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戰 추모의 벽’ 오류투성이… 신뢰 잃은 한·미 혈맹 상징

박영준 2023. 1.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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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볼드 이글 베어→이글 B F 볼드
뒤죽박죽 알파벳으로 누군지 잘 몰라
전쟁과 무관하게 숨진 245명까지 포함
1950년대 명단 입력 때부터 부실 관리
그간 수차례 경고에도 바로잡지 않아
한·미 국방부 허술한 행정 비난 목소리
美 참전용사들 중심 재건립 요구 나와
미국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 세워져 6·25전쟁 미군 전사자 3만6634명, 카투사(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 전사자 7174명 등 4만3808명에 달하는 전쟁 영웅을 추모하는 기념물에서 무더기 오류가 드러난 것은 미국과 한국 국방부의 허술한 행정처리 때문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한국전참전기념공원 추모의 벽이 피로 맺은 공고한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비판은 한·미 국방, 보훈 당국을 한층 더 당혹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민들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내셔널몰의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에 있는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의 6·25전쟁 연구자인 역사학자 할 바커 형제,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추모의 벽에 새겨진 전사자 명단의 오류는 심각한 수준이다.

6·25전쟁 도중 전사한 프레더릭 볼드 이글 베어(Frederick Bald Eagle Bear) 상병은 추모의 벽에 쓰인 이름이 이글 B F 볼드(Eagle B F Bald)로 뒤죽박죽이다. 다른 조종사를 구하려다 격추돼 사망한 헬리콥터 조종사 존 코엘시는 이름 알파벳이 틀리게 기록됐다.

바커 형제에 따르면 이들을 포함해 추모의 벽에 잘못 새겨진 철자 오류만 1015건이다.

또 야간 임무 도중 추락해 사망한 폭격기 조종사 월더 매코드의 이름을 포함해 약 500명의 전사자 명단이 추모의 벽에 누락됐다. 더 황당한 것은 하와이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남성 등을 포함해 전쟁과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숨진 군인 245명의 이름이 추모의 벽에 포함됐고, 이들 중에는 6·25전쟁 이후 손자를 8명이나 두고 60년 뒤 사망한 해병의 이름도 있다.

할 바커는 본지 인터뷰에서 추모의 벽에 대해 “완전히 엉망진창”이라고 말했다.
할 바커.
추모의 벽 무더기 오류는 애초 미 국방부와 관련 단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사자 명단 오류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바커 형제는 1950년대 IBM 컴퓨터에 전사자 명단을 입력할 당시에 사용했던 천공카드에 표기할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돼 있어 길이가 긴 이름 등을 줄이는 과정에서 이름이 뒤섞였고, 이후 디지털 방식으로 데이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 오류를 바로잡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바커 형제가 국방부와 관련 기관에 수차례에 걸쳐 명단 오류를 보고하고, 추모의 벽 재단 건립을 추진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명단 오류 가능성을 경고한 사실을 고려하면 미국과 한국 정부가 명단 확인 작업 등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특히 할 바커가 본지에 보내온 고(故) 윌리엄 웨버 예비역 대령의 이메일 사본을 보면 KWVMF 역시 전사자 명단 오류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웨버 대령은 2014년 5월6일 할 바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전사자 명단이 미국전쟁기념비위원회(ABMC)의 명단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당신들은 인정받고 기려져야 한다”고 썼다.

6·25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웨버 대령은 예편 후 KWVMF를 이끌며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과 추모의 벽 건립을 주도한 한·미동맹의 상징 인물이다.
윌리엄 웨버 예비역 대령의 생전 모습.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제공
추모의 벽 준공이 올해 70주년을 맞는 정전협정 기념일에 맞춰 준공을 서두르면서 명단 확인 작업 등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정부와 KWVMF는 2021년 5월 착공식을 갖고, 지난해 7월23일 69주년 정전협정일에 맞춰 1년5개월 만에 준공식을 했다.

추모의 벽은 1995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설립됐지만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참전비와 달리 전사자 이름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건립 사업이 추진됐다.

수천건에 달하는 오류를 모두 수정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류를 바로잡아 추모의 벽을 다시 건립해야 한다는 여론도 미국 참전용사 사이에서 나온다고 한다.

NYT는 추모의 벽 맞은편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비 역시 수년간의 논쟁을 거쳐 380명 이상의 이름이 추가됐다고 전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추모의 벽에 새겨진 미군 전사자 명단은 미 국방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카투사 명단은 한국 국방부(육군본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각인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사자 명비(名碑)에 한 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되며 철저한 검증 작업을 거쳐 신속히 확인하고 오류가 있다면 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준공식 참석한 한·미 고위 인사 지난해 7월28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 네 번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첫 번째) 등 한·미 양국 인사들이 전사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전사자 명단 빠져… 美상원, 2016년 건립법 통과시켜 제작

6·25전쟁 참전 미군과 카투사(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 전사자 명단에서 오류가 발견된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추모의 벽은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과 더불어 미국에서 대표적인 6·25전쟁 참전 기념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7월27일 열린 준공식은 미국 측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세컨드 젠틀맨’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한국 측에선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등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축사를 보냈을 정도로 성대하게 열렸다.

전쟁 관련 문서와 유족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6·25전쟁 영웅들의 모습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1995년 7월27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헌정됐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참전비 등에는 있는 전사자 명단이 한국전 기념비에는 빠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추모의 벽 건립 움직임이 시작됐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추모의 벽 건립은 2016년 10월7일 미국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법’이 통과되면서 본격화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 등이 이뤄지지 않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한·미 양국의 노력과 각계 지원을 통해 건립이 추진됐다. 추모의 벽 건립에 필요한 예산 301억원 가운데 국가보훈처에서 294억원을 지원했으며, 나머지는 건립 사업 주체인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KWVMF)을 비롯해 재향군인회와 한국 기업, 국민 성금으로 충당됐다. 한미동맹재단과 재향군인회 등에서 건립에 기여했다. 2021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해 16개월 만에 완공됐다.

조형물 중앙 ‘기억의 못’을 빙 둘러 화강암 소재로 만들어진 추모의 벽에는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카투사 전사자 7174명을 포함해 총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국 내 참전 기념 시설 중 미국이 아닌 국적의 전사자들 이름이 처음으로 새겨졌다. 전사자 이름은 1개당 4∼8t, 두께 약 72㎝인 곡선 형태의 화강암 판화 100개에 군종과 계급, 알파벳 순으로 새겨졌다. 추모의 벽은 미 국립공원관리청(NPS)에서 기본 관리를 맡는다. 건립 주체인 KWVMF은 조경과 조명, 보수 등 종합관리를 담당한다. 노후화로 개보수가 필요할 경우 국가보훈처에서 예산을 지원한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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