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진짜 팬은 경기장에 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배구단 홈페이지 인사말에는 “보험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팬 여러분들의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신뢰’를 강조했는데, 최근 감독 경질 논란을 보면 흥국생명이 말하는 ‘신뢰’의 뜻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7팀 중 6위였던 팀을 올 시즌 2위까지 끌어올려 선두 경쟁을 하던 권순찬 감독을 돌연 해임해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감독을 선임하고 해임하는 건 구단의 권한이지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감독을 해임할 때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흥국생명은 “구단과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부합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실상은 모기업이 감독 권한인 선수 기용과 전술에 간섭했고, 감독이 이를 거부하자 지휘봉을 뺏은 것으로 전해진다. 논란이 커지자 구단도 뒤늦게 이를 인정하고 사과문을 냈다.
프로 스포츠에서 구단주는 팬들에게 애증(愛憎)의 존재다. 구단주가 더 좋은 선수와 감독을 데려와 성적을 내면 찬사를 받지만, 사랑받던 선수와 감독을 내칠 때면 미움을 산다. 그래도 정상적인 구단주라면 응원을 받든 욕을 먹든 항상 팀의 발전을 위한 선택을 한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구단주가 신뢰를 저버리고 본인 마음대로 구단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면 팬들은 등을 돌린다.
대표적으로 NFL(미 프로풋볼)의 댈러스 카우보이스 사례를 들 수 있다. 34년간 카우보이스를 소유하고 있는 구단주는 자신보다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우승 감독을 해임하는 등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카우보이스는 1995년 이후 한 번도 우승을 못 하고 있다. 국내에선 프로야구 SSG를 인수한 신세계그룹이 통 큰 투자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구단주와 가까운 인물이 구단 내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는 의혹으로 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흥국생명은 과거에도 우승 직후, 혹은 팀이 선두를 달리고 있을 때 감독을 갑작스레 경질했던 전력이 있다. 2014년부터 8년간 팀을 이끈 박미희 전 감독을 제외하면 2년 이상 지휘봉을 잡은 감독이 없다. 그러니 팬들은 이번 감독 해임도 구단과 모기업의 그릇된 소유욕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구단의 개입으로 마음이 상한 선수들이 있다”(김해란) “이런 팀이 어디 있을까 싶다”(김연경)는 선수들의 작심 발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감독 해임 후 새로 부임한 신용준 단장은 구단의 선수 기용 개입 논란에 대해 “유튜브를 보니 (선수 기용에 대해) 팬들의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짜 팬들은 유튜브가 아니라 경기장에 있다. 선수들을 지지한다는 팬들의 진짜 요구는 그곳에 있다. “구단의 주인이 선수와 팬들이라는 점을 명심하겠다”는 흥국생명의 다짐이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생팬’ 그 시절 영광 다시 한 번... 정년이 인기 타고 ‘여성 국극’ 무대로
- 러시아 특급, NHL 최고 레전드 등극하나
- 김대중 ‘동교동 사저’ 등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 국어·영어, EBS서 많이 나와... 상위권, 한두 문제로 당락 갈릴 듯
- 배민·쿠팡이츠 중개 수수료, 최고 7.8%p 내린다
- 다음달 만 40세 르브론 제임스, NBA 최고령 3경기 연속 트리플 더블
- 프랑스 극우 르펜도 ‘사법 리스크’…차기 대선 출마 못할 수도
- [만물상] 美 장군 숙청
- 檢, ‘SG발 주가조작’ 혐의 라덕연에 징역 40년·벌금 2조3590억 구형
- 예비부부 울리는 ‘깜깜이 스드메’... 내년부터 지역별 가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