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서른은 요즘 마흔, 피터팬을 넘어 네버랜드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시간이 거꾸로 간다.
2023년 6월부터 나이 계산법이 만 나이로 통일되기에, 겨울에 태어난 나는 곧 두 살 어려진다.
그렇지만 나이 제도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시간의 역행을 체감 중이었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어서 초면에 나이 대신 엠비티아이(MBTI·성격유형지표)를 묻는 시대가 됐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거꾸로 간다. 2023년 6월부터 나이 계산법이 만 나이로 통일되기에, 겨울에 태어난 나는 곧 두 살 어려진다. 그렇지만 나이 제도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시간의 역행을 체감 중이었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크게 두 가지를 놀라는데 ‘도우리’가 실명이라는 점, 그리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는 점이다. 그럴 때면 나는 으레 ‘요즘 사람들 다 동안 아니냐’고 묻고, 다들 끄덕이며 “이젠 마흔은 돼야 그 옛날 ‘잔치는 끝났다’는 서른”이라고 말한다. 마침 올해 <트렌드 코리아>가 꼽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는 ‘네버랜드 신드롬’(Neverland Syndrome)이다. 과거에 ‘부적응’을 뜻했던 피터팬 신드롬과는 다르게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미 ‘옛날 30대와 요즘 30대 비교.JPG’ 게시글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2천만 명 가까이 구독하는 미국 유튜버 브이소스(Vsauce)의 콘텐츠 ‘옛날 사람들은 더 늙어 보였나?’(Did People Used To Look Older?)는 천만이 조회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 국내외 누리꾼들은 요즘 동안의 배경으로 주로 생활수준 향상과 평균수명 연장, 의료·안티에이징(항노화) 산업 발달, 패션 스타일링의 차이를 짚었다.
여기에 동안 당사자로서 동안의 비결(?)을 추가하자면 ‘단기 경력 마사지’다. 프리랜서 생활을 지속하며 알바생 옷차림을 하고 계약직 표정은 지어봤어도 정장 두어 벌쯤 갖추며 사원증을 목에 걸거나 팀장으로서 업무를 지시한 적은 없다. 전통적으로 그 나이대가 치렀던 ‘나잇값’을 내지 않았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어서 초면에 나이 대신 엠비티아이(MBTI·성격유형지표)를 묻는 시대가 됐다. (자발적인 경우도 많지만) 나이마다 놓인 연애·취직·결혼·출산 같은 전통적인 어른됨의 경로는 일부의 특권임을 다들 공유하는 사실이니까.
‘옛날 30대’ 사진의 특징이 있다. 소개란이 이름과 직장명은 물론 친인척 관계나 주소의 읍 단위까지 상세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옛날 30대의 노안에는 나이듦에 대한 강박이 희미해 보인다. 직장·관계·주거지·신분이라는 ‘어른의 중력’이 붙잡아줬을 테니까. 그때의 패션도 단지 촌스럽다기보다 정장이나 제복처럼 사회적 소속이 뚜렷하다. 반대로 요즘 사람들의 패션은 개성적이라기보다 개인적이며, 단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른 소속이 지워진 거다.
어른의 중력과 사회안전망이라는 대기권이 희박해지는 시대에, 기댈 건 ‘나’라면? 절박하게 동안을 가꿔야 한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저서 <세대 게임>에서 이탈리아 편집자 리카르도 마체오의 ‘소아혐오’(Paedophobia)를 말한다. ‘청년성’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오히려 청년이 희망에서 소외되고 배려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년성을 상품과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어른들은 청년의 과업을 더 잘 수행하게 됐지만, 청년은 빈곤하고 의존적인데 과거의 공적도 없으니 도움받을 자격도 없는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어리게 사는 게 미덕이라면서 사회 초년생의 서투름을 엠제트(MZ)세대의 특징으로 조롱하는 개그가 공존하는 사회인 이유다. 그림자 없는 피터팬처럼 나이가 허락되지 않는 얼굴투성이일 수밖에.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