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노동·인구·산업 3대 구조적 변화 직면… 노동개혁만이 살 길”[파워인터뷰]
■ 파워인터뷰 - 노동개혁 권고안 주역권순원숙명여대 교수
노동시장 양극화 등 ‘이중구조’
저출생·고령화 따른 ‘인구구조’
디지털 혁명·탈탄소 ‘산업구조’
노동제도 70년간 거의 불변
경영계는 개혁 부담 분담하고
노동계는 기득권 내려놓아야
개혁 최종목표는 경제역량 통합
더 좋은 더 많은 일자리 창출돼
인터뷰 = 유병권 사회부장 ybk@munhwa.com
정리 =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외압에 의해 ‘경영상 정리해고’와 ‘파견제’가 도입된 것을 제외하면 한국의 노동제도는 7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한국 경제가 ‘컨베이어’식 대량 생산·소비의 산업화 시스템에서 맞춤형 비스포크(bespoke) 디지털 경제로 압축·고도화하며 급전환했지만 노동제도는 시대 전환에 조응하지 못한 채 화석화됐다. 그 결과, 제도가 경제 현실의 발목을 잡는 제도적 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임금체제와 근로시간 개편’ 등 노동개혁 권고안을 마련해 윤석열 정부에 권고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디지털 혁명·탈탄소 경제에 의한 산업구조 등 우리는 3대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며 “이 같은 시대적 난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연공형 임금체계는 대기업·정규직·남성에게만 유리한 제도”라며 “여성과 청년의 일자리 진입을 막을 뿐 아니라 임금이 많은 기존 근로자의 조기 퇴직을 유도하는 부메랑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시간 개편을 ‘주 69시간 노동’이라는 장시간 노동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노동개혁을 무산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노동시장 개혁의 목표는 “경제적 역량을 통합하고, 일하려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더 좋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권 교수는 “정부는 5인 미만 사업장 등 85%에 달하는 비노조 근로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통해 개혁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노조는 근로자마저 왜 노조를 외면하는지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일자리에서 제외된 여성과 청년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면서 “경영계는 개혁에 따른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자기희생적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노총을 향해 “기득권 보호를 위해 다수의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를 거부하는 행태는 이율배반”이라며 “제도화 내에서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제부터는 개혁 메뉴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와 국회의 시간”이라며 “노동시장 개혁이 윤석열 대통령의 첫 번째 국정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에서 노동개혁이 성공한 적이 없다.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 국가의 노동시장 제도개혁은 심각한 경제위기의 산물이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2000년대 초반의 제조업 위축과 높은 실업률로 상징되는 ‘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한 수술이었다. 2010년 이후 추진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노동시장 제도개혁 또한 높은 실업률과 낮은 고용률을 탈출하기 위한 시도였다.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도 심각하다. 고용률은 62.7% 수준이다.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우리 경제의 목을 조르는 ‘침묵의 살인자’다. 점점 더 심해지는 노동시장 분절과 양극화 또한 경제의 잠재력을 와해시키는 원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의 성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탈탄소·디지털경제’로의 전환 또한 노동시장이 풀어야 할 난제다. 문제의 심각성을 노사와 정치권 모두 공감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의 적극적 지지와 지원이 필수적이며 이를 동원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연장근로 단위 기간 다양화와 임금체계 전환을 노동개혁 1순위로 내세운 이유는.
“한국의 근로시간 제도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규율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연장근로의 산정 주기 또한 1주 단위로 정하고 있어 시장변화와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노동시간이 곧 성과’라는 인식에 기초한 제조업형 근로시간 통제방식은 서비스업의 확산과 디지털·정보기술에 따른 경제구조 전환에 조응하지 못한다. 생산의 자동화와 유연화, 직종·직무의 다양화에 따른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조화되기 어렵다. 자율과 선택을 선호하는 근로자들의 성향 변화와도 양립하기 힘들다. 고용률을 높이려면 청년과 여성들의 일자리 참여가 불가피한데 이를 위해서는 근로시간을 다양화하고 보수 결정의 방법 또한 ‘공정’에 기반해 효율화해야 한다. 지금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으면 제도 지체의 비용이 클 것으로 판단했다.”
