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다시 불붙는 인플레이션 논쟁
어떤 정책도 의도했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특히 통화정책은 실물경제에 그 영향이 파급되는 데에 길고도 가변적인 시차로 악명이 높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곧바로 생산이 위축되거나 물가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 실증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정책 시행 후 첫 1년보다는 이듬해인 2년째에 들어서면서 통화긴축의 영향은 대체로 더 뚜렷해진다. 작년 3월에 개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도 그 효과가 본격화하는 것은 올해 2분기 이후다. 연준은 앞으로도 금리 인상을 이어간다고 하니, 아무래도 고용이나 물가의 저점은 더 먼 미래 일인 것만 같다.
2023년 한국경제에서는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전망이 점차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미국은 올해 내내 바닥 모르는 경기하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석유파동 때처럼 1년6개월 정도는 고뿔과 싸워야 할지 모른다. 한국경제도 독감 정도 앓고 나면 내년 여름쯤엔 나아질까. 새해 경제전망으로 발표되는 숫자들이 점점 더 암울해지는 배경이다. 정부는 2023년 성장률을 1.6%로 내다봤지만 국제금융센터에서 최근 집계한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성장률 전망치는 9개사 평균 1.1%였다. 물론 정책당국이 지금처럼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헤맨다면 0%대 성장률이라도 영 달성 못할 일은 아니다.
결국 새해 경제전망의 핵심은 인플레이션 완화폭과 미 연준의 통화정책에 있다. 물가 압력이 주로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한 것이라면 수요 측면을 통제하는 통화정책으로는 공급 측 물가 압력의 해소가 어렵다. 그 경우 ‘희생률’(물가상승률 1%포인트를 낮추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성장률 감소분)은 세간의 인식보다 크기 마련이다. 실제로 과거 1979~1983년 공급 측 인플레이션 기간의 희생률을 현시점에 적용해보면, 연준이 작년 12월 물가상승률(6.6%)을 목표치까지 낮추기 위해서는 자국 성장률이 지금보다 5%포인트 넘게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연준이 기존 물가안정목표를 유지하는 이상, 연착륙 전망은 비현실적이다.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반복되는 기준금리 인상이 과연 바람직한 정책인지 따지자면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논쟁을 피해갈 수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연말연시에 공개된 두 편의 연구 결과가 특별히 주목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루스벨트 연구소 보고서가 그 하나이고, 세르바스 스톰과 토머스 퍼거슨의 신경제사상 연구소 논문이 다른 하나다. 이들 연구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재정투입이 과도했던 바람에 미국경제가 물가 압력에 노출되었다는 보수파와 인플레이션 매파의 시각이 재검토되었다. 재작년 7월 폴 크루그먼의 뉴욕타임스 패배 선언을 뒤집으며 매파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사후적으로 보면 인플레이션을 경고한 점에서 보수파들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장난 시계라도 우연히 시간을 맞출 수는 있는 법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스톰과 퍼거슨은 바이든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지출은 2021년 상반기까지 집행이 거의 완료된 반면 인플레이션은 그 후 특히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부터 큰 폭으로 상승해 물가상승과 재정지출의 기간이 서로 불일치함을 보여준다. 브루킹스 연구소 허친스 센터에서 작성하는 ‘재정충격측도’(재정지출이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지표) 역시 물가상승이 시작되는 2021년 2분기부터는 재정지출이 성장을 저해한 것으로 보고해 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오늘 연준과 한국은행은 다시 폴 볼커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그 얼마나 계급적인가. 주지하다시피 볼커의 고강도 긴축 처방은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무너뜨림으로써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길을 닦았다. 그것은 또한 외채위기의 후폭풍을 불러와 수많은 제3세계 민중의 삶을 파괴하기도 했다. 2023년에도 볼커의 후예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준이 올해 금리 인하가 없다고 공언한 것은 실은 그간의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뿐이다. 그러나 스톰과 퍼거슨에 따르면 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으므로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주장은 이번에도 증거가 없다. 하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실제로 고이윤은 고임금보다 더 물가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김수행 역, 국부론(상), 127쪽)고 하지 않았던가.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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