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신년사에 드러난 성찰과 위기감의 온도 차이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23. 1. 11. 05: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23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부문의 신년사에서는 그런 절박함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각오를 다지는 성찰과 자구 노력을 주문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계와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신년사에서 온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영리 추구라는 구체적 목적을 위해 사업을 하는 기업과 나랏돈으로 막연한 서비스를 생산하는 조직간의 책임과 성과 관리, 피드백 시스템의 차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제계 ‘초위기 상황’ 진단
자기혁신·도전·극복 주문
정부·지자체·공공부문엔
절박함·비장한 각오 없어
새해 농업현장 걱정 태산
책임있는 예산 집행 간절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23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생각해보면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던 이백(李白)의 시구처럼 세월 또한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같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계속되는 강추위지만 가을에 주워 놓은 마른 나뭇가지 덕분에 토방에 군불을 때고 따뜻하게 지내니 겨울철 산중생활이 즐겁다.

올해는 윤석열정부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때이지만 여소야대의 불안한 정국과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으로 유례없는 경기침체가 예상된다니 어떻게 뜻을 펴고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계의 신년사를 훑어보면 ‘빙하기’ ‘초위기 상황’ 등 하나같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위기’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깊은 문제의식과 과감한 도전을 주문한다. 특히 고객 불만을 혁신의 아이디어로 여기는 마음가짐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독려했다.

농업계에서도 식량안보, 농업 구조 개선과 성장산업화, 농가경영 안전망 강화, 새로운 농촌 공간 조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고 관련 부서와 기관·단체장들이 저마다 희망과 각오를 담은 신년사를 발표했다. 식량과 기후위기, 지방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제시한 정책 메시지라 기대와 염려 속에서 많은 사람이 귀추를 지켜보고 있다.

걱정인즉슨, 논에다 가루쌀(분질미)이며 밀·콩 등 전략작물 재배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이들 작물이 안정적인 판로가 있고, 밥쌀용 벼에 못지않게 소득이 될 때 성립한다는 점이다. 자재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과연 청년이나 농가가 창농·스마트팜 투자에 수지를 맞출 수 있을지도 염려스럽다. 농촌의 공간 재편 역시 주민들의 사유재산인 토지 이용을 규제하는 것인 만큼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일손은 부족하고 농업경영비며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장 올봄에는 무슨 작물을 심으며, 메가(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이 도입되면 새로운 통상질서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현장의 걱정은 한둘이 아니다.

어느 기업 총수의 신년사는 “위기의식은 다가오는 재난을 막아주는 레이더로, 이 레이더가 정상 작동해야 빈틈없는 대응이 가능하다”며 위기감을 강조하는가 하면, “고객 없이 생존이나 성장은 불가능하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적인 가치와 목적에 충실하도록 구성원에게 자기혁신과 담대한 도전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부문의 신년사에서는 그런 절박함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각오를 다지는 성찰과 자구 노력을 주문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적당히 듣기 좋은 소리로 얼버무리는 면피성 정책이나 일시적 포퓰리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올해 10대 그룹 신년사의 키워드는 고객·성장·미래·위기·기술·환경·가치·새로움·변화 등의 순으로 과거에 비해 위기란 말이 두드러진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위기의식과 체질 개선 등을 통해 성과 지향으로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경제계와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신년사에서 온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영리 추구라는 구체적 목적을 위해 사업을 하는 기업과 나랏돈으로 막연한 서비스를 생산하는 조직간의 책임과 성과 관리, 피드백 시스템의 차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기획재정부가 부처별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과 목표를 정해 재정사업의 실효성을 높인다니 두고 볼 일이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살아남기 위해 굴을 세개나 판다는 꾀 많은 토끼처럼 더욱 책임감 있게 예산을 집행해서 공공부문이 위기 극복에 모범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