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옥에서 온몸 던져 코로나를 막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지금 자원한 선생님 한 분이 거기를 혼자 힘겹게 틀어막고 계시는데... 아무도 내려가려고 하지를 않네요.”
의사협회 직원이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담아 내던진 이 한 마디가 그를 “지진처럼” 흔들어 깨웠다. 누군가 홀로 지옥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그는 수화기에 입을 가까이 댔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그 정신병원으로 가겠습니다.”
2019년 진료를 그만둔 뒤 하려고 했던 일들―책을 쓰거나, 클래식 공연 기획을 하거나, 아니면 연극을 올리거나―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의사만 때려 치면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서 모두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잘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팬데믹이 막 시작된 이듬해 일월과 사월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보내야 했던 상실감 역시 컸다. 거의 8개월을 “폐인처럼” 보낸 뒤에야 뭔가 확 바꿔야겠다고, 리셋해야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코로나로 격리된 이들 폐쇄 병동은 그 시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이었다.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정신질환자들의 코로나를 치료하는 일은 고됐고, 무사안일과 탁상행정으로 시스템과 마인드가 무너진 공공 정신병원도 또다른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떻게라도 사람들을 살리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공공 정신병원 의료봉사 활동이 거의 끝나가던 지난해 3월 어느 날 오후, 그는 홍대 카페에서 출판사를 하는 친구를 만났다. 여러 공연에 함께 하면서 이십년 넘게 교류해온 지인이었다. 자신의 코로나 의료봉사 경험을 조용히 듣고 있던 친구가 제안했다. 네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으로 내보내면 어떨까, 암울하고 먹먹했던 코로나와의 사투를 생생하게 그린 증언문학으로 말야. 그는 의료봉사 기간 자신의 활동을 기록해 놓은 수첩이 떠올랐다. 그 수첩을 보면 기억이 날 것도 같았다. 그럼, 써보자.
그는 이때부터 “폭풍처럼” 글을 써내려갔다. 알려지지 않은 코로나 전쟁 최전선의 실제를, 지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의 분투를, 분노와 눈물과 치유를. 환자들의 병명과, 증상과, 처치 내용을 기록해 놓은 수첩은 매우 유용했다.
전문의 출신 임야비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 전쟁 최전선의 모습을 현장감 넘치는 르포르타주로 담은 논픽션 ‘그 의사의 코로나’(고유명사)를 펴냈다. 지옥의 한 가운데에서 생명을, 아니 존재의 존엄을 놓치지 않으려는 ‘최초 인간들’의 분투를 그린 비범한 증언문학이다.
“2년 전 시작된 코로나는 그 베일과 가면을 깡그리 벗겨냈다. 속절없이 알몸이 된 우리는 그간 보지 않으려 했던 틈, 갈기갈기 찢어지고 흉측하게 벌어진 그 틈을 직시해야만 했다. 그것이 우리를 더 미치게 했고 또 지치게 했다. 오랫동안 코로나 확진 정신질환자를 돌보면서 어쩌면 코로나는 정신질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백신도 없고 또 잘 낫지 않는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 사회의 후미진 곳에 갇혀 있는 정신병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는 광기처럼, 코로나는 우리의 뇌나 가슴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509-510쪽)
47세의 전직 의사 출신 임야비는 왜 코로나 전쟁의 최전선을 리얼하게 담은 논픽션을 써야 했을까. 그의 존재론적 행로는 어디를 향할까. 임 작가를 지난해 12월29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출간 이후 반응은.
“아직 출간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완독하신 분이 많지 않는 것 같다. 완독자 가운데 여성분들이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는 모습과, 작품 속의 소현정신병원 이야기가 되게 슬펐다고 하더라.(정부 쪽 반응은) 아직 모르고 계신 것 같다.”
―코호트 격리된 정신병원의 코로나 대응은 뭐가 그렇게 어려웠나.
