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편집해 고혈압 예방한다…MIT가 뽑은 10대 미래기술

곽노필 2023. 1. 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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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됐거나 10~15년 후를 약속하는 기술들
콜레스테롤 수치를 영구적으로 낮춰주는 크리스퍼 유전자편집기술 임상시험이 이뤄졌다. MIT테크놀로지리뷰

대본만으로 영화를 만들어내고,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교정해 고혈압을 영구히 예방한다.

미국의 기술 매체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2023년 10대 미래 기술’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 매체가 매년 발표하는 이 명단은 올해 주목할 필요가 있거나 주목해야 하는, 그리고 몇년 안에 등장할 것들이다. 삶에 희망을 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들이 다수이지만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혼란을 주는 것들도 있다.

첫째로 꼽은 것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편집 기술이다.

유전자편집도구인 크리스퍼 기술이 등장한 지 10년을 넘으면서 실험실을 벗어나 실제 치료 현장에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 뉴질랜드에선 유전적으로 고콜레스테롤 위험성이 큰 한 여성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영구적으로 낮추는 유전자편집 시술을 받았다. 이는 그동안 희귀 유전질환에 머물던 이 기술의 적용 범위를 좀 더 일반적인 질환에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버브 테라퓨틱스(Verve Therapeutics)가 개발한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요법은 크리스퍼 2.0 기술을 사용한다. 이 기술은 특정 유전자가 아닌 DNA의 단일 염기를 교체하는 방법을 쓴다. 이는 유전자 편집 단위를 더욱 세분화시켜 오류 가능성을 줄여준다. 최근엔 크리스퍼 3.0(프라임 편집) 기술도 나왔다. 이 기술은 DNA를 덩어리째 삽입할 수 있다. 질병 유발 유전자 전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크리스퍼 요법은 그러나 아직 인체 안전성이 입증되지는 않았다.

‘리뷰’는 “언젠가는 고혈압이나 특정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유전자를 유전자 코드에 추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리뷰’는 그 시기를 10~15년 후로 내다봤다.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생성한 인공지능 그림.

대본만 주면 인공지능이 영화로 제작

둘째는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인공지능이다.

이 기술은 이미 실현된 미래다. 지난해부터 간단한 문구만으로 정교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이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오픈에이아이의 달-리(DALL-E), 구글의 이마젠,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은 간단한 지시문구만 입력하면 몇초 안에 그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신생기업 스터빌리티 에이아이(Stability AI)가 출시한 스테이블 디퓨전은 몇달만에 수백만명이 수천만개의 이미지를 만드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기존 예술가들은 격변의 흐름에 휩싸였고, 인공지능이 개입하는 새로운 예술 영역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제 이 기술은 생성 영역을 이미지에서 비디오로 넓혀가고 있다.

‘리뷰’는 “구글, 메타 등에서 시연한 인공지능 생성 비디오 클립은 현재로선 길이가 몇초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대본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칩 설계 표준이 반도체 칩 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독일 지멘스

특허 없는 반도체 칩이 산업 판도를 바꾼다

셋째는 개방형 칩 설계다.

칩 산업에 대격변의 조짐이 일고 있다. 현재 반도체 칩 제조업체들은 인텔, 암 같은 소수의 대기업이 갖고 있는 칩 설계 관련 특허에 얽매여 있다. 거액의 돈을 주고 이들의 허가를 받아야만 칩을 제조할 수 있다.

그러나 리스크-파이브(RISC-V)라는 개방형 표준이 나와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려 하고 있다. 리스크-파이브는 시스템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CPU 구조 등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과 학술기관 등 전 세계적으로 3100명의 회원이 리스크-파이브 인터내셔널을 통해 이러한 표준을 협력 개발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리스크-파이브 칩을 무기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리스크-파이브 칩은 이미 무선 이어폰,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인공지능 프로세서에 사용되기 시작해 100억개의 코어가 출하됐다. 기업들은 또 데이터 센터와 우주선에 사용할 리스크-파이브 설계 작업도 진행중이다.

‘리뷰’는 몇년 안에 리스크-파이브 기반의 반도체 칩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튀르키예의 바이카르가 생산한 군사용 무인기 바이락타르 TB2. 위키미디어 코먼스

저가형 드론기가 전세를 뒤집는다

넷째는 군사용 드론의 확산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군사용 드론 시장을 지배한 건 프레데터, 리퍼 같은 미국의 정밀 타격 무인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이 판도를 바꾸고 있다.

