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전기밥솥 ‘아, 옛날이여’
1965년 금성사(현 LG)가 국내 처음으로 전기밥솥을 출시했다. 주부들은 끼니마다 밥 짓는 수고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반색했다. 1980년대 초까지 일본 조지루시사(社)의 일명 ‘코끼리 밥솥’이 최고 인기였다. 1983년, 주부 17명이 시모노세키와 후쿠오카를 돌며 코끼리 밥솥을 무더기로 사재기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코끼리밥솥 사건’이라 했다.
▶코끼리 밥솥은 용량이 컸다. 8인용은 기본이고 15인용 점보 사이즈까지 나왔다. 당시 사진을 보면 작은 쌀독만 한 솥에 밥이 가득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밥을 많이 먹던 시절이었다. 밥을 맛있게 짓기 위한 한·일 양국의 기술 경쟁도 치열했다. 일본 3대 전기밥솥 제조사인 파나소닉이 1988년 바닥만 눌지 않도록 내솥 전체를 가열하는 밥솥을 선보이자, 4년 뒤 우리 업체는 압력 전기밥솥으로 맞섰다. 그 후 한국 시장에서 일제 밥솥의 우위는 끝났다. 2000년대 초엔 중국인들이 한국제 밥솥을 사재기했다. 한국 전기밥솥 전성기였다.
▶그런데 전기밥솥이 어느새 과거의 유물이 돼가고 있다. 한·일 양국이 같은 처지다. 파나소닉이 일본 내 전기밥솥 생산을 중단하고 올 상반기 중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일본 내에선 더 이상 전기밥솥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인구 감소, 노령화도 있지만 쌀 소비 급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한국 가구의 연간 쌀 소비도 1970년 1인당 136㎏에서 2021년 56㎏으로 줄었다.
▶1973년 서울시가 발표한 표준 식단엔 밥그릇 크기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쌀이 많이 들어가는 돌솥 대신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쓰라며 밥공기 크기를 내면 지름 11.5㎝, 높이 7.5㎝로 제한했다. 지금은 강제하지 않는데도 밥그릇이 작아지고 있다. 2012년 이후 시중엔 내면 지름 9.5㎝, 높이 5.5㎝ 밥공기가 쓰인다. 전기밥솥 크기도 함께 작아지는 추세다. 6인분이 기본이지만 2000년대 들어 3~4인용이, 2010년 이후엔 1인용이 나왔다.
▶식품 업계에선 지난해 한국 식탁에서 고기 소비가 처음으로 쌀 소비를 앞질렀을 것으로 본다. 전기밥솥에 해 둔 밥을 며칠이 가도 다 먹지 못해 버리기 일쑤다. 신혼부부 혼수 목록에서 밥솥이 빠지고 있다. 가끔 밥이 생각나면 햇반을 꺼낸다고 한다. 이제 전기밥솥은 식혜·갈비찜·감자·고구마·피자 요리 기능을 탑재한 종합 요리 기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구한말 서양인들은 엄청난 양의 밥을 먹는 한국인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 조상들이 요즘 우리를 보면 경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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