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 · 발령 · 보고 3중 실패…합참 책임이건만 [취재파일]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는 2m 길이의 소형으로 RCS(레이더 반사 면적)가 아주 작습니다. 각종 탐지장비에 새와 별반 차이 없는 형태로 잡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탐지, 추적, 격추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해 군의 이번 무인기 대응 작전을 다소 온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은 기본 중의 기본에서 치명적인 실패를 저질렀습니다. 서울 방어의 중추인 수도방위사령부에 무인기 침범 상황이 전파되지 않았고, 적 무인기 대비태세인 '두루미' 발령도 한참 늦었습니다. 무인기 쫓아갔던 KA-1 경공격기가 추락할 때까지 국방장관에게 보고도 안됐습니다.
전파·보고·발령 무너지도록 합참은 뭐 했나
북한 무인기 침투 상황이 수도방위사령부에 제때 전파만 됐다면 이번 사건의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용산 대통령실 방어를 위한 비행금지구역 P-73 내 이상 항적을 포착하자마자 무인기 적시 대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지금 같은 논란과 혼란은 생기지도 않습니다. 현실은 섬처럼 고립됐던 수도방위사령부가 P-73 내 이상 항적을 포착하고도 정체 파악하는 데 30분 이상 허비했고, 북한 무인기는 유유히 사라진 것입니다.
국방장관 늑장 보고도 뼈아픕니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집무실은 용산의 국방부·합참 공동 청사의 같은 층에 있습니다. 천천히 걸어가도 30초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국방장관 보고는 무인기 침투 1시간 30분 만에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북한 무인기는 P-73을 거쳐 서울을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훑었습니다. 긴급 출격한 KA-1 경공격기는 추락했습니다. 이 정도면 선조치 후보고 지침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국방장관은 통수권자 다음의 지휘권자인데 사실상 작전에서 배제된 것입니다.
두루미 발령이 빨랐다면 수도방위사령부를 비롯한 각급 부대는 탐지 장비들을 폭넓게 운용하고, 이상 항적을 적극적으로 추적했을 것입니다. 발령되지 않았으니 우리 방공망은 중간중간 이가 빠진 듯 엉성했습니다. 합참은 "탐지와 소실이 반복됐다"고 거듭 밝혔는데 방공망 곳곳에 이가 빠진 결과입니다.
자기비판해도 모자랄 판에…
김승겸 합참의장은 어제(10일) 전 작전부대 지휘관과 참모, 각 군 본부 주요 직위자들을 화상으로 소집한 가운데 결전태세 확립 지휘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북한의 다양한 도발 양상에 맞춘 대응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기사화했습니다. 김 의장이 "무인기 도발이 벌어졌다고 하늘만 쳐다보는 등 이 사건에 매몰되기보다는, 100가지가 됐든 몇 가지가 됐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앞으로 더 탄탄한 대비태세 전열을 가다듬자"는 말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북한 무인기 사건에 매몰돼도 안 되고, 하늘만 쳐다봐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북한 무인기 사건을 어물쩍 넘어가서도 안 됩니다. 근원적 허점이 드러났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앞으로 벌어질 100가지 도발에 잘 대응하자며 파이팅 외치고 보도자료와 사진 뿌릴 때도 아닙니다. 합참 안팎에서 "대위 때 공비 3명 사살해 을지무공훈장 받았다"는 김승겸 합참의장의 30년 전 흘러간 옛이야기가 뜬금없이 요즘 다시 회자되는데 아직도 앞뒤 분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자기반성하고 개선할 때입니다. 전파, 보고, 발령이 전광석화 같지 않으면 결전태세 확립 지휘관 회의 백날 해도 소용없습니다. 합참의장은 우선 스스로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전파와 보고, 발령의 실패 과정을 복기해 원인을 식별하고 재발방지책을 찾아내야 합니다. 의장은 전파와 보고, 발령의 실패가 작전과 경계의 실패보다 더 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실패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합참이 비겁하게 문책에서 비켜서면 예하 부대들은 합참을 믿고 따를 수 없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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