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세상 텐션 김은숙 작가에게 바라는 딱 한 가지('더 글로리')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가 뜨겁다. <더 글로리>는 한국 드라마 최고 히트메이커 중 하나인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의 첫 스릴러 작품으로 지난달 30일 첫 선을 선보였다. 공개 후 넷플릭스 국내 드라마 순위 정상을 차지한 것은 물론 글로벌 순위 톱10에 진입하며 김은숙 작가의 필력이 명불허전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더 글로리>의 높은 화제성은, 지난 연말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재벌집 막내아들> 종영이 남긴 짙은 여운을 조기에 희석시켰다. 한편, 복수극이 연달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한국 드라마 트렌드를 복수극 전성시대로 들어서게 만들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흙수저 재벌기업 사원인 윤현우(송중기)가 재벌가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재벌가 일원인 진도준으로 환생해 복수의 과정에 기업 승계 경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시청자들을 매혹시킨 주된 동력은 진도준이 불리했던 기업 승계 경쟁에서 미리 알고 있는 미래를 활용해 극적으로 승리해나가는 모습이었지만 그 근간에는 복수극이 자리 잡고 있다.
<더 글로리>는 좀 더 노골적인 복수극이다. 학원 폭력으로 삶이 망가진 문동은(송혜교 분)이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에 나서는 내용이다. 빌드업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복수에 착수하는 시점에서 파트 1으로 먼저 공개된 8부가 마무리돼 시청자들은 파트 2의 빠른 공개를 기원하고 있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가 첫 도전하는 스릴러 장르이긴 하지만 이전 멜로 기반 작품들에서 보여준 장점이 상당 부분 옮겨온 드라마다.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 없거든',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등 귀에 팍 박히는 맛깔난 대사들의 잔치가 우선 그대로다.
이전 멜로물에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던 사랑의 밀어들이 흡입력은 그대로인 채로 저주의 언어로만 치환됐을 뿐이다. 캐릭터들간의 충돌에서 긴장을 극대화하는 대사 배틀의 텐션도 말 그대로 저세상 수준이다. 군더더기 없이 시청 시간 순삭시켜주는 드라마 템포도 일품이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 중 미리 심어 놓은 떡밥을 활용한 반전들도 짜릿하다. '대사빨'은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에 비해 부족했지만 <재벌집 막내아들>도 매끈한 순삭 전개나 주인공 위기 극복 과정의 스릴 넘치는 반전은 <더 글로리>와 유사했다. 대박 드라마는 분명 그만한 장점들이 있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의 경우 25%(이하 닐슨코리아)가 넘는 엄청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개연성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윤현우가 과거 사고나던 진도준을 몰랐던 상황, 윤현우가 머리에 총 맞고 바다에 떨어진 것을 검찰과 국정원이 바로 구해 살려낸 상황 등이 대표적이었고 이외에도 개연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설정이 여럿 있었다.
<재벌집 막내아들>만큼은 아니지만 <더 글로리>도 개연성에 대한 아쉬움이 은근히 제기되고 있다. 주여정(이도현)이나 강현남(염혜란) 같은 조력자들과의 만남이 우연의 연속인데 이 우연이 몇 년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문동은의 복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은 허술하다.
전문 탐정도 아니었고 가사도우미였던 강현남이 문동은을 만나 가해자 다섯 명을 홀로 미행하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결과물이 탁월한 설정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해자 집단이 권력과 재력은 물론 완력이나 수적으로도 압도적인 상황에서 문동은 한 명에게 별다른 반격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도 이해가 잘 안된다.
파트 2에 가면 가해자들 역습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청이 한 단락 지어지는 파트 1속에 이런 개연성 부족을 만회할 장치는 마련돼 있었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더 글로리>도 완성도 높은 스릴러 수작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물론 <재벌집 막내아들>과 <더 글로리>에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드라마가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의견도 있고 적극적인 애청자들은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을 스스로 상상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며 옹호하기도 한다. 글로벌 차트에서도 높은 순위이니 개연성은 작품의 성공에 보편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K-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지면 질수록 완성도도 그에 따라가기 위한 노력은 순위에 안주하지 않고 추구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연성은 서사가 있는 예술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이고 이 부분에서도 좀 더 무결하기 위해 절차탁마한다면 K-드라마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과 애정도 더 깊어지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넷플릭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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