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솥을 기억하며
솥과 냄비의 차이는 무엇일까? 솥은 옆면을 둘러 날개가 있고 냄비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렸다는 생김새가 먼저 떠오른다. 무쇠, 구리 등으로 주조하는 솥은 두툼하고 무거운데 냄비는 양은으로 만들어서 얄팍하다는 차이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신소재로 만든 1인용 밥솥이 나오는가 하면 무쇠로 만든 큼직한 냄비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솥 정(鼎)’이 원래 양쪽에 귀가 달린 솥의 생김새를 그린 것이므로 손잡이 있는 게 냄비라고 하기도 적절치 않다.
냄비는 작은 놋쇠 솥을 가리키는 한자 ‘과(鍋)’의 일본어 발음인 ‘나베’가 우리말로 넘어와 ‘남비’를 거쳐 변화한 어휘다. 양은으로 만든 솥이 신문물로 널리 쓰이면서 기존의 솥과 구분해서 냄비라는 어휘도 함께 통용된 셈이다. 부엌의 변화로 크고 무거운 솥은 별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솥의 장점을 살린 압력밥솥, 별미로 먹는 돌솥비빔밥, 혹은 솥뚜껑삼겹살처럼 변형된 용도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오랜 시간 끓이는 가마솥은 시골집에서도 대개 자취를 감추었다.
‘정(鼎)’의 아랫부분은 세 개의 발을 그린 것이다. 길이가 약간 안 맞고 바닥이 고르지 못해도 흔들림 없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세 발 솥이다. 솥은 그대로 먹기 어려운 재료들을 조화된 음식으로 바꾸는 귀한 도구였다. 무언가를 바꾸는 데 솥보다 나은 것이 없으므로 <주역>에서 혁괘(革卦) 다음에 정괘(鼎卦)가 나오는 것이라고 여겨 왔다. 솥은 자신을 비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지니고 있기에 부드러움으로 강함에 응하는 중용을 상징하기도 한다.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혁신은 혼란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정괘는 변화를 안정시킴으로써 형통함을 얻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 발 솥을 유물에서나 볼 수 있듯이 머지않아 가마솥 역시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냄비에 밀려 솥이라는 말마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혁신을 말하는 이 시대에, 옛사람들이 솥을 보며 얻은 지혜를 다시 떠올려 본다. 웅숭깊은 가마솥처럼 온갖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안정된 변화에 이르게 하는 겸손함이 없다면, 그 혁신의 뒤에 무엇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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