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별 “엄마·가수 둘 다 잘 할 수 없어 오래 걸렸다”
다시 돌아온 ‘발라드 여제’의 궤적
14년 만의 새 앨범 ‘스타트레일’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해마다 12월이 오면 캐럴처럼 들려오는 곡이 있다. 조금은 ‘슬픈 캐럴’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소녀 가수의 단단한 고음에 새겨진 풋풋한 이별 감성은 2002년 겨울까지 내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헛된 ‘희망 고문’을 안겨도, 오지 않을 그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곡, ‘12월 32일’이다. 가수 별은 이 곡으로 그 해 신인상을 휩쓸었다.
“지난해가 데뷔 20주년이었는데, 20년차라고 이야기하기엔 면이 서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20년 중 무대에 섰던 시기보다 그렇지 못했던 때가 더 많았으니까요.”
화려한 등장이었다. 그 시절 싸이월드를 물들인 ‘감성 발라더’의 대표주자였다. “내게 1월 1일은 없다”는 노랫말은 한 해를 쉽게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의 밈(meme)이 됐고, 소녀 가수는 ‘여덕(여성 덕후) 몰이’의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가수에게는 전형적인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를 안긴 곡이었다.
“‘12월 32일’은 제게도 가장 소중한 곡이에요. 워낙 좋은 곡이다 보니, 그 다음에 어떤 곡을 불러도 이보다 더 좋기는 힘들었어요. 콘셉트도, 메시지도, 임팩트도 강했으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오랜 공백이 있었음에도 매년 연말에 소환되니 너무나 고마운 곡이죠.(웃음)”
별이 돌아왔다. 이제는 ‘하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마마돌’로 더 유명한 원조 발라드 가수. 정규 앨범을 다시 발매하기까진 무려 14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9년 2월 5집이 마지막 정규 음반이다. 최근 서울 홍대에서 만난 별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며 지난 시간을 찬찬히 더듬었다.
별의 6집 앨범 ‘스타트레일’(Startrail)엔 1년 6개월 동안 수집한 10개의 곡을 소중히 담아냈다. ‘별의 궤적’이라는 의미의 앨범 제목처럼, 그의 지난 20년과 앞으로 그려갈 궤적을 담았다. 당초 “20주년이 되는 2022년 10월 발매가 목표”였지만, 녹음 기간 동안 변수가 많았다.
사실 음반 발매를 결심하기까지가 결심과 도전, 보류의 연속이었다. 2012년 가수 겸 방송인 하하와의 결혼한 이후 이듬해 첫 아이를 낳았다. 지난 10년 새 간간히 싱글을 내기도 했지만, ‘본격적’이라고 할 만한 음악 활동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 tvN ‘엄마는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원더걸스 선예, 애프터스쿨 가희 등과 함께 마마돌로 도전한 것이 가장 최근 활동이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달랐어요. 자신감을 가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별은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온전히 책임졌고, 스스로는 “엄마의 역할은 내려놓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하자고 했던 것이 이렇게 시간이 흐르게 됐어요.” ‘완벽한’ 엄마이자 가수가 되고 싶었기에 그간 해왔던 일은 잠시 뒤로 미뤄뒀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내 이름이 사라지고, 내 삶이 사라지는 것을 슬프게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그 무렵 ‘엄마는 아이돌’을 하며 비슷한 상황에 있던 동료들과 도전을 하게 된 것이 힘이 됐어요.”
어렵게 마음먹은 것도 잠시, 녹음 과정에서 변수가 생겼다. 막내딸이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아 모든 작업을 멈추고 다시 엄마로 돌아갔다. 별은 “너무나 마음이 고통스러웠지만, 감사하게도 녹음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 육아와 음반 작업 과정을 함께 했다. ‘하루에 한 곡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지난 수 개월 이 과정에 몰두했다. “오랜만에 정규앨범을 작업하며 이전엔 당연하게 했던 과정의 소중함과 특별함을 많이 깨닫게 됐어요.”
14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새 앨범엔 발라드 가수 별의 이야기가 온전히 담겼다. 녹음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감성과 이야기의 전달이었다. 별은 “노래를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전엔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어요. 화려하게 고음을 뻗고 싶었고요. 그것이 노래를 잘한다는 의미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음은 스킬 중 하나이지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아니더라고요. 과잉되지 않은 감정으로 가사를 전달하는 것, 보컬의 정교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음정 하나가 어긋나는 것’, ‘가짜 같은 느낌이 드는 노래’는 가차없이 다시 녹음했다. ‘쥐 잡듯’ 하나하나 세심히 들여다보며 작업한 새 앨범은 ‘플레이리스트 10곡을 짠다는 느낌’으로 완성됐다.
“요즘은 노래를 찾아 듣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듣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래를 듣다가 스킵하지 않고, 쭉 들을 수 있는 감정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타이틀 곡 ‘오후’는 ‘별의 귀환’을 제대로 알리는 곡이다. 이별 후에 남겨진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2012년 남편 하하가 발표한 미니음반 ‘공백’의 수록곡 ‘알 순 없지만’을 별의 색깔로 다시 불렀다. 하하는 가수 별의 가장 열열한 팬이기도 하다.
“남편은 제가 앨범을 내는 걸 가장 오래 기다렸고, 항상 미안해 했어요. 모든 음악을 다 모니터링 하면서 의견을 줬고, 타이틀 곡에 대해서도 ‘이 곡이 딱 별’이라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열한 살이 된 아들 드림이는 가수 엄마 아빠를 둔 덕에 귀가 빨리 트였다. “이쯤에서 터져줘야 하는데 심심하게 끝난다는 피드백을 주더라고요. 타이틀곡 애드리브 라인에 지대한 공을 세웠어요. (웃음)”
20년의 나이테가 그려지는 동안 올해까지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이 나왔다. 애쓰지 않아도 묻어나는 ‘이별의 목소리’는 누군가의 시절마다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엉엉 울며 들었던 곡’이라는 댓글은 기본, ‘10대, 20대에 귀 아프게 들었다’며 지난 시간을 함께 꺼낸다. 오랜 팬들의 지지는 다시 노래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사람들의 추억마다 제 노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벅차더라고요. 예전부터 여자 팬들이 많았어요. 저를 기다리고 따라오는 팬들에게 너무미안하고 고마워 ‘너네는 왜 날 좋아하냐’고 물어보곤 했어요. 제가 톱스타도 아니고, 아이돌도 아닌데 ‘언니, 좋아요’ 하면서 기다려주니까요. 그 고마움을 노래로 보답하려고요. 사람들의 인생에 남을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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