“고열에 호흡곤란이 심해도 베시시 웃고만 있다. 정신질환자라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묶어 놓으면 풀려고 한다. 코로나에 걸린 정신질환자들은 일반 코로나 환자를 함께 치료할 수 없다. 증세가 심한 몇몇 분들은 의료진과 다른 환자들에게 위험한 폭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간 곳은 코로나에 걸린 정신질환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들은 원래 전신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에 걸리면 급격히 안 좋아진다. 이들 가운데 상태가 좋지 않으면 큰 병원 중환자실로 보내야 하지만, 이미 환자가 많은데다가 정신질환자들은 따로 치료해야 해서 중환자실 입원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어떻게든 중환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소현정신병원에 있던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이를 하려고 했다.”
―두 번째 공공 정신병원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던 같다.
“먼저, 저의 시각은 그냥 일개 봉사자의 그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싶다. 제가 잘한다고 말했던 기관에 제가 보지 못한 잘못한 점이 많을 수도 있고, 제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기관에 제가 보지 못한 잘하는 부문이 많을 수 있다. 그냥 맨 밑바닥에서 싸웠던 한 명의 시각일 뿐이다. 실제 다른 공공 정신병원들은 굉장히 잘했다고 하더라. 증거도 몇 개 있다. 소현정신병원처럼 열심히 온몸으로 막아낸 곳도 많다. 다만 제가 두 번째 봉사했던 공공 정신병원은 공공의료를 한다고 건물을 크게 짓고, 병상도 많이 지어놓았더라. 의료 인력도 많았는데, 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더라. 처음 세 달 동안 현장에서 정신과 의사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여기 공무원 정신과 의사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병동 스테이션에서 간호사들에게 물으니 말해주더라. 자기네들도 잘 모른다고. 이곳 정신과 전문의들은 자신들은 정신과 전문의여서 코로나 환자를 볼 수 없다며, 정신과 환자들에게 그들이 원래 복용하던 정신과 약만 반복 처방해 주고 환자들이 열이 나거나 구토하거나 폐렴에 걸려 헐떡거리는 것을 보려 하지 않았다. 더 웃긴 건, 4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에 레지던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이 레지던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신 의대를 갓 졸업하고 인턴도 하지 않은 공중 보건의나 저희 같은 봉사자한테 코로나 대응을 다 맡겼다. 의대 6년과 인턴 1년, 정신과 레지던트 4년을 모두 마친 전문의인데도, 아무것도 안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다른 공공 정신병원 정신과 전문의들은 흰색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심폐소생술을 했고, 심지어는 평생 환자를 보지 않는 임상병리과 전문의나 엑스레이랑 씨티만 보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코로나 대응을 했다. 시스템과 마인드의 문제였다.”
―방역 당국 지도부는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나.
“저는 일개 자원 봉사자이기에 그건 잘 모른다. 제가 보기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그냥 이 정도면 됐다고 좀 방치를 한 것 같다. 공론화하면 사기가 더 떨어질 수 있으니까. 물론 공공 의사들을 무조건 뭐라고만 할 수 없는 게 한 달 동안 환자 한 명을 보나, 1천 명을 보나 월급이 똑같다. 월급도 민간보다 적다. 그럼 누가 하겠느냐. 월급도 작은데 열심히 코로나 환자를 볼 필요 없지, 하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 같다. 막연하게 공공에 대한 헌신만 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그들은 이 나라의 공공 의사다.”
인터뷰에서 그는 작금의 공공의료 개선 방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지만, 책의 에필로그에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공공 의료가 지금의 암울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의료 서비스를 받은 환자가 내야 할 돈은 공공으로 하되, 서비스를 제공한 의료진에 대한 보상은 철저하게 성과급으로 해야 한다. 팍팍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공공은 양을 늘리고, 경쟁은 질을 높인다. 이 양팔 저울의 평형을 맞출 이는 의사도 환자도 아닌 행정 전문가일 것이다.”(497-498쪽)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재미있더라.
