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명백한 적’ 공세… 경제 성과 부진엔 전방위 ‘사상 통제’ [한반도 인사이트]

홍주형 2023. 1. 11.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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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회의 통해 본 북한의 2023년
美·中 갈등 등 영향 동북아 신냉전 인식
기존과 다르게 ‘對南 비판’ 대폭 늘려
전술핵 다량 생산·핵탄 보유 확대 지시
대북제재·경제 고전으로 탈출구 없어
2023년도 ‘자력갱생’ 기조는 유지 전망

북한이 지난해 12월26일부터 31일까지 6일간의 제8기 제6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를 이달 1일 공개한 데 이어 전국 궐기대회를 통해 열흘 넘게 이행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이번 전원회의의 특징은 남측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대남 비판을 대폭 늘렸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새해 첫날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해 상징성을 높였다. 경제 성과 언급은 줄고, 경제나 사회 부문에서 ‘사상 통제’ 경향이 뚜렷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0년부터 신년사를 생략하고 전원회의 결과 보고를 통해 한 해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원회의 보고 내용을 보면, 올해도 북한은 예상됐듯이 대남·대미 공세와 더불어 경제·사회적으로 사상·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경제적으로 고전하고,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대외적으로 뚜렷한 탈출구가 없는 북한의 현실이 드러나 있다.
지난 2022년 말 열린 제8기 제6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를 북한이 1일 공개한 뒤 전국 각지에서 전원회의 결과 이행을 위한 궐기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평양의 궐기대회 모습.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남측은 ‘명백한 적’… ‘신냉전’ 인식 뚜렷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이번 전원회의의 가장 큰 특징은 대남·대미 공세가 강화됐고, 그중에서도 남측에 대한 비판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공세도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를 통해 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에 보도된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조선(남한)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하고,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과 ‘핵탄 보유량 기하급수적 증가’를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 내용이 한국에 대한 공격 용도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대남’(1회)보다는 ‘대적’(4회)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됐다. 기존 전원회의에선 대외·대남 분야가 간단하게 언급되거나 대남 언급은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통일연구원 분석자료에 따르면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제시한 올해 국방력 강화의 4대 목표는 △핵의 억제와 공세 수단으로서 역할 재확인 △고체연료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전술핵 투발 수단 다종화와 핵탄두 보유량 확대 △최단기간 내 군 정찰위성 발사로 정리된다. 특히 핵이 억제력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 선제공격까지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같은 북한의 공세 강화에는 미·중과 미·러 갈등 강화로 동북아시아에 ‘신냉전’이 형성되고 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허정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위원은 분석자료에서 북한이 미국의 남한 내 군사장비 반입,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등을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고 짚었다. 전원회의 보고에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언급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경제 성과 없이 자력갱생만 외쳐

반면 경제 문제 논의 비중은 크게 줄었다. 2021년 12월 말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각 산업별 목표가 제시된 것에 비하면 구체성이 크게 떨어진다. 전원회의 보고에는 “새 년도에 인민경제 각 부문들에서 달성하여야 할 경제지표들과 12개 중요 고지들을 기본과녁으로 정하고 그 점령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언급이 있지만, 구체적 내용이 소개되지 않았다. 성과 설명도 일부 건설 사업과 관련된 보고가 전부였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분석자료에서 “최근 강화된 체제 선전 흐름과 달리 보도 내용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공개한 것은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가 미흡하고 당면 정책에 대한 확신도 부족함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대북제재 등에 따라 장기적으로 이어져 온 북한 경제의 고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방역전쟁 승리’를 공표한 북한은 예년과 달리 이번 전원회의에선 코로나19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유지하고 있는 ‘자력갱생’ 기조는 여전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정비보강전략 수행’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보고에서 언급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연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 토대를 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강원도, 함경남북도 등에서 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궐기대회가 진행됐다고 9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뉴스1
◆사회 통제 강화할 듯

부족한 경제적 성과는 사회 통제로 이어질 전망이다. 남한 혹은 외국 영상물 유통을 철저히 통제해 이를 어길 경우 공개 처형에 나선다는 내부 소식통의 전언이 외부로 흘러나오고, 소년 단체인 ‘조선소년단’을 신년에 평양으로 불러 김 위원장의 친위부대화한 것 등이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

전원회의 보고에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됐다. 전원회의에서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기념 강의에서 주창한 △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설 △규율건설 △작풍건설이 ‘새시대 당건설의 5대노선’으로 채택됐다.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세대의 ‘수령론’과 세습화를 공고하게 이어가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주창일 선전선동부장, 리히용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수길 평양 당위원회 책임비서, 김상건 규율조사부장 등은 당 통제와 선전선동에 특화된 인사다. 패배주의와 기술신비주의 청산, 1960∼1970년대 투쟁정신을 강조한 것도 경제 성과 부진을 사상으로 극복하려는 접근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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