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건물 낙석 방지망 1년째… 유족들 "현장 보면 악몽 떠올라"

안경호 2023. 1. 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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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1년]
3월 예정 전면 철거에만 2년 걸릴 듯
상인들 "영업 피해 보상도 못 받아"
입주 예정자들 "5년 기다려야" 한숨
제도 개선·후속 입법 논의도 제자리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1주기를 하루 앞둔 10일 사고 건물인 201동 붕괴층에 비산 방지망과 낙석 방지망, 가림막 등이 겹겹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 1월 11일 오후 3시 47분쯤. 멀쩡하던 130m짜리 건물의 한쪽 모서리 기둥과 벽체 일부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서 신축 중이던 주상복합아파트 화정아이파크 201동(지하 4층·지상 39층) 23∼38층 16개 층이 연쇄 붕괴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고층 건물 붕괴였다. 이 사고로 작업 중이던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콘크리트 슬래브)은 물러 터졌던 이 아파트는 이후 부실 공사와 인재(人災)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10일. 사고 현장은 외형적으론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간 듯 무너진 201동 붕괴층엔 여전히 상처를 덮은 거즈처럼 낙석 방지망과 비산 방지망, 가림막이 둘러쳐져 있었고, 공사가 중단된 나머지 7개 동도 우울한 잿빛 모습 그대로였다. "광주의 대표 관문(광주종합버스터미널) 뒤에 우뚝 선 흉물"이란 말이 틀리지 않아 보였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1주기를 하루 앞둔 10일 사고 건물인 201동 붕괴층에 비산 방지망과 낙석 방지망, 가림막 등이 겹겹이 설치돼 있다.

가족이란 살점을 잃은 희생자 유가족들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 그것도 일터에서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다가 3~28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피붙이를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유족들은 "다신 예전처럼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안정호 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는 "힘든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그 시간은 계속될 듯하다"며 "철거되지 않고 있는 201동을 볼 때마다 그날(참사)이 떠올라 두렵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유족들에겐 참사 현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조차 악몽이다. 그래서 유족들은 눈앞에서 흉물이 빨리 사라져 주길 희망했지만, 뜻대로 되긴 쉽지 않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201동 건물 안정화 작업을 마치고 국토안전관리원의 안전관리계획서 승인 등 행정 절차를 밟으면, 빨라야 3월쯤 8개 동에 대한 전면 철거에 나설 수 있다. 철거 기간도 2년 정도 걸린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1주기를 하루 앞둔 10일 붕괴 건물인 201동과 인접한 금호하이빌 도매상가 앞 도로변 가로수에 상인들이 건물 안정화 및 철거 작업에 따른 콘크리트 가루 날림 피해 등에 대한 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붕괴 현장 주변 상가 상인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다. 사고 당시 201동과 겨우 6m 떨어진 금호하이빌 입주 상가 42곳과 인근 상가 45곳이 영업 피해를 입었지만 35곳은 아직 피해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한 상가 주인은 "붕괴 건물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건물 잔해가 쏟아질 것 같아 아찔하다"며 "주민들과 상인들은 여전히 큰 불안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상인들은 "본격 철거가 시작되면 콘크리트 가루가 쏟아질 게 뻔한데, 장사는 이미 글러 먹은 것 아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제 금호하이빌 1층에 입주했던 상가 3곳이 분진 피해 등을 호소하며 문을 닫고 떠났다.

한순간에 집을 잃은 입주예정자들(847가구 5,000여 명)의 피해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현산과 주거 지원 협약을 맺었지만 입주까지는 5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터라, 그때까진 집 구하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참사 이후 달라지지 않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붕괴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당국의 제도 개선 노력과 후속 입법 조치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광주 서구청이 지난달 내놓은 259쪽짜리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대응 백서'다. 붕괴 사고 원인 등을 분석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해 만든 이 백서가 단순 일지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백서는 붕괴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주로 사고 수습 과정을 시간대별로 기록한 수준이었다. 여론에 떠밀려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부실 감리를 방지하기 위한 주택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게 전부였다.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가 해당 법안을 언제 논의할지는 기약이 없다.

참다못한 유족들은 "더는 억울하게 일터에서 죽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다시 안전을 외쳤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당국과 국회의 시계는 1년 전 그날 그 자리에 멈춰 있다. 유족들은 11일 오후 2시 아파트 201동 앞에서 희생자 추모식과 함께 안전사고 방지를 촉구하는 결의 대회를 연다.

광주=글·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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