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과 51곳 통폐합… AI학과 54곳 신설
서울 동덕여대는 지난해부터 독일어과와 프랑스어과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있다. 두 학과가 만들어진 지 약 40년 만에 ‘유러피언스터디즈학과’로 통폐합됐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재작년 HCI사이언스전공 등을 새로 만들면서 기존 학과들 정원을 감축했고, 2017년 합쳐서 56명이던 독일어·프랑스어과 입학 정원도 44명으로 줄였다. 대학 측은 “외국어 하나만 배우려는 학생이 줄고 있고, 대학에서도 한 나라 언어뿐 아니라 유럽 문화·사회·경제를 융합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 학과를 통합했다”고 했다.
이 같은 대학 학과 개편은 지난 10년간 전국 대학에서 4000건 넘게 이뤄졌다. 10일 국회 도종환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전국 일반대 학과 통폐합·신설 현황’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4년제 대학에서 통폐합되거나 신설된 학과는 4108개에 달했다.
인문·사회계열 학과 통폐합이 763건에 달해 가장 많았다. 특히 어문 학과가 많이 통합되거나 사라졌다. 영어영문학과나 실무영어전공을 주로 하는 영어학과가 51개 통폐합됐고 중국어과(36개)와 일본어과(27개), 러시아어과(10개) 등도 아시아나 유럽 학과 등으로 통폐합 대상이 됐다. 단국대 천안캠퍼스는 지난 2020년 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포르투갈어과를 ‘유럽중남미학부’로, 중국어·일본어·몽골·중동학과를 ‘아시아중동학부’로 각각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정원을 21명 줄였다. 부산 동아대는 2021년부터 독어독문학과와 프랑스문화학과를 없앴고, 대학 어디나 있던 국어국문학과는 전국적으로 아예 없어지거나 문예창작과 등과 합쳐진 곳이 12개다.
공학 계열은 이합집산을 거치긴 했지만 순증했다. 학과 통폐합이 557건, 신설이 819건이었다. 특히 첨단을 강조한 전공이 많이 늘었다. 지난 10년간 인기를 끈 학과 간판은 ‘바이오’ 계열. 바이오를 학과 이름에 쓴 경우가 52곳 새로 생겼다. 전남 여수 전남대 헬스메디컬공학부(2021년)나 제주대 바이오메디컬정보학과(2022년)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이름을 붙인 학과는 54개가 새로 생겼고, 최근 3년(2019~2022년)간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학과 이름에 ‘스마트’가 들어간 곳도 51개 신설됐다.
인문사회 계열이 줄고 공대가 커진 건 대입 정원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3만3215명이었던 인문사회 계열 입학 정원은 지난해 10만6692명으로 20% 줄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공학 계열 입학 정원은 8만4560명에서 9만224명으로 늘었다. 전체 대학 입학 정원이 10년간 3만명 정도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전체 입학 정원에서 인문사회 계열이 차지하는 비율은 39.1%에서 34.3%로 감소했고, 공대 비율은 24.8%에서 29.0%로 증가했다.
대학이 사회 변화에 대응하려면 학과 구조 조정은 반드시 해야 하며, 지금보다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사립대 공대 교수는 “인문대든 공대든 과잉 공급으로 사회와 괴리가 큰 학과들이 있다”며 “산업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시기에 맞게 길러내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한 사립대는 중고교 한문 교사 선발이 줄어드는 추이를 반영해 약 10년 전부터 한문교육과를 폐지하려고 했으나 교수들과 재학생, 동문들이 반대하면서 입학 정원을 30명에서 25명으로 줄이는 데 그쳤다.
인문 계열 학과 통폐합은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작년 11월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과학탐구를 본 수험생(50.04%)이 사회탐구 응시생(49.96%) 수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는 “사회 변화에 따라 인문 학과가 축소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지금처럼 취업률이나 산업 논리만으로 학과 개편이 이뤄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공계 학생에게도 인문학을 가르치려면 연구자가 계속 나와야 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 인문학 육성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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