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편집실에서]
서울, 부산, 광주, 인천 등 대도시에서 야당 돌풍이 일었습니다. 이민우라는 당 총재가 있었지만 사실상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야권의 두 거물이 진두지휘한 1985년의 2·12 총선(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였습니다. 신군부 세력이 만든 민정당의 ‘아성’이었던 대구에서도 유성환, 신도환 등 신한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됐습니다. 당시는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였습니다.
지역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1987년 직선제 개헌과 함께 도입한 소선거구제(선거구별로 1명을 뽑는 제도)가 뿌리를 내리면서 자취를 감췄던 중대선거구제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낙관할 단계는 아닙니다. 무수한 정치개혁 논의와 함께 오래도록 여기저기서 군불을 지폈지만,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해온 역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국가 의전서열 1위인 대통령이 운을 떼고 2위인 국회의장이 맞장구를 쳤지만,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이 여전합니다.
장단점도 뒤섞여 있습니다. 국민의힘 ‘텃밭’이랄 수 있는 영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반대로 호남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후보가 뽑히는 등 지역편중 완화 가능성은 커지지만, 자칫 ‘양당 독재의 전국화’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한국 정치 지형에서 중대선거구제만 도입한다고 사표(死票) 확산, 진입 장벽 고착, 다당제 원천 차단 등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순기능은 키우고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를 개편하려면 백가쟁명식의 난상토론이 불가피합니다. 심지어 개헌과 연동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선거구 획정 시한(2023년 4월 10일)이 100일도 채 안 남았습니다. 어차피 안 될 일을 정략적으로 접근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유권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비등한 건 그래서입니다. 전체의석의 과반을 쥔 민주당의 반대를 예상하고 여론의 점수만 따려는 정부·여당의 ‘불순한’ 의도라는 거지요. 우리는 진정성을 갖고 할 만큼 했는데 거대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못했다, 이렇게요. 섶에 불씨만 던져놓고 정부·여당이 빠져버리면 결론은 어찌 될까요. 특정 지역에선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우스꽝스러운’ 선거 판세의 재연이 불 보듯 뻔하겠지요.
민주당도 이 문제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으로 논의에 임하기를 촉구합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최근 ‘교토삼굴’(영리한 토끼는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굴을 3개 파놓는다)을 언급했습니다. 정치적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진짜 여러 변수와 부수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당이 제대로 준비해야 할 과제가 바로 ‘정치개혁’ 아닐까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 규칙을 어떻게 정할지는 후보 개인으로는 당락을, 정당으로서는 전체 의석수를 좌우합니다. 여야가 유불리를 따져 공방만 벌이다가 도로아미타불이 되거나 안 하니만 못한 희한한 결론을 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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