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누가 주주행동에 돌을 던지나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지난 3일 한국조선해양은 자회사 현대삼호중공업의 기업공개(IPO)를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IPO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며 현실적으로 상당한 무리가 따른데 더해 소액주주들이 지주사 가치 하락을 이유로 자회사 IPO를 반대한 것이 상장철회의 주 이유다. 다음날인 4일, 한국조선해양의 주가는 7% 이상 급등했다. 풍산, DB하이텍 등도 같은 과정을 거쳐 자회사 물적분할이나 동시상장을 철회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는 소액주주 측 감사가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자 상장이래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에스엠은 같은해 소액주주들이 요구한 이수만 회장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 조기 결별하면서 또 한번 주가 상승이 나타났다.
2215억원이라는 국내 상장사 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이 발생했던 오스템임플란트는 최근 한 소액주주로부터 증권집단소송을 당했다. 횡령에 따른 기업 신뢰도 저하로 주가가 하락해 손실을 입었으니 회사가 손실을 보상하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기업의 미래', '회사의 성장'을 위해 소액주주들은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했지만 최근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자회사 분할상장이나 대주주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부적절한 지배구조 등 경영 사안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그룹 등의 문어발 상장에 소액주주들의 분노가 고조됐고, 이런 분노가 여타 기업으로도 확대돼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에 위배되는 회사의 결정을 더는 좌시하지 않는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소액주주 행동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지분만큼 의사결정권을 가진다'는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액주주는 단타족이 대부분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진행되는 기업의 투자나 의사결정을 소액주주 눈치만 보다가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과거 행동주의펀드로 가장한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적대적 M&A'를 시도하거나 주가 상승을 유도한 뒤 '먹튀'를 하는 등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부분도 있어 현재 소액주주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과 대주주 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었던 무게추를 이제는 소액주주쪽으로 맞춰야 한다는 요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는 것이 수십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시장 저평가)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잇따라 내놨다. 특히 △공매도 시 담보비율 인하 △물적분할 시 모회사 소액주주 권리 보호 △상장폐지를 단계적으로 추진해 투자자 보호 △내부자 지분매도시 사전 공시 △주식양수도에 의한 경영권 변경시 소액주주 보호 등은 그간 자본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소액주주의 권리를 크게 강화하고 보호하는 정책이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정책은 부끄럽지만 이번에 사실상 처음 마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우리 시장이 기업의 성장을 통해 과실을 나누고 주가 상승을 통해 주주들도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간의 관념이었지만 이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됐고, 이제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주주 권익 보호가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선진 자본시장으로 추앙받는 미국은 소액주주의 권리가 어떤 국가보다 강하게 보호되고 있다. 법이나 규제 같은 강제력이 아니라 시장의 규범과 관행으로 보호된다. 소액주주들은 주주대표소송이나 증권집단소송, 증거개시주의 등의 사법 제도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
국내 시장은 법·제도로도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일부 소액주주들은 대주주 집 앞에 찾아가 꽹과리를 치며 과격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소액주주들의 과격한 행동조차도 그동안 해당 기업이 소액주주들과의 소통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또 주주를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일에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을 일으키고 상장시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대주주를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이들에게 불합리한 부분도 분명히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대표는 "대주주의 상속세율을 개선하고 배당세를 개선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와 적극 소통하면서 주주환원에 '1등'인 기업이 된다면 주가가 오른다. 이는 자본이 모여든다는 의미다. 주주환원에 적극적이고 성장성이 충분한 기업이라면 국내외 '큰 손'들이 더 큰 자금을 투자한다. 이미 글로벌 주요 기업에서 입증됐다.
주주행동이 기업에 '적대적'일 것이라는 불신보다는 주가 상승과 자본유치 등 궁극적으로 회사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되길 기대해본다.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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