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트럼프 빼닮은 바이든 이민정책
‘트럼프와 별반 다르지 않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차별 조항을 계기로 한국,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동맹국 내에선 이런 여론이 분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나 본질은 매한가지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 내에선 이민 정책을 놓고 유사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바이든이 직접 발표한 ‘타이틀42’ 확대 결정이 도화선이 됐다. 트럼프가 도입한 이 조치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국경을 무단으로 넘은 자를 즉시 추방하도록 허용했다. 주요 인권단체들이 낸 논평의 일부를 옮겨본다. “망명할 권리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 중에서도 최악의 요소를 따라 했다”(전미이민정의센터·NIJC), “트럼프 시대의 유독한 반이민 정책에 현 정부를 더욱 붙들어매는 결과”(미국시민자유연합·ACLU), “인도주의적 불명예”(휴먼라이츠퍼스트).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을 추진했던 트럼프와, 반세기 정치인생 내내 이민자 인권을 강조한 바이든이 ‘닮은꼴’이라니. 언뜻 과도한 비판처럼 들리겠지만 지난 2년간의 행보를 돌아보면 수긍 가는 대목도 있다. 취임 첫날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 복귀와 함께 트럼프의 강경 이민 정책을 바로잡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슬림 입국금지 철회, 국경 장벽 건설 중지, 그리고 아시아계 중 한인 비중이 가장 높은 미등록 청소년 추방유예(DACA) 유지·강화 등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포괄적인 이민개혁’ 공약이 가로막힌 사이 트럼프표 조치의 수명만 연장됐다. 연방대법원에 의해 타이틀42 폐지가 좌절되자 오히려 적용 대상 국가를 확대했다. 유엔난민협약 위반 소지가 있는 미국 망명 신청자를 멕시코로 돌려보내는 ‘멕시코 잔류’ 방침의 폐기 여부도 불투명하다. 인권단체들이 ‘믿었던’ 바이든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바이든 입장에선 국경 통제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유례없는 무단 입국자 급증으로 미 남부 국경은 몸살을 앓고 있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 주지사 등이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 워싱턴 등으로 보내면서 행정력 위기와 사회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위험한’ 이주는 이주민의 생명 역시 위협한다. 백악관은 “(트럼프와는) 대통령의 이민 문제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합법적이고 안전한 이민 경로를 중시한다”(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며 비판을 일축한다. 그런데 내용을 따져보면 조금 의문이 든다. 즉시 추방 대상에 포함된 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4개국 국민을 매월 3만명씩 수용하기로 했지만, 미국에 재정 보증자가 있고 모바일 앱을 통해 신청한 이들로 국한했다. 광범위한 폭력과 조직범죄, 성폭력, 경제위기 등 갖은 위협에 내몰려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는 이들 가운데 행정편의주의가 만들어낸 요건을 충족할 만한 이는 몇이나 될까.
“국경 이민을 질서 있게 관리하려는 노력은 지지하지만, 속도가 공정함이나 인간적 대우를 앞질러서는 안 된다.” 미국이민변호사협회(AILA)의 성명이다. 재선 도전을 앞둔 바이든에게 보편적 가치를 소홀히 하는 정책을 성급히 밀어붙이지 말라는 경고로 들린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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