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법치와 양두구육 상점
법치에 대한 강조가 별나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법치를 세 번이나 언급했고, 지난해 11월 29일에는 화물운송을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특정 형사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의 신상을 공개한 정당의 행위에 대해 공직자를 “조리돌림당하도록 공개적으로 선동하는 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법은 절대 정의나 절대 선의 상징이 아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법은 타협의 산물이며, 제약된 시·공간에서 상대적 합리성을 일부 담보하려는 불완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법 그 자체 또한 성찰의 대상이다. 계속되는 법률의 제·개정과 위헌법률심판 등이 바로 그 증거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법을 내세워 자신의 권력행사를 정당화하거나 준법을 강요하며 정적을 비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에 앞서 내세우려는 법 그 자체도 정의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과 함께 법에 내포된 타협 정신을 존중하며 권력의 과잉행사를 경계함은, 마땅한 일이다. 국가기관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고, 그 권력은 본질적으로 국민을 겨냥한 폭력과 공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 집행기관에게 법의 불완전성에 대한 통찰까지 요구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척박하다’고 애써 이해하며 자위하도록 하자.
그러나 집행기관이 법치의 이름으로 확고한 권력의지를 피력하고 정당의 권력 감시를 비난하는 세상만큼은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 난망하다. 왜냐하면 법에 따른 통치를 의미하는 법치는, 권력이 자의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통치를 법에 예속시키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헌법의 핵심 이념인 법치주의는, 법을 앞세워 신상필벌을 강조하고 권력을 일사불란하게 행사하려는 율법주의나 법가사상과 대결하며 자유를 위해 권력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쟁취한 혁명의 성과였다.
따라서 법치는 권력기관의 ‘주저함’이나 ‘성찰’과 호응하는 것이지, 신속하고 효율적인 권력행사를 도모하려는 ‘확고함’이나 ‘단호함’과 어울릴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설사 불법을 응징할 경우라도, 법치주의를 고양하려는 국가기관은 권력을 정의구현을 위한 확고한 신념에 따라 사용하면 안 된다. 오히려 불법이라는 낙인의 정당성과 그 근거를 되묻고 법의 정신에 대한 존중과 법에 따른 제약 아래에서 삼가고 삼가며 조심스럽게 권력이 행사되도록 자신을 통제해, 국가폭력을 순치하고 인권훼손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권력자의 확고함은 대개 난폭함으로 드러나고 신념은 자의를 거룩하게 하는 치장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며, 무엇보다도 법치주의의 목표는 권력통제를 통한 인권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물운송 노사가 운송을 집단 거부한 것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 인권(직업수행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의 한 내용이며, 검사 신상을 공개해 검찰권 행사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수월성을 높이는 것은 법치를 돕는 행위다. 따라서 법치국가의 권력기관은 강제나 비난 이전에,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노역 금지라는 헌법정신에 흠집 낸 것 아닌지 또 정치공동체의 이상과 우선순위에 맞게 검찰의 권력자원이 배분돼 투명하고 평등하게 투입된 것인지를 먼저 성찰, 설명했어야 한다.
만약 국가기관이 확고한 신념과 권력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면서 법치를 유별나게 강조한다면, 우리는 국가기관이 겉으로는 ‘법치’를 번지르르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준법’을 강매하는 ‘양두구육 상점’으로 변모한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준법으로 왜곡된 법치는 권력통제를 위한 우리의 무기인 법이 우리를 지배하려는 권력의 무기로 바쳐진 것인 바, 자유 위축과 권력남용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이 준법이나 공포 같은 낡은 도구를 노골화해 자유·법치 같은 헌법 이념을 억압·훼손하는 것보다는, 양두구육과 같은 방식으로 이념과 언어를 왜곡하는 것이 더 교활하고 악독한 통치이자 선동임을 간파해야 한다. 곡해된 이념은 이념 그 자체의 상실에 그치지 않고, 이념을 통해 포착된 삶의 조건과 관계를 유린해 과거를 욕보이고 미래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계묘년이다. 하지만 이념이 이념답고, 말이 말 같아야, 새해 또한 새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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