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지자체 답례품 경쟁… ‘고향 기부금’ 부익부 빈익빈
일본에선 도쿄와 같은 대도시 직장인들에게 ‘후루사토(고향) 납세’를 통해 주민세를 고향에 기부하라고 권한다. 세금을 자신의 주거지 지방자치단체에 내지 말고, 고향 등 납세자가 원하는 곳에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고향에 낸 만큼(일부 금액 제외) 이듬해 납세자들의 세금을 깎아준다. 납세자 입장에선 고향에 내는 세금을 대부분 돌려받고 답례품까지 받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게 없고, 재정이 어려운 고향 지자체는 세수가 늘어 큰 도움이 된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지난 2008년 도입된 이 제도를 지방 재정의 ‘최고 도우미’로 홍보했다. 우리나라도 올 1월 이 제도와 유사한 ‘고향 사랑 기부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고향 납세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금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돼 적자를 기록하거나, 대규모 답례품 및 마케팅 비용 탓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도 속출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0일 2021년 지자체별 수익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1741지자체 중 27%인 471곳이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최대 적자를 기록한 지자체는 요코하마시(市)로 무려 227억3000만엔(약 2140억원)에 달했다. 이어 나고야(130억4000만엔)와 오사카(120억9000만엔) 등이 뒤를 이었다. 고향 납세로 대도시 세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대도시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021년의 경우, 4447만명이 고향 납세에 참여해 총 금액은 8302억엔(약 7조8000억원)이었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작은 지자체 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2만명인 홋카이도의 몬베쓰시는 고향납세의 혜택 때문에 76억9000만엔, 미야자키현의 미야코노조시도 76억7000만엔의 흑자를 냈다. 이에 비해 인구 4만3000명인 시즈오카현 나가이즈미초는 1억6300만엔 적자였고, 인구 5만2000명인 히로시마현 후추초는 1억3700만엔 적자였다.
지자체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답례품·배송비·수수료·마케팅비 등의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고향 납세는 개인 주민세·소득세에 따라 한도가 정해진다. 연 수입 500만엔에 4인 가족 가장이면 한도액이 7만~8만엔이며, 연 수입이 1000만엔이면 기부 가능액이 20만~24만엔으로 껑충 뛴다. 지자체들은 고액 기부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소고기 선물 세트와 같은 고가 답례품을 마련하는 한편, 마케팅과 홍보에 매달렸다. 실제로 지자체들은 고가 답례품을 조달하는 데 2267억엔, 라쿠텐과 같은 쇼핑몰에 중개 수수료로 711억엔을 사용했다. 배송비(636억엔)나 결제 수수료(186억엔)도 증가 추세다. 일본 정부는 4년 전 고향 납세에서 경비의 비율을 전체의 50% 미만으로 제한했는데, 현재 이 비율은 46.4% 수준이다. 거의 상한선을 채운 것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지방 도시 중 전문가 영입에 나선 곳도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미에현 욧카이치시는 연봉 1000만엔을 내걸고 고향 납세를 책임질 전략 프로듀서를 공모 중”이라며 “이곳은 2012년 이후 매년 적자에 시달리다 ‘비상 선언’까지 했지만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고향 납세 경쟁에서 한발 물러섰던 도쿄의 지자체들이 참전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도쿄 세타가야구의 호사카 노부토 구청장은 “방침을 전면 전환해 앞으로 답례품을 충실하게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유명 프랑스 과자점의 고급 상품 세트’와 같은 답례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도쿄 시부야구도 호텔 숙박권이나 유명 레스토랑 1만엔 식사권과 같은 답례품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세금으로 쇼핑한다는 의미로 ‘관제(官制) 쇼핑’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일본의 도쿄후지대학 홍성협 교수는 “도시와 지방 간 세수 격차를 줄이려는 목적은 퇴색됐고, 소비자들 사이엔 어차피 낼 세금을 활용해 공짜로 좋은 답례품을 골라 구매하는 풍토가 강해지고 있다”며 “점차 지자체 간 제로섬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고향 납세로 인한 지자체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타 지역으로 새어나간 세금의 일부를 교부금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후루사토(고향) 납세
고향이란 의미의 ‘후루사토’와 납세를 조합한 용어. 직장인이 주민세·소득세를 현 주거지가 아니라 고향 등 본인이 지정한 지자체에 납부하면 지자체가 기부자에게 금액에 상당하는 답례품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기부 금액에서 2000엔을 제외한 나머지만큼 다음 해 주민세·소득세를 줄여준다. ‘납세’라는 표현을 쓰지만 법적으로는 기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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