―제도 지체의 비용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제도 지체의 비용은 산업구조와 노동력의 구성, 근로자들의 요구, 일하는 방식 등 현실의 변화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 잡을 때 발생한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공장을 통제한 건 ‘시계’였다. 노동과정을 규율하고 임금을 결정한 것도 시간이다. 소위 포드주의(Fordism)의 대량생산 방식은 노동과정(표준화), 노동시간(효율화) 그리고 임금(소비)을 통합한 생산혁명이었다. 하지만 포드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연구·개발 업무는 매일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시간 일할 필요가 없다. 제조공정도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의 적용 등으로 노동과정 변화가 진행 중이다. 전통적 고용관계에서 벗어난 특수형태 근로자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현재의 근로시간 제도가 규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근로시간 규율체계를 다양화해 각각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제도의 효용을 높이는 길이다.”
“연공형 임금, 여성·청년 진입막아… 1주단위 근로시간은 디지털 역행”
대기업·정규직·남성에만 유리
경제 잠재력 와해시키는 원인
‘주69시간 노동’ 내세운 공격
개혁 막으려는 불순한 의도
주52시간제 전혀 변함없어
노동개혁 윤 정부 1순위 과제
노사 설득하고 참여 이끌어야
―연구회 발표 이후 오히려 논란이 된 것은 ‘주 69시간 노동’이다.
“‘주 69시간 노동’이라는 정의는 전략적 프레임이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제한(‘주 52시간제’)은 변함없다. 권고안이 제안한 대로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월 단위 이상으로 정하는 경우 연장근로를 특정주에 몰아서 하게 되면 다른 주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예컨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로 하는 경우 69시간 일할 수 있는 주는 한 주에 불과하다. 연장근로를 월 단위 이상 기간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와 개별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은 총근로시간 단축을 분명하게 지향하고 있다. 연장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분기 단위 이상으로 선택하는 경우 사용 총량의 비례적 감축을 권고했다.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한 달, 분기, 반기 및 연 단위로 확장하는 경우 연간 매주 69시간 근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69시간 장시간 노동체제로의 회귀라는 평가가 부적절한 이유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2010년대 큰 노동개혁을 단행했고, 프랑스는 최근 노동개혁을 실시했다. 경제와 산업구조 변화에 맞춰 노동제도를 바꾸는 일은 국가가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통계청 자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4.5%에 불과하다. 근로자 85%가량이 노동시장의 약자다. 15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2~1970년생)가 은퇴를 시작하고 있다. 이들의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소득액)은 22%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연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로 대체될 경우 창출되는 일자리는 9000개인 반면 사라지는 일자리는 10만8000개로 추산됐다.
―임금체계 개편 권고문에 대해 노동계에선 ‘임금 삭감’이란 주장도 나온다.
“임금수준 결정은 노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권고안의 핵심은 연공형 임금체계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 실현이 가능한 새로운 임금체계로 개편하라는 것이다. 연공형 임금 결정 방식은 연공의 안정적 누적이 가능한 대기업·정규직·남성에게 배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연공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 즉, 비정규직, 중소기업, 여성 등에게 연공제는 불공정하다. 게다가 다수 노동력의 연차가 높아 임금 부담이 큰 기업의 경우 하청 협력사나 소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연공형 임금체계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출발점이며,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현재의 임금체계가 지속할 수 있을까.
