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 ‘평양냉면’, 남북이 어떻게 다른가?
겨울에나 먹던 음식이 여름 메뉴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익은) 동티미국(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식초) 내음새, 또 수육을 삶은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갈대자리 방)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시 ‘국수’, 1941년 4월)
유네스코 유산 된 ‘평양랭면 풍습’
북한 <노동신문>은 2022년 12월18일 “우리의 ‘평양랭면 풍습’은 인류의 대표적인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랭면은 놋대접에 메밀국수 사리를 놓고 고기와 김치, 남새(채소), 과일 등의 꾸미와 고명을 얹은 다음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나 고깃국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2022년 11월30일(현지시각)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이 신청한 ‘평양랭면 풍습’을 대표 목록에 올렸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누리집에선 평양냉면을 “북한의 관습적인 사회문화적 음식이며, 평양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 민속 요리”라고 소개했다.
평양냉면은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강할 때 예외 없이 등장했다. 1972년 5월 남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난 김일성 주석의 첫인사는 “옥류관 냉면은 드셨습니까?”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둘째 날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옥류관에서 냉면도 먹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남북 정상회담 때마다 등장하는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둘째 날 김정일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냉면 자주 하십니까? 평양국수랑 서울국수가 뭐가 다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평양국수가 더 맛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의 3차 남북 정상회담은 평양냉면을 최고의 화제로 만들었다.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대중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상회담 인사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웃음)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양냉면은 조선 때부터 유명했으며, 이미 19세기 서울에도 평양냉면집이 있었다. 서울의 유명한 음식점인 ‘군칠이집’에서 주요 메뉴였던 개고기와 함께 평양냉면을 팔았다. 일제 때도 서울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일제 때는 조미료인 글루탐산나트륨(MSG)이 ‘아지노모토’라는 제품명으로 개발됐고, 냉장고가 보급돼 서울에서도 쉽게 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평양냉면이 남한 전 지역에 보급된 것은 6·25전쟁 이후였다. 해방 뒤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100만 명 넘는 북한 주민이 남쪽으로 넘어왔다. 이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비로소 냉면이 남한 음식이 됐다. 분단과 전쟁으로 냉면은 70년 이상 남북으로 갈라져 발전했다. 남북한 냉면의 변화를 평양냉면 음식점 대표와 관계자, 음식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1. 국물: 동치미·꿩에서 소·돼지·닭으로
냉면 국물은 남북한이 과거와 모두 달라졌으나, 비슷하다. 과거 평양이나 평안도에선 주로 동치미 국물과 꿩 육수를 사용했다. 이것은 많은 기록이나 증언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동치미는 과거 조선에서 겨울에 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국물이었고, 꿩은 사냥으로 얻을 수 있는 고기였다.
남쪽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 중 하나인 우래옥의 김지억(89) 전 전무는 고향이 평안남도 대동군이고, 남쪽으로 넘어오기 전 평양에서 살았다. “북한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기본이 동치미 국물이었다. 여유가 있으면 꿩이나 닭 국물을 섞어서 먹었다. 꿩은 사냥해서 썼고, 닭은 집에서 길러 썼다. 소는 쓰기 어려웠고, 돼지도 명절이나 잔치 때 한번 쓰는 정도였다.”
1998년까지 북한에서 살았고 옥류관에서 요리 교육을 받은 윤종철 동무밥상 대표는 “꿩 국물을 쓴 이유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수꿩 장끼는 국물이 달고 암꿩 까투리는 국물이 새콤하다. 근데 꿩은 사냥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점차 닭으로 바뀌었다. 지금 옥류관에선 소와 돼지, 닭을 다 쓰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남한의 냉면집 가운데 꿩과 닭으로 국물을 내는 가장 대표적인 곳은 대전의 ‘숯골원냉면’이다. 윤선 대표는 “평양에서 월남한 시댁 어른들이 평양에선 동치미와 꿩 국물을 쓰셨다고 했다. 남쪽에선 동치미와 닭 국물을 주로 쓰셨다. 지금도 꿩값이 닭값의 2배나 돼서 쉽게 쓸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남북한의 냉면 국물은 소, 돼지, 닭을 모두 사용한다.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음식평론가)는 “지금은 남북한 모두 소·돼지로 주로 국물을 내고, 닭도 섞어서 쓴다. 닭을 써야 국물이 달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여전히 동치미를 넣는 경우가 많다. 남한에선 대장균 우려로 동치미를 쓰는 집이 적어졌다”고 말했다.
