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시간 수면, 1.5군급 구성으로 4강…'김판곤 매직'은 현재진행형

이성필 기자 2023. 1. 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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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판곤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 김판곤 감독은 말레이시아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연합뉴스/AFP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주요 선수 없이 4강까지 올라 싸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김판곤 매직'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판곤 감독이 지휘하는 말레이시아는 10일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2022 미쓰비시컵(아세안 축구연맹 챔피언십) 4강에서 태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홈 1차전을 1-0으로 잡았지만, 2차전 원정에서 0-3으로 완패하며 합계 1-3으로 밀려났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과 결승에서 만나 겨루는 이상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김 감독과 말레이시아는 다음을 기약했다. 김 감독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라며 자신이 비판의 화살을 맞아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직을 내려놓고 말레이시아에서 부임해 1년의 시간이 지나는 시점을 고려하면 4강 진출은 분명 나쁘지 않은 성과다.

무엇보다 김 감독이 말레이시아 대표팀 전체 체계를 바꿔 놓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 기대된다. 말레이시아는 김 감독 부임 후 1980년 이후 무려 42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에 오르는 기적을 맛봤다. 2007년 동남아 4개국이 공동 개최해 개최국 자격으로 나선 것을 제외하면 온전한 본선행이라 김 감독이 낸 성과는 놀라움 그 자체다.

특히 이번 미쓰비시컵은 준비 자체가 어려웠다. 2020년 대회는 4강에 오르지 못해 2018년 결승 진출의 기억을 되살려야 했지만, 말레이시아 프로리그에서 가장 강한 조호르 다룰 탁짐 소속 선수들이 대거 차출되지 못했다.

각 지역의 왕인 술탄의 힘이 강한 말레이시아 특성이 반영됐다. 조호르 구단주인 툰쿠 이스마일 이드리스 왕자는 12월 초순부터 태국 전지훈련에 나선 말레이시아 대표팀에 선수들을 한 명도 내주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대표팀 핵심은 조호르 소속 선수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울산 현대에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보게 하는 등 강력한 팀으로 성장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모였기에 왕자의 말이 곧 법이었다.

말레이시아 축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레이시아가 아시안컵 본선에 42년 만에 오른 뒤 김 감독의 인기가 높아졌다. 왕자의 시샘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말레이시아 축구협회도 왕자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김 감독이 조호르 선수들을 차출하기 얼마나 어려웠겠나. 이런 권위적인 모습에 김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이해와 설득, 설명이었다"라고 전했다.

결국 차출에 실패한 뒤 케다, 셀랑고르, 테렝가누 등 그다음으로 좋은 팀 선수들 중심으로 23명을 꾸렸다. 한마디로 미쓰비시컵에 나선 선수단은 1.5군 내지는 2군이라는 소리다.

이제 말레이시아와 김 감독의 시선은 2023 아시안컵 본선이다. 조별리그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 부임 후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의 연계에 힘을 쏟고 있다.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으로 자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스페인 지도자를 영입해 소통하고 있다. 조호르가 선수를 내주지 않으면 연령별 대표팀에서 육성해 활용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수면 시간을 하루 너댓 시간으로 줄여가며 전력 분석관의 자료를 토대로 선수단 지휘에 열중하고 있다. 김 감독의 수면 부족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날씨가 워낙 더워 이른 아침이나 자정에 가까운 야간이 아니면 훈련 자체가 쉽지 않다. 선수들의 신체 리듬을 고려하면 김 감독이 더 서둘러 움직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영상 미팅을 자주하니 밤을 새서 자료를 만드는 일도 허다하고 낮잠은 사치라고 한다.

한국 알리기에도 일조하고 있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 축구협회가 내준 '일제' 차량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본 기아자동차 말레이시아 법인이 말레이시아 축구협회에 카니발 등 관용차 3대를 선물하며 일본색을 지웠다. 공식적인 이동에 김 감독이 한국 차량을 이용하는 모습이 상징이 된 셈이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와 2024년 2월까지 계약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말레이시아 축구협회는 물론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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