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회당 수억 피해"…'더 글로리'·'재벌집' 울린 中 도둑시청

김보영 2023. 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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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공개 후 열흘새 최소 11만 명 이상이 도둑시청
2022년 中 불법 유통 적발 5만 여 건 이상…2019년 이후 3배
"인기 드라마, 한 작품 당 최소 50억…수조원 피해 예상"
"中 정부, 언론 공론화해야…처벌 수준 강화 등 대책 필요"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우영우’ 전체 영상 다운로드 5위안(약 1000원), 드라마 HD포스터와 우편엽서 등 굿즈들을 합해 30위안(약 5500원)에 팝니다.”

중국의 최대 오픈 마켓인 타오바오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중국어로 검색하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판매 게시물이다.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김영선(25·여) 씨는 “‘우영우’를 공식적으로 스트리밍하는 플랫폼은 없는데 이를 안 본 중국의 MZ세대는 거의 없다”며 “20~30대 사이에선 ‘우영우’의 주인공 박은빈이 극 중 입은 옷부터 착용한 신발, 가방 등이 짝퉁으로 불티나게 팔린다. 단돈 1000~2000원의 헐값에 드라마 전편이 거래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중국의 K콘텐츠 ‘도둑시청’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더 글로리’, ‘재벌집 막내아들’, ‘우영우’ 등 최근 인기 드라마들이 중국의 불법 유통에 피해를 보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우리나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한령(한류제한령)을 실시하면서 한류 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SNS, VPN, 클라우드 등 각종 불법 경로로 K콘텐츠를 손쉽게 소비하는 현상이 정착되면서, 한한령이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란 분석이다. 우리 정부 기관은 물론, 국내외 OTT 및 제작사들까지 사설 모니터링 업체를 고용해 불법 유통을 근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완벽히 방지하기엔 역부족인 게 현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거나 보호 정책을 강화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더 글로리’→‘우영우’, 무분별 도둑시청에 몸살

10일 오전 중국의 최대 콘텐츠 리뷰 사이트 ‘더우반’(豆瓣)에 따르면, 송혜교 주연 드라마 ‘더 글로리’는 총 11만 5376명의 사용자들로부터 8.9점의 평점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이 성인이 돼 가해자를 응징하는 복수극이다. 국내 넷플릭스 1위는 물론 20여 개국에서 전체 콘텐츠 10위 내 차트인하는 등 뜨거운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중국에선 아직 넷플릭스를 서비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 글로리’가 ‘더우반’에 등장했다는 건 최소 11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불법으로 이를 시청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더 글로리’ 뿐만이 아니다. 해당 사이트에는 또 다른 넷플릭스 작품인 ‘D.P.’와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티빙 오리지널 ‘아일랜드’, ‘술꾼도시 여자들’, 웨이브 ‘약한영웅 Class1’,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중국에 정식 서비스된 적 없는 수많은 이 한국 드라마가 연관 콘텐츠로 추천되고 있다. 송중기 주연 ‘재벌집 막내아들’은 최근 중국 OTT 아이치이에 편집 영상이 불법 업로드된 사실이 뒤늦게 발견돼 부랴부랴 삭제 조치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에 따르면 한중 협의로 지난해 중국 현지에 정식 유통된 K콘텐츠는 드라마 영화를 합해 총 17편뿐이다. 2017년부터 중국이 실시 중인 한한령으로 인해 공식 유통할 수 있는 K콘텐츠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저작권보호원이 지난 한 해 중국 현지에서 K콘텐츠의 불법유통을 적발해 삭제를 요청한 사례는 5만 4866건이나 달한다. 넷플릭스 등 OTT가 처음 한국에 상륙한 2019년(1만 9562건)과 비교하면 3배나 증가했다.

단순 모니터링 한계…中 정부 협조, 처벌 강화 필요

국내 제작사들은 중국의 불법유통으로 인한 K콘텐츠가 입는 피해가 막대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수의 히트 드라마를 만든 A제작사 대표는 “‘더 글로리’나 ‘재벌집 막내아들’, ‘우영우’처럼 톱배우가 출연한 인기 드라마들의 경우, 아무리 낮게 잡아도 중국에 정식 판매하면 한 회당 30만 달러(약 4억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다”며 “보통 드라마가 16부작이니 적어도 한 작품당 50억원인데, 불법유통이 적발되는 사례만 수만건 이상이니 한 해에 입는 피해는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과거 중국에서 K콘텐츠의 불법 유통은 DVD 전문점 등 오프라인이나 P2P사이트 불법 다운로드를 중심으로 이뤄져 비교적 단속이 쉬웠다. 20여 년이 지난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클라우드 앱, 포털 사이트,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등 그 경로가 다양해 단속이 어렵다.

이에 콘진원, 저작권위원회, 저작권보호원 등은 베이징, 심천 등 중국 현지에 해외사무소를 설치하고 모니터링 인력을 배치해 수시로 콘텐츠 불법 유통 사례를 감시 중이다. 하지만 콘텐츠가 방영되는 순간부터 다크웹, 모바일 앱 등 셀 수 없는 경로들로 실시간 불법 유통되다 보니 이를 일일이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저작권보호원 측 설명이다. 저작권보호원 관계자는 “모니터링 이후 URL을 직접 삭제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중국 내 이용자들의 인식을 바꿔 불법 콘텐츠 소비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 정부와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가 자국민들의 ‘도둑시청’을 공론화해 적극 해결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 역시 새로운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데 힘쓰는 것도 좋지만 우리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 중국 정부에 제대로 협조를 요청하거나, 정책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제작사 대표는 “불법 유통이 쉽게 이뤄지는 건 처벌이 가벼운 벌금 수준에서 끝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콘텐츠를 불법 유통해 취득할 수 있는 수익이 처벌로 물어야 할 벌금, 형보다 훨씬 큰 게 문제”라며 “강력한 규제, 처벌 강화를 통해 불법 유통, 불법 소비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잘못된 행위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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