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위 사퇴' 나경원 출마로 기우나... 與 전대 구도 요동

'대통령실과 갈등' 나경원 전격 사의 표명
대통령실 "사의 전해 듣지 못했다" 불쾌감
당내 '정치적 퇴로 없다' 출마에 무게 관측
나경원 "당·尹에 어떤 결정 도움될지 고민"

2021년 5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출마한 나경원 당시 후보가 당권 도전의 비전 발표를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대통령실과 친윤석열(친윤)계로부터 전당대회 불출마 압박을 받아온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당 안팎에선 나 부위원장이 당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이 더 커졌으며 전대 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나 부위원장과 대통령실은 사의 표명 여부를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이어가면서 윤 대통령이 사의를 반려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羅 "당과 대통령에 어떤 결정 도움될지 고민"

나 부위원장은 이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유선으로 "대통령께 심려를 끼쳐드렸으므로 사의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나 부위원장과 가까운 한 전직 의원도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나 부위원장의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부위원장은 이에 앞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인 이철규 의원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양측은 당권 도전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나 부위원장은 회동 직후 참모진들로부터 정치적 행보에 대한 의견을 들은 뒤 부위원장직 사퇴를 최종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이미 당대표 출마와 '출산 시 부채 탕감 발언'으로 대통령실·친윤계와 반목하는 모습이 드러난 이상, 나 부위원장이 출마로 무게가 기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나 부위원장은 이날 저녁 자택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당대표 출마와 관련해 "국민의힘과 대통령에게 어떤 결정이 도움 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며 좀더 숙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전대의 모습과 전대 이후 당의 모습이 과연 내년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지점이 있다"고 했다. '설 전에는 결심한다고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하죠"라고 답했다.

羅 "유선·문자로 전했다" vs 대통령실 "전달받지 못했다"

친윤계에선 나 부위원장의 사의 표명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퇴로'를 열어달라는 메시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나 부위원장의 사의 표명 보도 직후 "전해 들은 바가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나 부위원장의 사의 표명이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거스르고 있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면서 윤 대통령이 반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나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사표 쓸 생각하지 마라'라고 했다"며 "나 부위원장에게 전대 불출마 외에 '정치적 타협은 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 부위원장은 그러나 취재진에 "(대통령실 측에) 문자와 유선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며 대통령실과 상이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대통령실로부터) 아직 공식 입장을 받은 게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할 경우에 대해선 "가정하에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羅 출마 시엔 친윤계 구상 차질 불가피

대통령실이 이처럼 강경한 태도로 일관할 경우, 나 부위원장 입장에선 '정치인 나경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여권 내 대체적인 전망이다.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그가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노골적인 압박에 굴복할 경우, 정치적 미래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친윤'을 자처해온 나 부위원장이 출마를 결심한다면 친윤계와 비윤계 사이에서 다소 애매한 입장에 서게 되는 점은 부담이다.

나 부위원장의 출마 시엔 친윤계 대표주자로 김기현 의원을 지원하려는 친윤계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김 의원과 당심 및 대중 인지도를 내세운 나 부위원장이 경쟁한다면 승부를 속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 부위원장의 출마로 안철수 의원 등과의 다자 구도가 형성될 경우, 당권 레이스는 혼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나 부위원장이 출마한다면 전대 흥행엔 도움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당이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