2. 면: 북한은 전분, 남한은 메밀 함량 높아
면은 남한보다 북한이 더 많이 달라졌다. 과거 북한에서 먹던 냉면의 면은 거의 메밀로만 만들었다. 메밀만으로 면을 만들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우래옥의 김지억 전 전무는 “북한에선 전분을 섞지 않고도 면을 만들었다. 메밀 반죽에 끓는 물을 부어 주걱으로 섞다가 식으면 손으로 반죽했다. 그러면 메밀만으로도 면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선 대표는 “시댁 어른들이 북한에선 메밀만으로도 면을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 지금도 메밀을 소량으로 손반죽하면 가능하다. 작은 반죽을 나무로 만든 작은 국수틀(분틀)에 넣어 면을 뽑으면 된다. 그러나 대량으로 만들 때는 메밀만으로는 어렵다. 우리 집은 밀가루를 조금 넣어서 면을 만든다”고 말했다.
현재 남한의 냉면집들은 대부분 국수를 만들 때 메밀과 전분을 섞는다. 메밀만으로는 면을 대량으로 뽑기 어렵고, 전분을 섞어야 쉽기 때문이다. 예종석 교수는 “집마다 메밀 함량의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남한의 유명한 냉면집들은 메밀 비율이 50% 이상 될 것이다. 전분보단 메밀을 더 많이 넣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냉면은 메밀 함량이 남한보다 낮아 보인다. 아무래도 메밀 공급이 원활치 않기 때문이다. ‘국수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박찬일 셰프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 식량난을 겪으며 냉면에서 메밀 비율이 줄고 전분 비율이 높아진 것 같다. 메밀은 전분 원료인 감자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적고 값도 비싸다. 고난의 행군 뒤로 북한에서 전분 비율이 높은 면이 표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종철 동무밥상 대표도 “내가 북한에 있던 1990년대 말까지 메밀 비율이 40% 정도는 됐는데, 지금은 더 적어진 것 같다. 눈으로 보면 전분이 80% 이상 아닌가 싶다. 연변의 냉면처럼 전분이 많아졌고 더 검어졌다”고 말했다.
3. 고명과 양념: 화려해진 북한, 단순한 남한
고명과 양념은 많이 변한 것 가운데 하나다. 과거 평양냉면에선 고명을 그리 많이 올리지 않았다. 서울의 대표 냉면집 중 하나인 필동면옥의 홍순자 대표는 “고향이 평양인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 집에서 냉면을 해먹을 때는 고명으로 올릴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냉면장사 하는 집에서나 돼지고기 정도 올렸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은 백석의 시 ‘북신-서행시초2’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라는 구절에 잘 나온다. 김지억 전 전무도 “평양에선 그저 김치 정도 올려서 먹었다”고 회상했다.
물론 같은 평양이라도 집마다 달랐다. 시증조부가 평양에서 ‘모란봉냉면’ 음식점을 했다는 윤선 대표는 “시댁은 평양에서 꿩냉면의 고명으로 꿩고기를 뼈까지 갈아서 만든 완자를 썼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남한에 와서 꿩고기 완자를 고명으로 올리니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찢은 꿩고기로 바꿨다”고 말했다.
