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쉬어가는 풍경] 내 인생의 요람, 팔당 강변 외갓집

한국화가 박진순 2023. 1. 1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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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해가 오면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요즘은 새해가 오면 어릴 적 추억이 자꾸만 생각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아버지가 장손이셨고 또 큰집이었기에 일 년 내내 제사도 많고 손님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할아버지·할머니와 삼촌들, 우리 5남매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일 년 내내 많은 제사와 할아버지·할머니 생신까지 그리고 아버지와 우리 5남매들의 생일상 등 집안 행사가 많아서 늘 고생하시던 엄마 모습이 생각날 때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아릿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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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신익희 선생 생가
어릴 적 외할아버지께서 사셨던 경기도 광주 외가댁을 그린 그림이다. 앞에 자갈돌이 박힌 벽이 부엌 건물이고, 멀리 보이는 안채에 건넌방이 외할아버지께서 기거하셨던 방이다. 하얀 회벽과 눈이 덮인 마당에 강아지 발자국이 정겹다. 외가댁(신익희 생가) 98x75cm. 한지에 수묵담채.

해마다 새해가 오면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요즘은 새해가 오면 어릴 적 추억이 자꾸만 생각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아버지가 장손이셨고 또 큰집이었기에 일 년 내내 제사도 많고 손님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할아버지·할머니와 삼촌들, 우리 5남매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일 년 내내 많은 제사와 할아버지·할머니 생신까지 그리고 아버지와 우리 5남매들의 생일상 등 집안 행사가 많아서 늘 고생하시던 엄마 모습이 생각날 때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아릿해 온다. 4남1녀의 아들 많은 우리 집의 유일한 딸인 내가 엄마의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많은 농사일에 시부모를 모시는 엄마는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으셨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서 시집을 오셨다. 팔당댐에서 가까운 팔당 상류의 광주시 초월읍 사마루(서하리)라는 동네에 외가댁이 있었다. 어릴 적에 외가댁에 가면 언제나 정갈하게 하얀 한복을 입고 계셨던 외할아버지는 항상 다정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 흰 수염을 만지시던 모습이 신선 같았다.

외할아버지가 기거하시는 방 벽면에는 서책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늘 책을 읽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책을 가까이하시던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친할아버지는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심지어 땅 문서를 술집에 갖다 주고 술을 드셨다고 한다. 일 년간 농사지은 곡식을 가을에 추수해 장에 팔러 나가셨다가 그 돈을 가지고 서울로 가셔서 그 돈이 다 떨어지면 집에 오셨다니 가족들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늘 술 취한 모습의 친할아버지와 늘 서책을 가까이하신 외할아버지 두 분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두 분 모두 그리운 분들이다.

새해에는 항상 외가댁으로 가서 외할아버지께 새배하고 새해 인사를 다녀왔다. 외할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는 외삼촌 부부와 함께 사셨다. 달성서씨 종친의 종손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재산이 아주 많으셨다고 한다. 6대 독자이셨던 외삼촌도 인정 많고 좋은 분이셨지만, 그 많던 재산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 버렸다.

어느 해 광주 퇴촌에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이 있는 선산조차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외할아버지께서는 그 충격으로 병석에 누우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그나마 남한산성 근처에 남아 있는 산을 더 이상 팔지 못하도록 문중어른들 4명한테 공동명의로 옮겨 놓으시고 투병하시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가산이 없어지는 걸 보면서 돌아가셨다.

이번 그림은 외가댁 모습이다.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가이기도 한 곳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광주시에서 새로 정비하고 복원해서 관리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건넌방에서 주무셨고 외삼촌 부부는 안방에 기거하셨다. 안방 옆 부엌에는 가마솥과 작은 무쇠솥이 있었고, 안방으로 연결되는 쪽문이 있다. 부엌에서 음식을 해서 이 쪽문으로 밥상을 나르고 안방에서 밥을 먹었었다. 부엌에는 연기가 나가도록 창살들이 일렬로 아름답게 박혀 있다,

그리고 안방에는 큰 다락이 있었다. 다락에는 떡을 담아 놓은 광주리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집이지만 아름다운 집이다. 집 외벽은 회벽으로 하얗게 발라져 있고, 부엌의 외벽에는 강가에서 주운 돌을 박았는데 소담한 조형미가 뛰어나다. 이따금씩 이곳을 들르면 지금도 건넌방에서 외할아버지께서 "진순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외가댁을 먹을 갈아 화선지에 옮겨본다.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외갓집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국화가 박진순

인천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인천대학교와 경기대학교에서 교수 활동.

1994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국립현대미술관).

2006 서울미술대상전특선(서울시립미술관).

2006 겸재진경공모대전특선(세종문화회관).

한국미술협회. 서울미술협회. 동방예술연구회 회원.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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