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한국식 ‘당 대표’의 시대착오적 성격

송평인 논설위원 2023. 1.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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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맞짱 뜨는 당 대표는 뭘 몰라
공천권을 유권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대통령 위해 행사하는 당 대표도 결격
정당 민주화·院內化로 당대표 없애야
송평인 논설위원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여야 모두 당의 리더가 있고 그들은 총리이거나 야당 지도자다. 대통령제 국가는 약간 다르다. 미국에는 중앙당이 없고 당 대표가 없다. 당의 리더는 여당의 경우 대통령이고 야당은 의회 원내(院內)대표다. 프랑스에는 중앙당이 있고 당 대표가 있다. 그러나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다. 야당 대표는 대개 의회 원내대표를 겸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처럼 중앙당이 있고 당 대표가 있지만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 아니고 야당 대표는 국회 원내대표를 겸하지 않는다. 당 대표가 여당의 경우 대통령으로 국정을 이끌거나, 야당의 경우 원내에서 국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공천에만 몰두하는 나라는 의정 체제가 비교적 잘 알려진 나라 중에서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에서 당 대표는 대통령과 원내대표 사이에 낀 과잉의 존재다. 당 대표가 자신이 과잉이라는 주제 파악도 못하고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여길 때 여당은 늘 위기를 맞았다. 더불어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 쪽에서 그런 일이 많았다. 박근혜 정권에서 김무성이 그랬고 윤석열 정권에서 이준석이 그랬다. 유승민은 원내대표 때부터 그런 전력을 보여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유승민의 태도가 당 대표라는 자리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핵관’의 당 대표 장악 시도가 정당화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당 대표는 본래 원외(院外)에서 중앙당을 대표하는 자리다. 원외의 당이 의미를 갖는 것은 당이 진성(眞性)당원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들이 내는 당비에 의해 당이 운영될 때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가짜 진성당원이다. 이들이 내는 당비는 고작 월 1000원이다. 당비는 다 모아도 정당 운영비의 1%밖에 기여하지 못한다. 정당 운영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건 국가보조금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에서 가짜 진성당원 중심으로 대표를 뽑고 그 대표가 공천을 좌우하는 방식이 민주주의를 밑바닥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선거 룰을 개정해 이번 선거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 자체가 반칙인 데다 개정된 룰은 일반 유권자의 의사를 30% 반영해온 데서 당원들의 의사를 100% 반영하는 쪽으로 퇴행했다. 반칙과 퇴행을 해서라도 당 대표 자리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견 표명일 뿐인 것을 트집 잡아 벌인 나경원에 대한 공격은 느닷없었다. 대통령의 참모들과 윤핵관은 대강 친윤(親尹)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확실한 자기들의 사람을 꽂아 위로부터의 일사불란한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은 누구를 당 대표로 뽑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당 대표라는 자리를 없애는 데 달려 있다. 당 대표는 지역구를 좌우하는 중앙당, 플랫폼 정당을 거부하는 폐쇄적 당원, 위로부터의 공천 같은 시대착오적 개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자리다. 물론 현실적으로 당장 당 대표를 없애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전진은 이런 시대착오적 개념을 떨쳐낼 당 대표를 뽑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민주당은 당 대표란 자리에 붙어 있는 시대착오적 개념에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 개념을 더했다. 사법처리 방탄이다. 검찰의 수사가 여전히 변죽만 울릴 뿐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고 여기지만 이재명도 드러난 혐의를 믿을 만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이재명을 민주당 당선이 확실한 지역구에 출마시켜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을 만들더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당 대표로 만들고 국회를 끊임없이 열어 이중 삼중의 방벽을 치고 있다. 자신의 사법처리를 막는 데 바쁜 사람이 현 국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 대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양대 정당은 한 번도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이었던 적이 없지만 더 이상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이 모범도 아니다. 오늘날의 정당은 원외에서는 당원만이 아닌 일반 유권자와 두루 소통하면서 원내에서 입법 활동을 통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을 정당의 원내화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당이 원내화의 추세로부터 동떨어져 유독 후진적임을 보여주는 것이 독립된 당 대표라는 자리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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