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선수들의 발언, 고생과 월권은 분리해야[이재호의 할말하자]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축구 대표팀은 사실 정상급 선수들에게 '고생'하는 자리다. 해외파의 경우 한 두 경기를 뛰기 위해 왕복 2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서 고작 이틀 적응하고 좋지 않은 잔디에서 생소한 국가와 경기를 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언론과 팬들은 엄청난 비난을 한다. 심지어 인신 공격에 가족까지 욕한다.
물론 처음에 발탁될 때야 '국가대표'라는 어린시절 꿈을 이뤄서 좋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대표팀이 익숙해진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주전경쟁도 힘든데 대표팀에 와서 컨디션이 떨어지고 돌아가 부상을 당하거나 경기력 역시 하락하기도도 한다. 그렇다고 큰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누가봐도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대표팀에서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실상을 취재하다보면 선수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기까지하다. 괜히 선수들 사이에서 '대표팀에는 뽑히진 않지만 해외리그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오래 뛰는 선수들이 최고다'라는 말이 도는게 아니다.
분명 선수들의 고생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선수는 선수의 본분이 있고 대한축구협회는 협회의 본분, 그리고 감독, 코치, 트레이너 등 각자의 본분이 있다. 자신들의 고생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월권으로 나타나서는 안된다.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선'넘는 선수들
하지만 최근 축구 대표팀을 둘러싼 일렬의 논란들을 보면 선수들이 계속 '선'을 넘는다. 일단 파울루 벤투 감독과의 재계약 불발 이후 감독 선임에 대해 선수들이 언급한 것을 보자.
'목소리를 내야겠다', '우리의 감독이다', '선수들의 입장을 무시해선 안된다'와 같은 발언은 언뜻보면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선을 넘는 발언이다.
미안하지만 프로팀과는 달리 대표팀이라는 곳은 한국 국적을 가진 누구라도 뽑힐 수 있다. 누구라도 뽑힐 수 있다는 것은 즉 누구라도 뽑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극단적으로 다음 감독이 손흥민을 대표팀에 선발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대표팀을 보장받는 선수는 없다.
지금은 유럽에서 뛰고 좋은 기량을 보이는 선수도 갑자기 부상을 당하거나 기량이 저하될 수 있고 그러면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선수들의 입장'이나 '우리의 감독'일 수 있는가.
냉정하게 감독을 뽑는데 선수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경우는 없다. 어떤 선수도 영원히 그 팀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당연하고 프로팀 역시 마찬가지다. 구단 혹은 협회의 수뇌부가 자신들의 팀 상황과 철학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당연한데 선수들이 감독 선임에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월권'이다.
물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나 '핵심선수'인 예를 들어 손흥민 정도되는 선수라면 감독 선임에 대한 의견정도는 들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참고할만한 '의견'에 그쳐야 한다. 냉정하게 선수는 선임된 감독의 철학에 맞춰 축구를 하는 역할에 충실해야한다.
감독 선임에 관해서는 결국 협회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축구의 방향과 철학을 명확히 밝히고 이에 맞는 최고의 감독을 선임해야한다. 선수들이 이를 신뢰하지 못해 선을 넘는다면 그건 선수들도 잘못이지만 협회의 잘못이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축구 모델이 아닌 당장 대표팀 주력 선수의 특성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감독, 당장 눈앞에 있는 아시안컵을 우선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바라보는 감독을 선임할지 등을 잘 고려해야한다.
김판곤 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의 경우 지지를 받았던 것이 그 방향이 옳든 아니든 어떤 방향으로 한국축구를 이끌고, 그 방향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뮐러 위원장 역시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선수들이 '선'을 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안덕수 트레이너와 관련돼 '선'넘었던 선수들
또한 안덕수 트레이너와 관련된 논란 역시 선수들이 선을 심하게 넘었다. 손흥민 개인 트레이너인 안덕수 트레이너는 월드컵 후 대한축구협회를 저격하는 SNS글로 화제가 됐고 10일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입장문으로 반박했다.
총 14가지로 나눠 상황 설명을 했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아무리 단일종목 최고 스포츠 단체인 대한축구협회라 할지라도 2021년 2월부터 시행된 국민체육진흥법을 무시할 수 없다. 2021년 11월 의무 트레이너 모집 공고를 냈지만 안덕수 트레이너는 지원하지 않았고 국민체육진흥법이 요하는 4가지 자격증 중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2.선수들은 자격도, 지원도 하지 않은 안덕수를 위해 다른 지위로 등록해달라고 편법적인 행위를 대한축구협회 요구했다. 게다가 의사인 의무팀장이 안덕수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해고 요청까지 했다.
3.협회의 입장은 의무팀장이 안덕수를 반대한적이 없다지만 어쨌든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해 의무팀장을 업무배제까지 시켰다.
4.MRI 전문가의 소견과 안덕수 트레이너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5.기존 대표팀 스태프 중에 자격요건이 안되는 이가 있다고 하지만 법이 생기기 이전에 채용됐던 사람이기에 소급적용될 수 없었다.
결국 핵심은 안덕수 트레이너는 이 업계에서 최고라는 자신감 때문인지 의무 트레이너 모집 공고에 지원하지 않았고 법에서 요구하는 4가지 자격증 중 어느 것도 가지지도 않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편법으로 안덕수 트레이너를 위한 자리를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안덕수 트레이너를 반대했다고 주장되는 의무팀장의 해고까지 요구했다.
물론 선수들이나 안덕수 트레이너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모든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건 안덕수 트레이너를 위해 편법적인 자리를 요구한 것과 이유가 어찌됐든 의무팀장의 해고를 요구하는 것은 선수들이 크게 선을 넘은 것이다.
오죽하면 대한축구협회가 선수들의 이런 행동에 유감을 표할 정도니 말 다했을 정도.
선수들이 트레이너와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 항상 자신의 몸상태를 관리해주고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트레이너들에게 자연스럽게 감독-코치에게도 못할 속사정을 얘기하고 여자친구-아내 얘기도 하는게 선수들이다. 트레이너들도 이렇게 오래 교감한 선수들에게 자신의 고충도 얘기하며 서로 협회의 아쉬움을 얘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야지 서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순간 '선'을 넘는 것이된다. 경기 준비하기도 바쁜 선수들이 정확한 규정까지 알기 쉽지 않았을 것인데 잘 알지 못하면서 나서는건 득될게 없다.
협회 역시 입장문을 통해 인정했듯 트레이너 문제와 선수들의 정당한 요구사항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월드컵에서 곪아왔던 고름이 터지게 했다. 한국 체육 단체 단일종목 최고 예산을 쓰는 축협이 대체 그 예산을 어디에다 쓰는지, 그리고 이렇게 아마추어처럼 운영해 황당한 논란이 나오게 하는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선수들의 대표팀에서 하는 고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기량이 좋고 대표팀에 자주 뽑힌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의견없이 감독을 선임해서는 안된다는, 또한 트레이너와 관련해 선 넘는 행동들을 하는 것은 월권일 뿐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정당한 요구와 자신들의 권리를 넘어서는 월권을 구별할 줄 모른다면 그것이 적폐의 시작이다.
실력에 그렇게 자신있고 자신을 모른다고 의사마저 무시하는 트레이너가 지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모시듯이 데려가길 원해야 하는 곳이 대표팀이 아니다. 또한 많이 뽑힌다고 감독 선임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트레이너를 위해 투사가 되어서도 안되는 곳이 대표팀이다. 그동안 문제를 방치해놨다가 일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겠다고 나서는 협회를 위한 대표팀이 되어서도 안된다.
대표팀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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