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실험미술 뿌리 찾는 단색조회화

노형석 2023. 1.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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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미술판 어떻게 흘러갈까
근현대 미술사 성과들 약진 전망
구겐하임과 서울·뉴욕 공동기획전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예정된 근대자수전에 출품될 박을복의 1964년 작 <표정>.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시장 말고는 그 무엇이 미술판을 이끌 수 있을까.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상을 예언하는 시각예술가들의 예지력은 닳아서 무디어진 지 오래다. 2023년 국내외 미술계 시계가 뿌옇게 보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 등이 지난해 화두가 되었고 급기야 환경생태 활동가들의 테러에 가까운 미술관 퍼포먼스가 일어났지만, 작품 등에서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메시지나 연대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거 진보적 미술인들의 미덕이던 공동체주의가 거의 소진된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세계 최대의 진보미술 축제인 카셀도쿠멘타 감독을 맡은 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루앙루파는 룸붕이라는 전통 공동체 문화를 미술가들의 연대 작업으로 확장시킨 독특한 콘텐츠를 내놓으며 새 담론화, 의제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뜻밖에 터진 독일 현지의 반유대주의 논란으로 이런 시도는 벽에 부딪혔고 행사가 끝난 지금 서구 미술인들은 루앙루파의 실험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듯하다.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도드라진 특징이던 여성 작가들의 강세 현상은 시장에서 상품 흥행 요소로 적극 활용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환경생태 활동가들이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자행했던 명작 테러는 반달리즘적 행위에 대한 대중의 논란을 고조시켰다. 그 배경에는 시장에 의해 이용만 되는 예술, 시대적 상황에 자극을 주지 못하는 예술의 효용성과 무능함에 대한 지식인들의 좌절감과 분노가 똬리 틀고 있었다는 점을 지나치기 어렵다. 다만 국내 미술판에서는 새해가 근현대 미술사 맥락에서 중요한 성과들이 산출될 수 있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이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5월과 9월 서울과 뉴욕에서 연다.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 기획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전으로 강국진, 김영진,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작가 26명의 작품 100여점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한국의 실험미술을 전세계 미술판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료 부족한 인기상품 단색조회화
4월에 미술사적 근거 탐구할 심포지엄
민중미술도 색다른 논의 꽃필듯

지난 수년간 역사적 사료와 미술사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단색조회화의 형성 배경에 대한 역사적 탐구도 본격화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4월20일 여는 ‘일본 도쿄화랑 컬렉션과 단색화’(가칭)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도쿄화랑이 지난 연말 기증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술사가 김영순씨가 발제를 하고, 박서보-서승원 작가의 대담 등이 이어진다. 1975년 이 화랑의 야마모토 다카시 전 대표가 주도해 국내 단색조회화의 지평을 연 계기가 된 ‘5가지 백색-한국 5인 작가’전의 실상을 추적, 탐구하게 된다.

올해 4월 삼성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환기 회고전에 나올 1957년 작 <영원의 노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리얼리즘 미술사 쪽은 민중미술에 대한 색다른 각도의 논의가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민중미술사를 서구의 미학적 틀까지 동원해 색다른 시각으로 개념 정리한 소장연구자 서유리씨의 <이탈과 변이의 미술>이 연초 화제를 낳았고, 올해 상반기에는 민중미술 30여년의 역사를 다룬 미술사가 홍지석씨의 저술 등이 잇따라 나올 예정이다. 화가 이중섭 관련 책들도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해 8월 타계한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의 1주기를 맞아 두 사람의 삶을 추적한 오누키 도모코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의 논픽션 저술 번역본이 출간되며, 최열, 신수경 연구자가 이중섭 편지화와 엽서화를 분석한 연구서를 펴낼 참이다. 초창기 디자인사를 주도한 한홍표, 이완석 등 대가들에 대한 재조명도 전시와 학술 행사를 통해 펼쳐질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은다. 이밖에도 호암미술관이 4월 펼치는 김환기 회고전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자수전 등도 미술사적 맥락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문화재 동네는 지난해 불거진 김해 구산동 고인돌 훼손 사태의 여파에 따른 후속 수사 결과와 학예직 전문가들의 권한을 강화한 문화재보호법 개정 문제, 세계유산인 김포 장릉 앞 아파트 건립을 둘러싼 법정 공방 등이 계속 현안으로 그늘을 드리울 전망이다. 올해는 경주 천마총 발굴 50주년, 부여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이어서 관련 유적·유물들의 기념사업과 행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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