“처음 소현정신병원에 내려가자마자 무서워서 도망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산부인과 전문의 미리암 수녀가 그곳에서 혼자서 몇 주 동안 막고 있더라. 깜짝 놀랐다. 미리암 수녀를 보고 생각이 들었다. 아, 엄마가 나한테 보낸 사람이구나. 미리암 수녀는 지금 또 비슷한 병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의사 수녀로서 봉사를 계속하는 것 같다. 안동권 선생님은 환자를 꼼꼼하게 잘 봤다. 대충 할만도 했는데, 엄청 성실했다. 저녁 근무시간보다 30분 일찍 와서 미리 인수인계를 받고, 아침 근무를 마칠 때에도 다음 근무자와 20분 늦게까지 인수인계를 한다. 간호사의 경우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비슷한 성격이 있는 사람을 한 명으로 합쳤다. 공공 정신병원의 남자 간호사들도 기억이 남는다.”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온몸을 던져가면서 코로나를 막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암 수녀님, 안동권 선생님, 정철훈 원무과장, 김지현 수간호사.... 저는 제가 본 것만 옮겨 적었을 뿐이다. 물론 반대인 사람도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셀 것 같아서 안 쓴 부분도 많다. 별의별 이기심의 끝을 본 적도 있고, 무사안일 탁상행정의 끝을 본 적도 있다. 독자들도 한번 같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다음번에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방법이 무엇인지를. 저는 최전선에서 싸운 무사 같은 사람이지만, 이때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요컨대, 논픽션 『그 의사의 코로나』는 우리 사회 최전선의 문제의식과, 논픽션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 플롯과, 현장감 넘치면서도 적확한 문체와, 다채로운 인물 면에서 한국 논픽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옥 같은 코로나 전장에서 솟구친 놀라운 증언문학이다.
의사 임야비는 진료실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들은 무심하게 도로를 따라 달렸고, 사람은 인연 따라 자신의 운명을 걷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의사로만 살아야 하나. 누워서 눈을 감을 때 평생 의사만 하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억울할 것 같았다.
그가 의대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 2때였다. 불쌍한 사람을 돕겠다는 닭살 돋는 소명 의식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사람이나 생명, 인체 같은 게 궁금했다. 어머니가 서점을 했고 수학 교사 출신인 아버지가 출판 일을 했기에, 책을 많이 읽었고 호기심도 많았다. 정작 부모는 의대 진학을 오히려 저어했다.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네가 좋으면 가라, 그런데 굳이 그걸 하려고 하느냐, 네가 그 힘든 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
성적은 잘 나왔고, 그는 1994년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 6년과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모두 마치고 전문의가 된 뒤, 2011년부터 10년간 서울에서 전문의로 활동했다. 물론, 경영과 인사, 광고, 마케팅 등 의료 이외의 일은 그를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몰고 갔지만. 그때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다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는 말로 갈음했다.
2019년, 의대에 다닐 때부터 작가를 꿈꿨던 그는 ‘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라고 흔히 알려진 버나드 쇼의 묘비명도 떠올랐다. 더 재밌는 것도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이렇게 많은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많은데. 더 후회하기 전에 빨리 그만두자.
“권태와 우울에 빠지고 의사 생활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내에게 말했어요. 예전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요. 아내는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더라고요. 대신 성당에는 다니라고 하면서요.”
그는 글쓰기와 공연 기획, 연극 등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가기 위해 개업의를 그만 뒀다. 물론 이후의 삶이 모두 생각대로 잘 흘러간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전직 의사가 됐던 그때가 임야비의 작가적 원점이었다.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난 임야비는 2019년 진료를 접고 자신의 꿈을 찾아서 걸어갔다. 이듬해인 2020년 첫 장편 SF 『클락헨(Clock-Hen)』을 펴냈다. 소설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계란에 날짜가 적혀 있는 것을 본 뒤 떠오른 진화론의 적자생존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불리한 돌연변이는 주류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어버리지만, 가끔 유리한 돌연변이 한 마리가 생기면 후손은 모두 유리한 돌연변이를 이어가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클락헨이 너무 많아지게 되면서 인류까지 멸종하게 되는....
