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웅’의 나문희·김고은
- 안중근 모친과 독립군 정보원 역
- 첫 도전 뮤지컬영화서 명품 연기
- 감동적 노래로 관객 눈물샘 자극
- 나 “노래 흥얼거릴 정도의 실력
- 피아노 전공 딸에게 레슨 받아”
- 김 “감정표현 안돼 주저앉아 울어
- 한예종 동기 두 명 많이 괴롭혀”
지난 12월 21일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 ‘영웅’이 관객 226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봉 직후보다 새해 들어 뒷심을 발휘하며 롱런할 기세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담았다. 2009년 초연 뒤 지금까지 사랑받는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영화화해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영웅’의 흥행을 이끄는 것은 뮤지컬에 이어 영화에서도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은 정성화의 탄탄한 노래와 연기도 있지만, 예상치 못했던 배우들의 빼어난 실력이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정신적 지주인 조마리아 여사 역의 나문희가 있고, 조선의 마지막 궁녀이자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 곁에서 독립군 정보원이 된 설희 역의 김고은 또한 그러하다.
영화 후반부 이토 히로부미에게 정체가 들킨 김고은이 기차 난간에서 가슴을 부여잡으며 부르는 ‘내 마음 왜 이럴까’와 나문희가 뤼순형무소에 있는 아들 안중근을 생각하며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정성화가 사형을 앞두고 부르는 ‘장부가’와 함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두 배우는 ‘영웅’을 꼭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었다. 두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뮤지컬 영화에 출연하다
한국에서는 뮤지컬 영화가 흔치 않은 장르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뮤지컬 영화 출연은 도전이다. 나문희 김고은 모두에게 ‘영웅’은 노래와 연기를 병행해야 하는 도전인 동시에 안중근 의사라는 전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을 그리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문희는 망설였다. “조마리아 여사님에게 누를 끼칠까 봐 걱정했다. 투옥된 아들(안중근)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그냥 죽으라고 하는데, 대의를 위해 아들의 희생을 지켜보는 그 어마어마한 힘의 근원을 감히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나문희는 망설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내 윤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영화 ‘하모니’를 윤 감독이 제작해서 그때 함께 작업했다. 윤 감독의 ‘해운대’ ‘국제시장’ 등 영화도 봤는데 ‘이런 감독이 그래도 나를 믿으니까 시켰겠지’ 하면서 그냥 했다.”
김고은은 원작 뮤지컬 ‘영웅’이 주는 감동과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출연에 큰 이유가 됐다. 김고은은 “처음에 ‘영웅’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그려내시려고 하는 건지 잘 상상이 안 가는 점이 있었다. 그래서 뮤지컬 ‘영웅’을 보러 갔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느끼는 가슴 벅참과 웅장함을 느꼈다”고 ‘영웅’과 인연을 맺은 과정을 설명했다.
출연을 결정하고 나니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노래였다. 나문희는 노래를 좋아하고 흥얼거리기는 하지만 뮤지컬까지 할 실력은 아니었고, 김고은은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하지만 뮤지컬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두 배우는 영화사에서 위촉한 보컬 선생님 외에 주변 사람들에게 SOS를 쳤다. 먼저 나문희는 피아노를 전공한 딸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나문희는 “큰딸의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힘을 좀 빌렸다. 걔가 호흡 같은 거는 나름대로 좋다고 그러더라. 이전에 악극 할 때는 연습을 별로 안 했는데 이번에는 부지런히 레슨을 받았다”며 큰딸에게 레슨비까지 줬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김고은은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특히 뮤지컬 출신 배우 김성철과 이상이의 도움이 컸다. 그녀는 “그 두 사람을 제가 제일 많이 괴롭혔다. 그 둘에게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맞출 테니 제발 한 번 봐달라’며 빌었다. 김성철 군이 ‘노래라고 생각하지 말고 대사로 생각해서 연기로 표현해보는 게 어때?’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걸 내가 모르는 게 아냐. 그런데 소리를 낼 줄 알아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라며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일 괴롭혔던 두 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감사하다. 나라 사랑 동기 사랑”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노래가 탄생하기까지
‘영웅’은 후반부에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그 시작점은 독립군 정보원 역할을 하던 설희의 기차 난간 장면이다. 이때 설희는 마지막으로 ‘내 마음 왜 이럴까’를 부른다. 원래는 기차 짐칸에서 부르는 것이었는데, 재촬영하면서 마지막 칸 난간으로 바뀌어 기차가 달리는 배경을 CG로 만들어 웅장함과 비장미를 높였다. 영화 전체 시퀀스 중에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장면이기도 하다.
김고은은 이 장면에 대해 “원 신 원 테이크로 찍은 장면으로, 카메라가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촬영했다. 그런 장비는 저도 처음 봤다. 그래서 카메라와 저의 동선이 다 맞아야 했고, 수정하는 데 20~30분이 걸려 리허설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촬영 과정을 떠올렸다. 이 장면은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기차 난간 세트를 만들고, 그 위에 줄을 달아 카메라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고난도 촬영이었다. 배우와 카메라의 합도 중요했지만 여기에 감정 연기와 노래가 더해져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다. “11번 정도 테이크를 갔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 여덟 번째쯤에 OK가 났던 것 같은데, 저도 욕심이 생겨 한 번만 다시 하겠다고 해 11번까지 하고 거의 기절했다.” 라이브 녹음이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노래와 연기를 했으니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영웅’을 보면서 나문희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장면부터 눈물 흘렸다고 말한다. 나라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어미의 애절한 마음과 사랑이 담긴 이 노래는 나문희의 목소리에 얹어져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 장면 또한 원래 뤼순형무소의 담벼락을 걸으며 부르는 것인데 재촬영하면서 본가 안방으로 바뀌었다.
나문희는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울먹울먹해진다. 그렇잖아, 얼마나 북받치겠는가. 하지만 울지 않고, 목까지만 (슬픔이) 차 가지고 노래했다”며 잠시 목소리가 떨렸다. 이어 “노래를 라이브로 했는데 난 참 잘한 것 같은데 윤 감독이 자꾸 더 바라고 해서 촬영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맨 처음에 한 것을 영화에 썼더라”며 웃었다.
2012년 영화 ‘은교’로 데뷔해 지난 11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쉼 없이 연기해온 김고은. 그는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팬들의 사랑인 것 같다. 주시는 사랑에 무한한 감사와 함께 더 좋은 작품으로, 더 좋은 연기로 어떻게든 찾아뵙고 싶다”며 꾸준한 활동을 약속했다.
1961년 MBC 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63년간 배우 생활을 해온 나문희. 그는 80대에도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여배우들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의 롤모델이다. “연기는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은 안 하고, 잘했으면 좋겠다. 욕심은 내지 말고 내 것을 잘 찾아서 하자는 생각이다.” 한 가지 일만 60년 넘게 해온 나문희의 담담한 진심이기에 울림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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