중국, 이란, 터키 등에서 만든 저가형 드론이 전투 현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했다. 러시아가 키예프 공격때 사용한 3만달러 상당의 이란산 샤헤드 드론은 장거리 비행도 가능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튀르키예의 바이카르가 생산한 500만달러 상당의 바이락타르TB2다. 27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고 통신 범위도 186마일이나 된다. 카메라를 장착하면 지상 기지와 영상을 공유하며 공격표적을 정확하게 찾아내 매우 강력한 전쟁 도구로 쓸 수 있다. 게다가 수출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미국산 드론과 달리 원하는 모든 국가에 판다.

‘리뷰’는 “전술적 이점을 주는 건 분명하지만 이는 슬프게도 전 세계 민간인에게 저 끔찍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격 진료로 처방받는 임신 중지

다섯째는 원격진료 임신중지다.

지난해 미국에선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앤 웨이드’ 판결을 뒤집음에 따라 임신중지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 바 있다.

그러나 의료 분야에선 큰 변화가 있었다. 병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임신중지 진료를 받고 약물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21년 미국식품의약국(FD)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임을 반영해 두 가지의 임신중지 알약을 우송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자 원격진료를 통한 임신중지약 수요가 급증했다. 많은 기업과 비영리 단체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미국 메릴랜드대의 돼지심장 이식 시술 장면. 메릴랜드대 제공

동물 장기이식에서 인공 장기로

여섯째는 주문형 장기이식이다.

지난해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진이 57세 남성에게 이식한 돼지 심장은 두달 동안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했다.

동물 장기를 이식하는 것은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유력한 대안이다. 문제는 면역 거부 반응인데, 당시 이 남성은 유전자편집 기술로 관련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심장을 이식받았다. 연구진은 더 많은 임상시험을 계획 중이다.

리뷰는 “미래엔 3D프린팅과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맞춤형 인공 장기가 동물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 시기를 10~15년 후로 내다봤다.

일곱째는 주류로 올라서는 전기차다.

서서히 달궈지던 전기차 산업이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추정에 따르면 전기차의 2022년 시장점유율은 13%에 이른다. 2년 전 4%와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2020년대 말에는 30%로 올라서 명실상부한 자동차산업의 주류로 올라설 전망이다.

이륜차와 삼륜차에도 전기차가 진출하면서 지난해 인도에선 전기차 판매가 3배나 증가했다.

리뷰는 "그러나 가격은 더 저렴해져야 하고 충전은 더 편리해야 하며 청정 전기 생산이 크게 늘어나야 하는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용롤자리성운의 ‘우주의 절벽’. 별 탄생 지역이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우주에 대한 관점을 바꿀 제임스웹망원경

여덟째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다.

허블우주망원경보다 100배나 강력한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새로운 천문학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천문학자들의 최우선 목표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통해 빅뱅 이후 우주 최초의 별과 은하가 생겨난 과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제임스웹의 또다른 임무는 외계행성의 대기를 관찰하고 은하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리뷰는 “2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망원경 수명 동안 거의 매일 새로운 발견이 쏟아질 것”이라며 “망원경이 보내오는 데이터는 초기 우주에 대한 기존 관점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덴마크의 고유전학자들이 그린란드에서 수집한 침전물 분석을 준비하고 있다. MIT테크놀로지리뷰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고유전학 기술

아홉째는 고대 DNA 분석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손상된 고대 DNA도 해독할 수 있게 되면서 고생물학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네안데르탈인 염기서열 분석으로 고유전체학을 개척한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에게 돌아갔다.

과학자들은 이제 치아나 뼈 같은 화석이 없더라도 흙더미에서 고대 DNA를 찾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이미 고대 DNA 분석을 통해 현생 인류의 유전자 일부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멸종된 고대인간 호모 루조넨시스와 데니소바인을 발굴해냈다.

전체 게놈 데이터를 해독한 고대 인류의 수는 2010년 5명에서 2020년 5550명으로 급증했다.

고대 DNA는 현대인의 건강 문제를 푸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해 과학자들은 과거의 DNA에서 흑사병에서 생존할 가능성을 40% 더 높이는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열째는 배터리 재활용이다.

전기차 수요가 크게 늘면서 배터리 소재 공급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리튬 수요는 2050년까지 20배나 늘어날 전망이다.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배터리 재활용이다.

재활용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거의 모든 코발트와 니켈을 회수할 수 있게 됐고 리튬도 회수율이 80%른 넘는다. 알루미늄, 구리, 흑연도 재활용이 가능하다.

‘리뷰’는 “새로운 재활용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 재활용은 세계가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공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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