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병역비리 이슈로 상처받는 뇌전증 환자들…"꾀병 아니에요"

강승지 기자 2023. 1. 11. 05: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로커들 구속…전문가 "이번 일로 기준 불합리, 편견 심해지면 안돼"
매년 2만~3만명 발생…환자 60%는 약물로 발작없는 일상생활 가능
ⓒ News1 DB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뇌전증을 가장해 병역 면탈을 도모한 이들이 구속되면서 뇌전증 환자들이 상처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편견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병역 판정 기준이 불합리하게 바뀌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과거 간질로 불렸으나 2012년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질환명이 바뀐 바 있다. 꾀병이라고 오해되지 않도록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며, 환자들에게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복잡하게 얽힌 신경에 일종의 '합선'…대부분 정상적 일상 가능

11일 김성훈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에 따르면 뇌전증은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 수천억 개의 뇌신경 세포 중 일부가 짧은 시간 과도한 전류를 발생시켜 경련이나 의식소실 등 다양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만성질환이다.

복잡하게 얽힌 신경 네트워크에 '합선'이 생기는 셈으로 30초~1분 내외의 발작이 일어난다. 다만 발작은 뇌전증 환자한테만 나타나는 증상은 아니라 발작을 판별하는 게 중요하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은 굉장히 다양하다.

발작을 유발할 건강상 요인이 마땅히 없는데도 발작이 일어날 때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2회 이상의 발작이 나타나는 경우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한 뇌전증 환자군으로 분류된다.

발작의 양상은 환자마다 다르다. 신체 일부 또는 전신 경련이 나거나 뻣뻣해질 수 있다. 고장이 난 인형처럼 특정 행동을 반복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던 도중 1~2분씩 멍하게 있는 것처럼 발작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기준 건강보험으로 뇌전증을 치료받고 있는 환자는 약 30만명으로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환자 수를 합할 경우 약 37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만~3만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나온다. 신경계 질환 중 치매·뇌졸중 다음으로 환자가 많다.

MRI 기기. (자료사진.) ⓒ News1 박영래 기자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 고흐도 환자였다…"환자에게 격려 필요"

뇌전증을 진단하려면 우선 발작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얼마나 지속됐는지, 환자가 기억했는지 등에 대한 문진한다. 그 이후 환자 증상에 따라 자기공명영상(MRI), 뇌파검사(EEG), 양전차 방출 단층촬영법(PET) 검사, 24시간 동영상 뇌파검사 등을 한다.

다양한 검사를 여러 차례 해야 진단할 수 있다. 이번 병역 비리도 뇌전증을 판별해내기 힘들다는 점을 악용했다. 뇌전증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 의사가 환자의 증상 및 관련 상황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

치료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건 항경련제의 복용이다. 김성훈 교수에 따르면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는 뇌전증 환자들의 약 60%는 발작 없이 생활하고 있다. 약 20%만 수개월의 1회 정도 발작을 보인다. 일상생활의 지장을 초래한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약을 먹으면서 경련이 2~3년 이상 없는 경우, 뇌파가 안정되는 경우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항경련제 복용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 중단한 뒤에도 수년간 증상이 없다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

뇌전증은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는 흔한 질병으로, 일부 중증 난치성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상적인 일상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뇌전증을 앓은 사람 중에서는 소크라테스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미술가 고흐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많지 않고, 위축돼 있다. 대한뇌전증학회 연구에 따르면 환자 10명 중 3명은 뇌전증으로 인해 사회적 낙인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고 환자의 44%는 취업, 교육, 대인관계 등에 있어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번 일로 차별이 심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뇌전증학회는 "철저한 수사로 범죄행위를 일으킨 사람들은 엄중히 처벌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환자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뇌전증 환자는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절한 기준을 통해 병역면제가 이뤄져 왔다. 병역 비리 방지를 목적으로 역차별을 조장시킬 수 있는 병역면제 기준 강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환자와 환자 가족 권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인식개선, 재활복지 사업들을 하는 한국뇌전증협회는 국가적 차원에서 뇌전증 환자를 관리, 보호하는 취지로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뇌전증관리지원법) 입법추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협회 회장인 김흥동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교수는 "환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조속히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ksj@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