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폐광지역 리포트] 1.탄광으로 흘러 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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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내 폐광지역이 탄광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있다.
2025년 삼척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강원 탄광산업도 사라지게 된다.
1.탄광으로 흘러 온 사람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태백, 정선, 삼척, 영월 등 강원도내 탄광지역에는 일자리를 찾아 지역에 정착한 광부와 그들의 가족이 밀려들었다.
1988년 말 도내 인구 173만905명 중 약 25.4%인 44만1370명이 도내 4개 탄광지역에 거주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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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80년대 탄광 개발 붐
일손 부족 일자리 가장 풍부
당시 4개 탄광지역 인구 44만명
2025년 도계 폐광 탄광산업 폐막
강원도내 폐광지역이 탄광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있다. 2025년 삼척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강원 탄광산업도 사라지게 된다. 산업역군이라는 영광은 옛일로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휘청이는 지역경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진폐재해로 고통받는 광부들도, 탄광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하다. 다만, 이철규 의원이 대표발의한 ‘탄광순직산업 전사 예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탄광지역은 다시 국가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강원도민일보는 ‘다시쓰는 폐광지역 리포트’를 연재, 폐광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폐광지역의 회생 방안을 모색한다.
1.탄광으로 흘러 온 사람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태백, 정선, 삼척, 영월 등 강원도내 탄광지역에는 일자리를 찾아 지역에 정착한 광부와 그들의 가족이 밀려들었다. 1988년 말 도내 인구 173만905명 중 약 25.4%인 44만1370명이 도내 4개 탄광지역에 거주할 정도였다. 탄광에 입사하게 된 경로는 다양하지만 이유는 단 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다. 1960년~1980년 일자리가 가장 많은 곳은 탄광이었다. 사택도 제공해주고 자녀들의 학자금 지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 탄광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그들에게 없었다.
1973년부터 1992년까지 약 20년을 정선 사북광업소에서 일한 전인갑(78)씨는 군 제대 후 바로 탄광에 입사했다. 전 씨는 “다들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기였고 특히나 우리 집안 같은 경우에는 더욱 사정이 안 좋았다. 한창 탄광이 개발되고 일손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탄광이 가장 일자리가 많은 곳이었다. 가진거라고는 건강한 몸 뿐이었던 나에게 선택지는 탄광뿐이었다”고 말했다.
1985년 퇴사 전까지 약 13년간 정선 나전광업소에서 근무했던 이광재(71)씨도 마찬가지다. 이광재씨는 “일할 직장은 없고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벌어먹기 위해 광부가 됐다. 처음에는 대한석탄공사에서 임시부로 일하면서 탄광 일을 배웠다. 거기서 일하면서 아내와 결혼도 하고 그러다보니 계속 근무하게 됐다”고 했다.
여성 광부도 적지 않았다. 지난 1966년 10월 27살의 나이로 함백광업소에서 여성 선탄부로 일하기 시작했던 남춘자(83)씨는 남편이 탄광에서 일한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당시 탄광 노조지부장의 소개로 일하게 됐다. 당시에는 남편이 탄광에서 근무 중 사망하거나 퇴사 이후 사망하면 아내를 선탄부로 일할 수 있게 해줬다. 남 씨는 “남편이 떠난 뒤 삼남매를 키워야 되는데 여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고민하던 찰나에 당시 탄광 노조지부장이 선탄장에서 일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줬다”고 했다.
1975년 12월부터 사북 동원탄좌에서 한 22년 정도 일한 김순자(76)씨도 “남편이 일을 하지 않아 집안이 어려웠다. 당시 동원탄좌에 있던 계장이 우리 딸과 같은 학교 학부모였는데 내 사정을 듣더니 그럼 우리 탄광에서 일해보라고 소개해줘 서류를 내고 입사하게 됐다”며 “당시에는 동원탄좌에서 75년 한해에만 90명이나 뽑을 정도로 사람을 많이 뽑던 때였다. 여자 선탄부들도 많았고 나는 그해 3차로 입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자리가 많았던 탄광도 나중에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 소개를 받지 못하면 들어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75년부터 1989년까지 장성광업소에서 근무한 김정동(72)씨는 “그때 모집을 하기는 했지만 탄광은 국영 기업체여서 왠만해서는 들어가기 힘들었다. 보통 아는 사람 통해서 알음알음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1975년부터 도계경동탄광, 태백 황지광업소 등에서 30여 년 근무한 이병주(73)씨도 “25살 때 직업을 구하려고 여러 곳을 다녔는데 당시 동서가 도계 쪽에서 학교 교사였다. 동서의 소개로 그대로 탄광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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