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말’을 쓴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1] 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1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3권.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김병운), ‘습지 장례법’(신종원),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낮고 조용할 때 오히려 단단하게 들린다. 한마디, 한마디 힘껏 고른 단어와 문장들, 그리고 행간. 마침내 이야기. 김병운의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 실린 7편의 단편 소설 속 이야기들은 너무나 조용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읽힌다. 그러나 몇 걸음 지나고 나서는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뒤에 남겨진 그 풍경과 소리가 무엇이었던지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한 번일 때는 너무 조용해서 듣지 못했으나 소리가 쌓이자 이야기가 되어 단단히 중심으로 내려앉는다. 그래서 김병운의 소설들은 겹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내게는 그의 소설들이 ‘소설 속 화자의 말’처럼 퀴어 소설들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번 소설집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우리’다. 표제작인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제 얘기예요. 우리 얘기지.” 또 다른 소설 ‘윤광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이 문장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김병운의 소설 속 ‘우리’는 퀴어들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독자들에게 전해지면 ‘우리’의 폭이 확장된다.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다. 위에 인용한 문장 속 ‘우리’는 ‘그들’일 뿐만 아니라 ‘나’이기도 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함께 나누지 못한 온갖 개인적인 서사와 함께,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해 머뭇머뭇 속삭이지 않을 수 없었던 내 사연들과 함께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별, 소수자, 공동체 이런 다소 거창하게 여겨지는 단어들을 걷어내고 나면 오롯이 ‘나’, 모두가 모두에 대하여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 남는다는 것. 퀴어들만이 화자로 등장하고 앞으로도 그러한 소설만 쓰겠다고 소설 속 화자가 다짐하는 김병운의 소설이 ‘우리’에게 미덕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소설들이 ‘우리’를 지나 내게로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다릴 때 우리가…’는 김병운의 첫 소설집이다. 수록작 단편 소설 ‘어떤 소설은 이렇게도 끝난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무슨 수로 알겠니, 나한테는 절대로 말을 안 하는데.” 청각장애자였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절대로 안 하는 말, 그러나 실은 못 하는 말들에 대해 김병운은 쓰고 있다. 반면 독자들은 안 듣는 말, 못 듣는 말에 대해서 읽게 되는데, 그 말들을 문장으로 전하는 김병운의 안정감이 든든하다.
☞김병운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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