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운명이 뒤바뀐 스타의 ‘인생극장’[시네프리뷰]
2023. 1. 11. 07:33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코미디를 표방한 만큼 아기자기한 이야기 사이에 깨알 같은 유머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나 인물, 심지어 특정 상황과 대사까지 과거 영화와 유사점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제목 스위치(Switch)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2분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마대윤
출연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 박소이, 김준, 김미경
개봉 2023년 1월 4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최고의 스타로 대접받고 있는 배우 박강(권상우 분).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그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주변에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 크리스마스이브,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이자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매니저 조윤(오정세 분)과의 술자리를 마친 후 얼큰하게 취한 그는 택시를 타고 귀가해 침대 위에 쓰러진다.
다음 날 아침, 박강은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 수현(이민정 분)의 남편이자 개구쟁이 남매의 아빠 모습으로 눈을 뜬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더구나 매니저였던 절친 조윤이 박강을 대신해 대스타가 돼 있다. 청천벽력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이전까지 살아왔던 인생과는 다른 갈래의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던 박강은 새로운 갈등에 휘말린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작품이다. 코미디를 표방한 만큼 아기자기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깨알 같은 유머가 펼쳐진다. 연예계 사정에 관심이 많거나 출연 배우들의 행보를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면에서 성탄이나 세모에 더 어울릴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다소 늦은 개봉 시기가 아쉽다.
기교적 완성도와는 별개인 ‘작품의 가치’
정작 이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유감스럽게도 작품의 외부에서 포착된다.
제목과 초반에 주어지는 소극적 정보만으로는 인생이 뒤바뀐 두 남자의 상황을 병행해 넘나들며 진행되는 요절복통 소동극이 예상된다. 하지만 박강이라는 한 인물에게 전적으로 집중된 판타지 멜로로 전개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떨쳐낼 수 없는 꺼림칙한 의문이 영화 끝까지 유지된다.
영화가 끝난 후 시사회를 빠져나오는 자리에서 마주친 지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이건 좀 심한데요. 그냥 <패밀리 맨>이네요.”
솔직히 필자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같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찰나의 ‘경험’을 통해 현실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보편적 주제야 충분히 답습할 수 있다. 문제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세세한 구조나 인물 구성, 심지어 특정 상황과 대사까지 유사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실제로 인터넷상에는 개봉 전부터 비슷한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이 적잖게 발견된다. 애초 특정 작품을 리메이크했다는 선언이 공식적으로 전제됐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다. 비단 <스위치>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와 기회주의의 부작용
갈수록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 흔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다양한 형태로 증가하고 있는 영상매체의 범람과 혼돈 속에 진정한 의미의 ‘창의’에 대한 갈망과 가치부여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된 듯하다.
일단 영화계 전반에 팽배한 상업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입증된 성공작들을 흉내내는 안일함으로 타협된다. 어떻게든 큰 수익을 남기면 업적으로 대접받는 곳이 영화계다.
과거에 비해 표절이나 모방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드물어지고 엄중한 책임규명에 대한 잣대가 느슨해진 것 역시 또 다른 원인이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가볍게 소비되고 쉽게 잊히는 세태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업계의 암묵적 협작이 공조해낸 짙은 음영이다.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고 쉽게 결론이 날 화두도 아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도의 및 윤리와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에 눈감고 덮어둘 수만은 없는 현상이다.
진위를 함부로 예단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안정효 소설을 영화화한 정지영 감독의 1994년작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자신의 표절이 들통 난 시나리오 작가 병석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이것 하나만은 믿어줘. 나도 나 자신에게 속은 거야. 모든 게 내 창작인 줄 알았어. 나 임병석이가 할리우드 키드에게 속은 거야.”
결국 진실은 당사자 안에 있다.
끊임없이 윤회하는 ‘스크루지’ 패밀리
당연히 가장 선배는 찰스 디킨스가 1843년 발표한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에비니저 스크루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오래전 죽은 친구 유령의 방문을 받은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하면서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다른 모습들을 목격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고전 중의 고전인지라 공식적인 영화화만도 수십 편에 이른다. 직·간접적으로 인용하거나 패러디한 작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요즘 관객들에게는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패밀리 맨(The Family Man)>(2000)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 중 가장 친숙하다.
<패밀리 맨>도 1990년 발표된 제임스 올 감독의 <운명의 칵테일(Mr. Destiny)>을 원형으로 해서 재각색한 작품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래리(제임스 벨루시 분)는 어릴 적 야구 경기에서 범한 단 한 번의 실책이 인생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생일, 자동차까지 고장 나 어쩔 수 없이 근처 술집에 들어선 그는 의문의 바텐더(마이클 케인 분)가 건네준 칵테일을 마시고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갑부의 삶을 누리고 있는 모습으로 깨어난다.
2015년 여름 개봉한 강효진 감독의 <미쓰 와이프> 역시 공개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패밀리 맨>과 비교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굳게 믿는 변호사 연우(엄정화 분)는 교통사고 후, 저승사자들의 실수로 인해 한 달간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를 통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이전까지의 삶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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