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2030…중개사의 달콤한 말, '전세사기' 시작이었다

박수현 기자 2023. 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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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이라 불리는 임대인 A씨에게 전세사기를 입은 피해자의 주거지 사진. 천장에 곰팡이가 생겼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까지 임대인과 한통속이었던 탓에 하자에 대한 수리나 보수를 기대할 수 없었다. /사진=독자 제공

"이 건물 시세만 20억원이에요. 집주인이 건축업자로 큰 돈 벌어서 보증금 못 받을 걱정 없고요."

경기 오산시에 거주하는 B씨(31)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건 2020년 1월. 공인중개사의 호언장담에 전세 대출을 끼고 보증금 7500만원을 냈다. 당시에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집주인 가족도 4층에 거주한다"며 거듭 안심시킨 중개사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나 입주 3개월 만에 임의경매가 개시됐다.

그 집은 '하자 물건'이었다. 은행 근저당으로 10억8000만원,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8억여원, 세금 체납액이 1억~2억여원에 달했다. 결국 1년 뒤에 강제경매가 개시됐고 후순위 임차인인 B씨는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퇴거하게 됐다. B씨에게 남은 건 자신이 오롯이 갚아야 하는 전세 대출금뿐이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를 노리는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이 범행에는 임대인만 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주부터 분양대행사, 중개사무소, 명의대여인 등 여러 사람이 조직적으로 가담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 입장에선 이미 판이 깔린 '전세사기' 함정에 걸려드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에 대해 1차로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106건에 연루된 법인은 10개, 혐의자는 42명으로 조사됐다.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이 뒤를 이었다.

'건축왕'이라 불리는 임대인 A씨에게 전세사기를 입은 피해자의 주거지 사진. 천장에서 물이 새고 화장실 타일에 균열이 생겼다. /사진=독자 제공

전세사기 범행 계획은 건물을 지을 때부터 세워지기도 한다. 개발업자가 분양대행사, 부동산 중개업자, 임대사업자 등과 수익금을 나눠가지며 범행을 공모하는 것이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건축왕'이라 불리는 임대인 A씨는 건축사, 공인중개사무소, 아파트 관리사무소 운영업체 등을 실소유한 인물이었다.

주택 2708채를 실소유한 것으로 파악된 A씨는 자신과 공모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을 임대인으로 앉히고 임대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도 운영했다. 이 때문에 임차인들은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주택 시세를 파악할 수 없었고, 집이 경매에 넘어가자 관리비를 내면서도 하자에 대한 수리나 보수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개사무소 관계자가 전세사기의 주범이 되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2012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소위 '갭투자'로 26채의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고령의 임차인이나 사회초년생을 노리고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20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C씨(56)를 지난해 5~7월 기소했다.

C씨는 임차인들이 중개보조원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범행했다. 또 '깡통전세' 수법 외에도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피해자의 전입신고 전에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시간차전세', 금요일에 담보대출을 받고 일요일에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주말 계약' 수법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중개사무소가 관여한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사기를 의심하기가 어렵다고 분석한다. 임차인이 거래 시에 중개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다 전세사기의 무대가 되는 나홀로아파트나 신축 빌라는 임대인과 중개사무소가 입을 맞춰두면 명확한 시세 파악이 어려워서다.

김기윤 변호사는 "전세 사기 사건에 중개사무소가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임차인이 만나는 건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인데 집값에 대해 제대로 고지해주지 않거나 '걱정마라. 어차피 집값은 상승세', '전세보증금 손실 볼 일 없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개중에 진짜 공인중개사도 있지만 명의를 빌려서 영업을 하는 부동산 업자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전세사기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신축건물 밀집 지역과 민원 발생이 잦은 업소를 중심으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현장 지도·점검할 계획이다. 점검 기간은 불시 단속을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시는 민생사법경찰단과 함께 △이중계약서 체결 △부동산 권리관계 작성 누락 여부 △무자격 또는 무등록 불법중개 등 불법행위에 대해 추적 수사나 고발조치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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