현재 고명과 양념은 북한에서 더 많이 쓴다. 금강산 관광이 활발하던 2000년대 중후반 금강산 옥류관 냉면의 고명을 보면 지단과 오이, 무김치, 소·돼지·닭 수육, 삶은 달걀, 잣, 매운 양념 등 많은 고명을 썼다. 예종석 명예교수는 “현재는 북한이 고명을 많이 쓴다. 지단을 화려하게 쓰고, 다양한 고명을 올린다. 남한의 고명은 단순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윤종철 대표는 “북한에선 냉면의 고명도 인민봉사위원회가 정한 레시피에 딱 나와 있다. 옥류관이면 어디나 같은 고명을 쓴다. 반면 남쪽은 식당마다 다 제멋이 있다”고 말했다.
4. 먹는 계절과 풍습: 과거엔 겨울 음식
먹는 계절과 먹는 경우에도 차이가 있다. 과거 평양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 면의 재료인 메밀을 보통 가을에 거두고, 국물이 되는 동치미는 겨울에 담그기 때문이다. 가을에 거둔 메밀로 만든 면을 겨울에 담근 동치미 국물에 말아서 동치미 무나 배추 백김치를 얹어서 먹는 게 냉면의 원형이다. 또 잘 풀어지는 메밀국수의 성질상 더운 국물로는 국수를 만들기 어렵고, 차가운 국물은 겨울에만 얻을 수 있으므로 자연스레 겨울 음식이 됐다.
서울의 대표 냉면집 중 하나인 필동면옥의 홍순자 대표는 “북한에선 집마다 메밀을 심어서 겨울에 먹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일하느라고 해먹을 새가 없었다. 추운 겨울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바닥이 끓을 때 시원한 냉면을 먹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런 풍경은 백석의 시 ‘국수’에 “겨울밤 쩡하니 닉은(익은) 동티미국(동치밋국)을 좋아하고 (…) 삿방(갈대자리 방)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을 좋아하는”이라고 잘 묘사돼 있다.
또 북한에선 명절이나 생일에도 냉면을 먹었다. 예종석 교수는 “조선 때는 밀가루가 귀해서 국수는 고급 음식이었다. 긴 면에 장수를 기원하며 명절이나 잔치 때 먹었다”고 말했다. 김지억 전 전무도 “북에서는 냉면도 고기처럼 명절이나 생일에 한번씩 먹는 음식이었다. 자주 먹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술을 먼저 먹고 냉면을 먹는 ‘선주후면’ 풍습도 있다. 박찬일 셰프는 “냉면을 먼저 먹으면 술맛이 안 난다. 먼저 술을 마셔야 술맛이 좋다. 아마도 부잣집이나 기생집에서 유래한 풍습 같다. 오래된 풍습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남한에선 여름철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유명 냉면집들도 여름엔 몇십 분씩 줄을 서야 하지만, 겨울엔 한산한 편이다. 남한에도 냉면 애호가가 늘어났지만, 겨울에 냉면을 찾는 사람은 여름보다 훨씬 적다. 또 남한에선 명절이나 생일, 잔치에서 냉면을 먹는 풍습은 찾아볼 수 없다.
5. 왜 달라졌을까?
남북의 평양냉면이 달라진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 예종석 교수는 “음식의 재료나 소비 모두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음식이 발전한다. 사실 북한의 냉면을 먹어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홍순자 대표도 “어머니가 6·25 때 남쪽으로 오니 물자가 뭐든지 넉넉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북한이 먹고살기 힘드니까 냉면도 영향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분단으로 서로 교류할 수 없었다는 점도 이유가 된다. 박찬일 셰프는 “기후나 식생의 차이도 있고, 분단으로 소통이 안 되면서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종철 대표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꼽았다. “한국에 와보니 음식에 일식, 양식, 중식 등이 다 섞였다. 북한은 봉쇄돼 있고 재료를 충분히 쓰지 못해 별로 안 변한 것 같다.”
남북의 입맛 차이를 꼽기도 했다. 김지억 전 전무는 “남한이 이북보다 단맛을 좋아한다. 냉면에 설탕을 넣어서 먹는 것은 북한에선 보지 못했다. 북한은 대체로 심심한 맛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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