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찰, 압수수색 도중에도 핼러윈 정보보고서 삭제

유영규 기자 2023. 1. 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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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


정보경찰이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 책임론을 차단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받는 와중에도 핼러윈 정보보고서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서울 지역 정보경찰을 지휘하는 간부는 자신의 지시대로 보고서를 삭제하지 않자 압수수색 직전 일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삭제를 거듭 종용했습니다.

10일 법무부가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에게 제출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56)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경정)(52)의 공소장을 보면 박 전 부장은 용산서 등 압수수색 전날인 지난해 11월 1일 오후 8시 30분쯤 삭제를 처음 지시했습니다.

박 전 부장은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정보과장들이 참여한 카카오톡 대화방에 "언론에서 경찰 문제점을 취재 중이니 불필요한 문서가 남지 않도록 규정에 따라 관리하라. 집회 시위 관리만 하고 아니면 조용히 계시면 된다"고 적었습니다.

박 전 부장은 이튿날 오전 재차 대화방에 "압수수색·감찰·언론 취재 대비 규정에 안 맞는 문서를 보관하는 일이 없도록 보안 관리 점검"이라고 쓰며 보고서 삭제를 종용했습니다.

비슷한 시각 김 전 과장은 경찰청 특별감찰반으로부터 보고서 제출을 요청받자 서울청 지휘부에 지침을 물었습니다.

박 경무관은 김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해를 안 하고 있냐. 지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라"며 삭제를 거듭 지시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압수수색 3시간 전인 11월 1일 오전 11시 45분 보고서 삭제를 위해 외근 중인 정보관들을 복귀시켰습니다.

보고서 삭제 지시는 같은 날 오후 2시 40분 압수수색에 착수한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관들이 압수물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압수수색을 중단한 사이에도 계속됐습니다.

용산서 A 정보관이 작성해 서울청에 보고한 '이태원 할로윈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는 핼러윈 전후 이태원 일대에 인파 운집으로 인한 위험성이 있고, 이에 대비한 경찰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골목에 많은 인파가 몰려 각종 위험이 우려된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애초 용산서가 핼러윈에 대비하기 위한 서울청 차원의 지시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도 공소장에 적시됐습니다.

서울청 정보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해제 이후 첫 핼러윈에 많은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10월 6일 일선 경찰서에 정보 수집을 지시했습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10월 14일에는 보고서를 취합해 김광호 서울청장(59)에도 보고했습니다.

김 청장이 10월 17일과 24일 화상회의를 통해 서울청 정보부에 "촘촘한 사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결국 아무런 대책이 세워지지 않아 참사로 이어졌다고 검찰은 지적했습니다.

참사 이후 경찰 책임론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부각해 비난 여론을 차단한다는 등의 대응방안을 공유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박 전 부장은 참사 이튿날인 10월 30일 오후 정보경찰들에게 "사고 책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면 참고하라"며 "경찰의 경력 배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으로 (여론이) 흐를 경우 서울청 대비 미흡과 주말 대규모 집회 시위 대응으로 경력 부족 등이 부각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크고, 앞으로 지역 행사·축제 등에 더 많은 경력 배치 문제로 연결돼 수익자 부담 원칙, 경찰 만능주의 극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주최측과 지자체의 안전불감증으로 귀책 될 경우 이들의 책임 강화로 이어져 경찰 부담이 완화된다"며 "적극적인 수사 드라이브로 주최측과 지자체 책임이 부각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삭제된 보고서를 작성한 용산서 정보관이 핼러윈 당일 현장에 나가 인파 관리를 하겠다고 나섰으나 김 전 과장이 묵살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A 정보관이 지난해 10월 26일 김 전 과장에게 핼러윈 당일 이태원에 나가 인파를 관리하고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경력을 요청하는 등 대응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김 전 과장은 "이거(보고서)를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고 하니까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이건 주체도 없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거다. 누가 크리스마스 때에 정보관이 나가나"라며 막았습니다.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지난달 30일 증거인멸교사와 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김 전 과장 지시로 문제의 보고서를 직접 삭제한 용산서 정보과 곽 모 경위는 증거인멸과 공용전자기록손상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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