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롱다리 도마뱀, 작은 머리 여우…도시에 길든 야생동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1. 1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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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운 벽 타러 접착판 넓어진 도마뱀
쓰레기통 뒤진 여우는 머리 작아져
도시에 적응하며 유전자도 변화
”동물 보존에 도움 vs 생태 파괴의 반증”
푸에르토리코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볏아놀도마뱀. 접착판 역할을 하는 발가락 바닥은 미끄러운 건물 벽을 타도록 넓어졌다./미 뉴욕대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지 않았거든.”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친구를 찾는 어린 왕자에게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 말이야. 넌 나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테니까”라고 말했다.

야생동물들이 도시에서 어린 왕자 가까이 살면서 마침내 친구가 됐다. 여우는 음식 쓰레기를 먹기 좋도록 주둥이가 짧아졌고, 도마뱀은 발가락이 넓어져 미끄러운 벽을 타기 쉬워졌다. 도시가 야생동물의 새로운 터전이 되면서 새로운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도시 도마뱀은 롱다리

미국 뉴욕대의 크리스틴 윈첼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푸에르토리코에 사는 도마뱀들이 도시 생활에 적응하면서 유전자까지 달라졌다고 발표했다.

볏아놀도마뱀(학명 Anolis cristatellus)에게 도시는 살기 힘든 곳이다. 몸을 숨길 덤불도 적고 유리나 금속 표면은 나무줄기보다 미끄러워 타고 오르기 힘들다. 열매나 곤충도 부족해 인간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어야 한다.

뉴욕대 연구진은 푸에르토리코 도시 세 곳에서 도마뱀 96마리를 잡아 숲에 사는 도마뱀과 비교했다. 앞서 연구진은 도시에 사는 도마뱀은 접착판 역할을 하는 발가락 바닥이 이전보다 넓어져 미끄러운 건물 벽을 잘 탈 수 있으며, 다리도 길어져 몸을 숨길 곳이 부족한 도시에서 재빨리 도망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에 채집한 도마뱀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에르토리코 볏아놀도마뱀은 몸을 숨길 덤불이 부족한 도시 환경에서 빨리 도망갈 수 있게 다리가 길어졌다. 접착판 역할을 하는 발가락 바닥은 미끄러운 건물 벽을 타도록 넓어졌다./미 뉴욕대

이번 연구는 DNA 분석까지 진행했다. 다른 도시에 사는 도마뱀은 유전적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면역과 신진대사 관련 유전자 33개에서 같은 변화가 포착됐다. 유전적으로 떨어진 집단에서 같은 특성이 발전하는 이른바 평행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연구진은 도시에 사는 도마뱀은 숲에 사는 동료보다 기생충 감염이나 부상 위험이 더 크다는 점에서 면역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대사유전자 역시 먹이가 달라졌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피부와 팔다리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 93개도 변해 도망가기 좋도록 다리가 길어지고 미끄러운 벽을 탈 수 있게 발가락 바닥이 넓어졌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영국 여우는 머리 작아져

영국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여우도 마찬가지다. 영국 글래스고대의 케빈 파슨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0년 ‘영국왕립학회보 B’에 “도시에 사는 붉은 여우는 두개골 형태가 도심 생활에 맞게 야생 여우보다 전반적으로 작아졌으며, 암수 차이도 줄었다”고 밝혔다.

파슨스 교수 연구진은 국립 스코틀랜드 박물관, 런던 자연사 박물관 등에 보관 중인 여우 두개골 274점을 조사했다. 두개골은 모두 발견 지역이 도시 또는 시골로 표시돼 있었다. 도시 여우는 주둥이가 짧고 넓적해졌다. 뇌 크기도 시골 여우보다 줄었다. 두개골 형태의 암수 차이는 28%나 줄었다.

영국 도시의 쓰레기통 주변에 있는 붉은여우. 시골 여우보다 두개골이 작아졌다./Sam Hibson

연구진은 시골 여우의 기다란 주둥이는 도시 여우보다 더 빨리 다물 수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야생에서는 도망가는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주둥이를 빨리 닫을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도시에서는 사냥보다는 쓰레기통에서 먹이를 주로 찾는다. 이때는 뭐든지 잘 깨물어 부수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고 냄새를 맡을 때도 주둥이가 짧은 편이 낫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뉴욕 쥐는 짝짓기 가려

다른 곳에 오래 살면 친척이라도 멀어진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시골쥐와 도시쥐는 함께 살 수 없는 존재였다. 뉴욕에 사는 시궁쥐도 마찬가지다.

미국 퍼담대의 제이슨 문시-사우스 교수 연구진은 2017년 ‘분자 생태학’지에 뉴욕 시궁쥐의 유전자를 분석해 발표했다. 주택가에 사는 시궁쥐는 도심에 사는 시궁쥐와 짝짓기를 하지 않았다. 둘 사이는 상업지구가 가로막고 있었다.

매는 먹잇감인 비둘기가 풍부한 도시에 정착했다. 뉴욕 맨해튼 도심에서 촬영된 매./Jessica Turco

도심 하늘도 야생동물의 터전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와 퀸스를 연결하는 트록스넥 현수교의 110m 높이 기둥은 매들의 새로운 서식지가 됐다. 뉴욕의 매는 비둘기라는 풍부한 먹잇감을 노리고 서식지를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에 살기 위해 날개도 바꿨다. 미국 털사대 연구진은 지난 2013년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삼색제비가 자동차에 부딪혀 죽는 수가 급감한 것은 날개가 갈수록 짧아졌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뉴욕대의 윈첼 교수는 “도시화는 지구 3분의 2에 영향을 미치고 점점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며 “야생동물이 도시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면 멸종위기종의 보존활동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이미 도시화가 된 종은 오히려 자연보다 인공 환경을 유지하는 게 보존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절벽 대신 교량 꼭대기에 둥지를 튼 매. 뉴욕 교통국 직원이 둥지에서 어린 매를 확인하고 있다./뉴욕 교통국

그렇다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라는 원죄에서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있다. 도시의 진화는 생태계 파괴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멘노 실추이젠 교수는 2018년 저서 ‘도시로 온 다윈(Darwin Comes To Town)’에서 “도시에서 적응한 종보다 훨씬 많은 종이 서식지를 잃고 이미 사라졌음을 알아야 한다”며 “생태계를 손대지 않고 보존해야 종 다양성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여우는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린 왕자에 길들었다. 이제 인간이 어떻게 여우에 길들지 답할 차례이다.

참고자료

PNAS, DOI: https://doi.org/10.1073/pnas.2216789120

Molecular Ecology, DOI: https://doi.org/10.1111/mec.14437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https://doi.org/10.1098/rspb.2020.0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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