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이토 사살은 국제법상 교전”
최훈진 기자 2023. 1.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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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삶을 다룬 영화와 뮤지컬, 소설 등 콘텐츠가 잇따라 나와 인기를 모으는 가운데 안 의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국내에도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의 눈으로 안중근 재판 다시보기'(2010년)를 펴낸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1)는 "과거 수업 도중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여기는 일본의 시각에 많은 학생이 동의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민법학자인 내가 국제법을 공부해 관련 책과 논문을 썼던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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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安의사 영화 등 흥행 맞춰
‘日엔 테러리스트’ 왜곡된 인식
제대로 바로잡는 계기 삼아야”
‘日엔 테러리스트’ 왜곡된 인식
제대로 바로잡는 계기 삼아야”
최근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삶을 다룬 영화와 뮤지컬, 소설 등 콘텐츠가 잇따라 나와 인기를 모으는 가운데 안 의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국내에도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안 의사를 존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이 폭넓게 퍼져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가 2014년 중국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 개관을 두고 “(안중근은)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등 우익 정치인들의 발언 등이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일본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1909년 하얼빈 의거가 없었다면 한일강제병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등 잘못된 역사 인식이 국내에도 없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최근 안 의사 관련 콘텐츠의 인기를 계기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를 비교 연구한 논문 ‘한일 역사교과서는 안중근을 어떻게 기술해왔는가(1945∼2007)’를 쓴 신주백 전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장(60)은 “예전에 지인이 ‘안중근 의거로 한일병합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물은 게 뇌리에 남아 논문을 쓰게 됐다”고 했다.
신 전 소장에 따르면 과거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그같이 가르쳤다. 일본 산천출판사가 펴냈던 교과서는 ‘한일병합은 안중근이 촉발한 것’이라고 기술해 오다 1990년대 들어 수정했다. 신 전 소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일본 학계도 뒤늦게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강제병탄의 기초를 구축했고, 조선의 식민지화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조선인과 국제사회의 반발 등을 의식해 천천히 하려고 했던 것뿐’이라는 게 우리 학계의 통설이다.
‘법의 눈으로 안중근 재판 다시보기’(2010년)를 펴낸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1)는 “과거 수업 도중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여기는 일본의 시각에 많은 학생이 동의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민법학자인 내가 국제법을 공부해 관련 책과 논문을 썼던 이유”라고 했다.
의거 뒤 체포된 안 의사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국제법상 ‘전쟁 포로’라고 주장했다. 그는 1910년 중국 뤼순의 일본 법정에서 “나는 개인 자격으로 남을 죽인 범죄인이 아니다. 대한국의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따라서 국제공법에 따라 재판하라”고 했다. 명 교수에 따르면 국제법상 전쟁 중 교전을 벌이는 ‘교전자격자’의 공격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항일의병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안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으며, 국제법상 비정규군도 교전 자격이 인정됐다. 또한 이토의 하얼빈 방문은 침략 행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명 교수는 “안 의사의 이토 사살은 교전의 일부로 정당행위”라면서 “안 의사는 이순신 장군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안 의사를 존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이 폭넓게 퍼져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가 2014년 중국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 개관을 두고 “(안중근은)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등 우익 정치인들의 발언 등이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일본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1909년 하얼빈 의거가 없었다면 한일강제병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등 잘못된 역사 인식이 국내에도 없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최근 안 의사 관련 콘텐츠의 인기를 계기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를 비교 연구한 논문 ‘한일 역사교과서는 안중근을 어떻게 기술해왔는가(1945∼2007)’를 쓴 신주백 전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장(60)은 “예전에 지인이 ‘안중근 의거로 한일병합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물은 게 뇌리에 남아 논문을 쓰게 됐다”고 했다.
신 전 소장에 따르면 과거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그같이 가르쳤다. 일본 산천출판사가 펴냈던 교과서는 ‘한일병합은 안중근이 촉발한 것’이라고 기술해 오다 1990년대 들어 수정했다. 신 전 소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일본 학계도 뒤늦게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강제병탄의 기초를 구축했고, 조선의 식민지화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조선인과 국제사회의 반발 등을 의식해 천천히 하려고 했던 것뿐’이라는 게 우리 학계의 통설이다.
‘법의 눈으로 안중근 재판 다시보기’(2010년)를 펴낸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1)는 “과거 수업 도중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여기는 일본의 시각에 많은 학생이 동의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민법학자인 내가 국제법을 공부해 관련 책과 논문을 썼던 이유”라고 했다.
의거 뒤 체포된 안 의사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국제법상 ‘전쟁 포로’라고 주장했다. 그는 1910년 중국 뤼순의 일본 법정에서 “나는 개인 자격으로 남을 죽인 범죄인이 아니다. 대한국의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따라서 국제공법에 따라 재판하라”고 했다. 명 교수에 따르면 국제법상 전쟁 중 교전을 벌이는 ‘교전자격자’의 공격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항일의병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안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으며, 국제법상 비정규군도 교전 자격이 인정됐다. 또한 이토의 하얼빈 방문은 침략 행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명 교수는 “안 의사의 이토 사살은 교전의 일부로 정당행위”라면서 “안 의사는 이순신 장군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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