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분열이 가장 큰 적이다
국가 위험도 최고점
원인은 국민의 분열
통합 단결이 최우선
# 열하루 전 세밑에 베네딕토 16세의 선종으로 지난 10년간의 이른바 ‘두 교황’ 시대가 막을 내렸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었던 베네딕토 16세는 재위 8년 만인 2013년 돌연 교황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결행했다.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근 600년 만에 살아있으면서 퇴위한 교황이 된 것이었다. 그는 퇴임 이유로 건강상의 문제를 내세웠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10년 전 살아있는 교황의 자진 퇴임을 둘러싸고 지금도 여전히 적잖은 말들이 없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생전 퇴임으로 바티칸의 교황청은 물론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다툼과 분열의 위기를 극적으로 탈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보수적인 전임 베네딕토 16세와 다분히 진보적인 후임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함께 바티칸에 존재했지만 사뭇 다른 ‘두 교황’ 사이에 긴장은 없지 않았겠으나, 노골적인 갈등이나 분열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베네딕토 16세의 철저한 은거와 침묵 덕분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엿새 전 정종휴 전 교황청 대사가 몇 장의 사진을 내게 전송해 보내왔다. 베네딕토 16세의 장례식이 거행되기에 앞서 성베드로 대성당의 돔 중앙 아래에 모셔진 시신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전통 복장을 한 바티칸 근위병이 긴 창을 들고 호위를 선 가운데 생전에 입던 흰색 수단과 붉은색 망토의 교황 복장을 한 채 누워 있는 베네딕토 16세의 모습에서 유독 검은색 구두가 눈에 띄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 재임 시 빨간색 구두를 고집했었다. 빨간색 구두는 예수의 흘린 피를 상징하는 교황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전임 교황이 된 후 베네딕토 16세는 더는 빨간색 구두를 고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선종 후 마지막 하늘 가는 길에도 그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모든 권세를 다 내려놓았다는 무언의 표식이었으리라. 죽어서 내려놓는 것이야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살아서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베네딕토 16세의 내려놓음의 상징으로 빨간색 구두가 아닌 검은색 구두를 주목해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사흘 전 우리와 지구 정반대 편에 위치하는 브라질에서 새 대통령(룰라)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전임 대통령(보우소나루) 지지자 수천 명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대통령궁과 의사당 그리고 대법원에 동시다발적으로 난입했다. 시위를 넘어서 거의 폭동 수준이었다. 이에 군 병력과 헬기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작전을 벌인 끝에 소요 발생 4시간 정도 만에 시위대를 진압하고 대통령궁과 의회 그리고 대법원 등 3부 기관에 대한 물리적 통제권을 회복했다고 한다. 시위대 대부분이 브라질 축구대표팀과 같은 컬러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비록 얼마 전 카타르월드컵에서는 우승컵을 놓쳤지만 지난 연말에 세상을 뜬 펠레가 입고 세 번의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바로 그 노란색 바탕에 녹색으로 포인트를 둔 브라질의 전통 유니폼이었다. 펠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그의 유언과는 달리 그의 모국 브라질의 현실은 냉정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지구 정반대 대척점에 있는 브라질이 결코 남 일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우리의 현실 또한 두 쪽 난 세상이다.
# 베네딕토 16세는 스스로 교황직을 내려놓는 결단을 통해 바티칸에 쏠린 비난과 가톨릭의 위기 상황을 돌파했다. 그리고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뭇 다른 차이를 상호 존중하면서 10년의 두 교황 시대를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편 2018년 집권해 브라질의 트럼프라 불리던 보우소나루 전임 브라질 대통령은 퇴행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고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결국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한 룰라에게 1.8%포인트 차로 대통령 자리를 내줘야 했다. 룰라는 2003~2010년 브라질 대통령을 연임하며 남미 좌파의 대부라 불릴 정도였지만 퇴임 후 부패 스캔들로 체포돼 1년 6개월가량 수감생활을 한 바 있었다. 이런 룰라에게조차 선거 전부터 여론조사에서 밀리자, 보우소나루는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부터 자신에게는 ‘승리가 아니면 암살 혹은 체포’뿐이라면서 지지자들을 선동해왔다. 그 결과 대선 직후부터 두 달이 넘도록 선거 불복이 계속되다 급기야 지난 8일의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축구 황제 펠레의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유언이 무색해질 만큼 말이다.
# 니어재단의 정덕구 이사장과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 등 한국의 새 길을 찾는 원로 그룹이 집단 작업해 지난 연말에 발표하고 올 초 신년 벽두에 발간한 ‘한국의 새길을 찾다’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나의 눈길을 끈 화두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은 왜 분열 공화국이 되었나?”라는 권두의 물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는데 되려 국가 위험도는 최고도로 높아졌다”는 권말의 진단이었다. 이 물음과 진단을 잇는 하나의 단어가 다름 아닌 ‘분열’이었다. 균열은 금이 간 것이고, 분열은 아예 갈라진 것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가 경험했던 고도성장은 경제적 양극화를 필연화하며 사회적 균열을 곳곳에 남겼다. 하지만 이것을 아예 진영 간의 국민적, 국가적 분열로 극대화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볼품없는 정치인들이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간절한 목소리가 더는 정치에서 들리지 않는다. 후임이 전임을 핑계 삼고, 심지어는 ‘쎄게’ 손을 봐야만 그 덕에 지금의 자기 자리가 보전될 수 있는 나라에서는 결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피의 악순환 뿐일 테니깐! 그동안 당한 게 있고 한 서릴 만큼 겪은 게 있는 국민은 “죽여라, 죽여라” 아우성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그 아우성치는 소리마저 품고 머금은 채 나의 적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룬 오현제 중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을 보면 “최선의 복수는 적(敵)처럼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분열의 공화국에서 새로운 통합과 화합의 길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대통령의 제1 과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0.74%포인트의 차이로 권좌에 올랐다. 브라질의 1.8%포인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니 더 통합과 단결에 힘써야 한다. 국민과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당대표 선출을 앞둔 여권 내부를 향해서도 더 겸허하게 처신하고 대처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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