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비행의 묘미

송민경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법관의 일' 저자 2023. 1.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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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나의 첫 해외여행은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 서른 즈음의 일이다. 오랜 시간의 비행은 대양을 건넌다는 체감을 주지 못했다. 창공은 단조롭고 공허했고, 비행 시뮬레이션의 정교하게 조작된 화면 같았다. 인큐베이터를 연상케 하는 기내에서 상냥한 스튜어디스의 돌봄에 내맡겨진 무력한 아이처럼 매끼 식사를 하고 쪽잠을 청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창밖 풍경이 변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활주로 쪽으로 선회하자, 추상적이고 기하적인 선과 면으로 구획된 창밖 세계가 도로와 강, 공장과 창고, 교외 주택으로 휙휙, 빠르게 변해갔다. 마침내 보잉 747기가 뉴어크 공항의 활주로에 지친 몸뚱이를 기우뚱 내려놓으며 착륙하던 순간, 지금껏 알던 세계와 다른 세상이 도래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날아 건넌 것이다!

물리학 법칙에 무지한 전형적 문과생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비행이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수백톤의 비행기가 활주로를 힘차게 질주하는 어느 순간 날개에서 발생하는 양력에 의해 날아오르게 된다는 설명이 새빨간 거짓말 같다. 눈을 질끈 감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면 당신 겨드랑이 밑에 숨겨져 있는 날개가 비집고 나와 당신을 날게 해줄 것이라는 말처럼 허무맹랑하게 들린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비행기가 내겐 어딘지 모르게 신화적 존재로 보인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탑승구의 통창 너머로 주기(駐機)된 비행기를 바라보면 이 범속한 지상에 어울리지는 않는 신화 속 동물이 경박하게 분주할 뿐인 인간들에게 포박된 채 수난을 겪는 것 같아 측은하다.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이제 곧 이 우아하고 거대한 새가 나를 싣고 저 먼 어딘가로 비상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새털구름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어쩌면 우린 여행하기 위해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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