“연공형 임금체계는 고도성장기 근로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장기고용을 유인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베이비붐 세대가 취업하던 시절은 압축적 고도성장의 시대로 성장률이 매년 10%를 웃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률이 2~3% 수준이다. 저성장 균형(new normal)의 시대에 한 기업에서 정년까지 일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개인들의 이직에 대한 선호도 또한 과거에 비해 높다. 연공형 체계는 중고령 근로자들의 계속 고용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기업이 임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 등의 방법으로 50세 전후에 근로자를 ‘정리’하기 때문이다. 청년층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위해, 중고령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그리고 남녀 및 고용형태별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치 구현을 위해서도 연공형 임금체계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지금 현장에서도 경직된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주 52시간제에 따라 근로시간을 단축해 임금이 줄고, 임금이 줄어 대체 소득원을 찾아 소위 투잡, 스리잡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생산성을 향상해 시간당 급여를 인상하는 것이 방법이지만 지불 능력이 부재한 중소기업의 조건에서 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일과 생활 균형에 의한 삶의 질 개선 등은 노동시장 제도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노사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제도로써 노동시간을 규율하는 이유다. 하지만 제도가 모든 것을 규율할 수 없으며 규율되지도 않는다. 법정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자를 줄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경기가 좋으면 연장·휴일근무로 물량을 늘렸고, 경기가 안 좋으면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적정 인원의 80~90%만 채용했다. 우리나라 고용률은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7.7%)보다 낮고, 남성 고용률은 70%가 넘는 반면 여성 고용률은 57.7%로 낮다. 이 같은 근로시간 제도로는 일자리 나누기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힘들다. 미국의 경우 경기침체 시기가 되면 기업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정리해고다. 가장 처분이 쉬운 가변자본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연구회가 제안한 권고안이 입법화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 개혁의 시급함과 필요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노사의 이해조정과 타협을 위한 노력이다. 노동시장 개혁 논의는 단체교섭과 달라야 한다. 단체교섭은 임금과 근로조건 배분 즉, 노사 간 이해관계의 분배적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노사정 대화는 통합적 교섭을 특징으로 하며 파이의 확대와 확장이 제일 목적이다. 분배적 교섭에서는 정보의 과장과 의도적 왜곡을 통해 상대를 위협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지만, 통합적 교섭에서는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요컨대, 노사는 당사자 이해보다 노사 공동의 가치를 확대할 방법 모색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목소리 없는 계층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보호를 위한 노력은 노동시장 제도개혁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정부는 85%의 목소리 내지 못하는 계층들, 중소기업·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근로기준법 적용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크다.
“노동시장 개혁이란 것은 이해당사자가 결부된 이슈이면서 중요한 쟁점은 입법이 필요한 이슈로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국회는 여러 계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개혁 메뉴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의 시간이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개혁이 윤 대통령의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이해당사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참여를 구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노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노사는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노동계는 노조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 근로계층조차 노조를 외면하는지, 노조 조직률이 14.2%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인지,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에서 왜 간접고용을 더 많이 활용하는지, 노동자가 왜 보수정권에 투표하는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경영계는 규제완화 요구 전에 기업과 기업인들이 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인지, 공장에서 청춘을 바친 노동자들 없이 자신들의 경제적 성과가 가능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 책임의 상당 부분이 대기업에 있다는 사실, 아울러 노동시장 양극화의 과실을 대기업이 독점해 왔다는 것도 중요한 성찰의 대상이어야 한다.”
―연구회가 상생임금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이유는.
“상생임금위원회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임금 및 노동시장 관련 체계적 정보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 관련 통계가 제한적이며,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의 행정데이터 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종 행정데이터와 통계청 조사정보 가운데 노동 관련 통계만을 분리·통합 운영하는 별도의 행정기관이 필요하다. 미국은 노동부 산하기관으로 노동통계국(BLS)을 두고 있으며 이들의 노동시장 내 위상과 역할은 막강하다. 무엇보다 특정 업종 또는 기업 등에서 임금체계의 개편을 모색하는 경우 현재는 적절한 통계를 구하기 어렵다. 노동통계 전담기관이 만들어진다면 이상의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 더불어 상생임금위원회의 역할 또한 활성화될 것이다.”
―근로기준법 중에서 이건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연구회의 권고안대로 근로시간 관리 방식의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지만 당장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권고문의 핵심인 연장 근로시간(근로기준법 53조) 단위 기간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63조 ‘근로시간 적용의 제외’의 대상을 현행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제 및 산업구조의 변화, 노동과정의 혁신, 일·생활 균형 요구 등 최근의 변화를 반영한 제외 대상 사업과 업무의 현대화가 요구된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고소득 전문직 등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규정 적용 제외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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