 불참사유에 공감하고 이들을 지지한다면서도 "토론회에 참석해 피해자 측과 외교부 사이의 신뢰관계 파탄, 정부가 강행하려는 '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자 한다"며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임 변호사와 김 실장은 지난 7월 4일 진행됐던 1차 민관협의회부터 피해자 측으로 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이후 8월 초 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로 이후 회의에는 불참해왔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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