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30. 춘천 독일안경원
1967년 개원 춘천 명동 터줏대감
직원근무 25년 뒤 대표 물려받아
도내 유일 첨단 3D 검안장비 마련
고급화·맞춤형 전략 위기 극복
4대 가족 등 남녀노소 단골손님
취약층 안경·장학금 지원 등 꾸준
묵묵히 ‘독일안경원’ 운영 지속
“5대 가족까지 만나는 것 목표”
50년 넘는 세월동안 춘천 조양동 50-8번지를 지켜온 춘천 독일안경원.
춘천 독일안경원은 ‘온고지신’ 그 자체다. 최고(最古)의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원’, ‘명동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점포’가 춘천 독일안경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세월로 변화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오해는 금물. 최첨단 3D 검안장비를 갖춘 안경원은 강원도에서 이 곳이 유일하다. 동공의 위치와 안경과 동공 간의 거리, 안경 착용시 안경의 각도까지 섬세하게 맞춘다. 3000장 이상의 고급 안경도 보유했다. 경기가 부흥하고 침체하기를 반복하면서 명동 주변 점포들이 흥망성쇠를 겪을 동안 꾸준하게 이 곳을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다. 허남경(61) 독일안경원 대표는 “시민들의 소비심리를 파악하는 능력과 정확한 기술력까지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안경원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춘천 명동에 독일 안경원을 개점한 장본인은 초대 독일안경원 대표 김주영(85)씨다. 전국에서 독일안경원이라는 상호를 꽤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건 독일이 광학기술의 세계 선두주자로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출신 허남경 대표는 관련학과를 졸업한 뒤 구직 과정에서 춘천까지 오게됐고, 1982년 독일안경원에 입사했다. 허 대표는 25년간 이 곳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다 2007년도에 대표 자리를 위임받았다. 김주영 전 대표와 20년 넘도록 사장과 직원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가운데 어느날 김 전 대표는 ‘간판을 지켜달라’는 말을 허 대표에게 전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물려받게 됐다.
강원도에서 가장 역사 깊은 안경원인 만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술 하나 전수받기 위해선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야만 했다. 영업시간에는 손님을 맞이하고 영업시간 이후에는 렌즈를 깎는 ‘나머지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매를 맞아가면서 가르침을 받는 일도 있을 만큼 엄격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배우고 직접 안경원을 차린 직원들도 생겼고 독일안경원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직원으로서 25년, 대표로서 16년, 41년동안 독일안경원을 지킨 허남경 대표의 가장 큰 보물이자 자부심은 30만건에 달하는 고객 데이터다. 김진선 전 도지사, 배계섭 전 춘천시장 등 유명인부터 캠프페이지에서 근무하는 미군들까지 전세계 남녀노소 다양한 인물들이 이 데이터에 포함됐다. 안경이 마스코트인 김 전 도지사와 배 전 시장은 이 곳을 자주 찾는 단골 중 한 명이었고, 이들의 친지는 아직까지 독일안경원을 찾고 있다. 미군들의 경우 1980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이 안경원에서 보잉 선글라스나 도수 선글라스를 구매하곤 했다. 4대 가족까지 이곳을 찾는다. 40년전 만났던 어느 한 손님은 이제 백발 노인이자 증조할아버지가 돼 7살짜리 어린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온다. 허 대표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쌓여가는 고객데이터가 안경원 역사를 보여준다면, 부르트고 갈라진 허남경 대표의 손 마디마디는 노동의 가치를 상징한다. 부르튼 손을 가리키자 그는 재빨리 손을 감싸고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기계로 렌즈를 깎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렌즈를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 만들어야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렌즈가 플라스틱 소재라 가볍고 스크래치가 날 일이 드물지만, 그 시절 렌즈 소재는 유리여서 자칫 손가락이 베이기
십상이었다. 건조하고 추운 계절일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독일안경원은 명동상권의 산증인이다. 춘천 최고 번화가인 2000년대 초반 명동의 최대 부흥기 시절에는 많게는 하루 40건씩 안경 구매가 이뤄졌다. 명동거리에 컴퓨터가게나 양화점, 책방 역시 함께 이 곳을 지켜왔다. 그러나 2010년도 들어서 도심이 확장되고 상권이 분배되면서 명동 상권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안경산업이 유행을 타지 않는다지만 상권의 영향을 비껴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허 대표는 고급화와 맞춤형 전략을 통해 단골 손님 유치에 집중했다. 2007년 이후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는 이유도 ‘독일안경원을 찾게 하는’ 전략 중 하나다. 허 대표는 “고급화라기 보단 좀 더 나은 재질을 사용하고, 경사각을 한 번이라도 더 조정한다. 내 몸 같이 편안해야 써 본 사람들이 또 다른분께 추천을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춘천시에서 원도심 살리기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최근에는 핵점포 지원사업자에 선정돼 인테리어도 깨끗하게 바꾸고 기둥도 독일 국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변경했다.
지역 봉사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기초수급생활자들을 위한 돋보기 안경을 남몰래 기부하기도 했다. 그의 스승 김주영 전 대표는 지난 1998년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도 꿈을 키워가는 지역 학생들을 위해 수빈장학복지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고 허 대표도 재단 이사로 이름을 올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 미래에 투자 중이다.
유행은 10년 주기로 돌고 돈다. 2010년대는 뿔테, 2000년대는 무테가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금속테나 가벼운 티타늄소재의 안경테가 가장 잘나간다. 그의 목표는 유행주기를 2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체력과 힘을 가지는 것. 차기 독일안경원을 이끌어갈 후임자를 물색하는 일도 남았다. 3명의 직원들과 허 대표는 앞으로도 명동거리에서 묵묵히 고객들의 광명을 되찾는 일을 지속할 것이다. 허 대표는 “4대 가족 고객까지 봤는데 5대 가족까지는 봬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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