“저는 감이 왔을 때, 한 번에 왕창 빠르게 쓴다. 진도를 쭉 뺀다. 잘 안 써질 것 같다고 생각되면,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쓰지 않고. 나중에 문장이나 맞춤법에 틀린 표현을 수정한다.”
그는 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뿐만 아니라, 클래식 공연도 기획하고, 여러 극단에서 연출부 드라마투르그로도 일한다. 그러니까 레지던트 시절인 2007년, 우연히 클래식 공연과 연극을 함께 하는 음악극에 참여하게 됐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이었다. 고교 및 대학 시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휘를 했던 그는 클래식 해설을 썼고 연극 대본 작업을 했다. 연출이나 원로 배우들에게 눈에 띄면서 연극 드라마투르그를 병행하게 됐다. 드라마투르그는 연극에서 연출의 참모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드라마투르그로서 지난해에만 연극을 5개나 올렸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하이젠베르그가 나와서 양자역학의 세계를 풀어주는 과학극 「양자 전쟁」과 좋아하는 러시아 단편작가 안톤 체호프의 「백조의 노래」, 누리호 로켓 이야기를 다룬 「발사 6개월 전」 등.
―소설가와 작가, 공연 기획, 연극 연출의 길 가운데 미래는 어디로 갈까.
“의사였던 옛날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야 나를 찾은 것 같다.(웃음) 앞으로도 작가와 연극을 병행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소설 쪽으로 조금 더 많이 갈 것 같다.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유리알 유희’다. 쉽게 얘기하면, 여러 영역을 조합해 광채가 나게 하는 유리알 유희를 만들고 싶다. 문학과 음악이, 연극과 문학이 굳이 떨어져 있을 이유가 없다. 강의와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합쳐도 되고, 무용과 미술을 합쳐도 된다. 이른바 총체극이다. 그리스 비극을 그 원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와 뮤지컬도 있지만, 지금은 예술적으로 정체된 장르 같다. 우리나라로 보면, 굿을 예로 들 수 있다. 굿에는 신앙도 있고, 소리도 있고, 음식도 있고, 춤도 추고, 노래도 있고, 제의 의식도 있고, 글도 있다.”
―일상은 어떤지.
“아내가 있을 때는 규칙적 생활을 한다. 오전 9시쯤 일어나서 밤 11시, 12시쯤 잔다. 하지만 아내가 없으면 제 마음대로 생활한다. 연극할 때는 주로 대학로에 있다. 연극이 없으면 뭔가를 읽거나 쓰거나 음악을 듣는다. 가끔 의사 친구를 보지만, 대부분 클래식 연주자나 글 쓰는 사람, 배우들을 만난다.”
그는 많은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이름이나 개인 정보, 얼굴이 공개되는 걸 극구 꺼려했다. 그래서 책이나 인터뷰에선 필명을 사용했고, 사진 역시 뒷모습과 옆모습만 촬영토록 허락했다. 심지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휘 무대에선 가면을 쓴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 그 이유를 조금 들려줬다.
실제 의사나 의료 모습과 다른 허황된 얘기를 쓰고 싶지 않았고, 책이나 작품을 의사와 병원의 홍보 수단으로 삼는 게 싫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나중에 작가가 되면 의사인 것을 절대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울러 다양한 분야와 장르에서 살아가고 싶은 자신의 삶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나아가 의사라는 사실이 부각되면 본의 아니게 사라지게 될 문학과 예술작품에 대한 존중을 간절히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 이외의 게 자꾸 부각되면 오랫동안 문학과 예술에 종사하신 분들은 얘는 그냥 취미로 하는 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저를 욕하는 건 상관없는데, 제가 만든 작품을 욕하는 건 참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좀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의사란 직업을 내던지고 자신만의 꿈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임야비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찬찬히 보면, 많은 사람들 역시 팍팍한 현실과 다른 새 삶과 꿈을 꾸거나 준비 중이다. 현실과 다른 꿈을 꾸는, 그 마음을 따라가는 모든 이들이 임야비인지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리고 나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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