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U 탄소국경세에 형식적으로 대응하다간 큰코다친다
지난달 구체적 윤곽이 발표된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 법안에 따르면 2025년까지의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는 철강, 알루미늄 등을 EU에 수출할 때 탄소국경세를 지불해야만 한다. 단순화한 예를 들자면 EU에서 이산화탄소 1t당 1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경우, 한국에서 3만원만 지불한다면 EU로 수출할 때는 그 차액인 7만원의 탄소국경세를 내야 한다.
이런 형태의 관세가 나타난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가들 간 노력의 차이가 기업들 경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앞의 예처럼 EU에서 생산할 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탄소배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기업들이 EU에서 생산할 이유가 없어진다.
따라서 EU를 비롯해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국가들에서조차 무역 비중이 높은 산업들에는 탄소배출 비용이 부과되지 않고 있다(배출권의 100% 무상 할당). 결국 탄소배출에 비용을 물려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국가들의 제조업 유치, 수출 경쟁력이라는 논리 앞에서 좌절되어 왔던 것이다.
EU의 조치는 국가별 탄소배출 비용을 균등화해 역내 기업들이 무역에서 겪는 불이익을 해소함으로써 탄소배출 비용 부과의 명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탄소국경세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도 필수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또 그런 이유로 머지않아 많은 국가들이 유사한 조치를 수용할 수밖에 없으리라 판단한다. 미국에서도 이미 상당히 구체화된 탄소국경세 안들이 제시되고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6일 발표된 한국 정부의 대응안에는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나 배출권 총량 축소와 같이 탄소국경세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탄소배출 비용 부과와 관련된 정책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관련 산업들에 대한 탄소저감기술 개발 지원, 탄소배출량 측정을 위한 제도 정비와 지원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최소한의 조치로 이해된다.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 조치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색 맞추기 수준의 형식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 부과는 기업들에 부담을 유발하기 때문에 정부가 조심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탄소배출 활동에 합당한 비용 부과는 시장원리를 활용하는 효율적인 탄소배출 저감 방식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기업 부담을 이유로 이를 미루는 것은 단지 회피일 뿐이다.
또한 정부가 기업에 부과하는 탄소배출 비용은 기금으로 축적되어 에너지 전환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활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탄소국경세는 국가별 탄소배출 비용 부과액의 차이를 관세로 부과하기 때문에 한국이 비용 부과를 강화하지 않으면 한국에 낼 돈을 EU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이야 한국에 내든, EU에 내든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90년에서 2013년 사이에 7.2% 감소했지만 한국은 110.8%나 증가했다.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까지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한국의 최종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비율은 2018년 기준 37개국 중 꼴찌였다. 준비하지 않았으니 미흡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선진국이지만 ‘기후 후진국’이란 오명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 탄소배출에 대한 국제 규제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탄소배출 저감 역량이 기업의 경쟁력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정부가 탄소배출 비용 부과를 유예하는 것은 단지 살찐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며 달래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이 규제를 예견하고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당연시되듯이 정부 또한 타국의 규제를 선도해 나감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 가야 한다. 아직은 전환기에 있는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탄소배출 저감 노력이 옳은 일임을 생각해야만 한다. 경제를 핑계로 의무를 피해보려 골몰하는 것은 힘을 소진시키고 국격을 깎아내리는 행위일 뿐이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 힘이 모이고 어려움도 극복된다.
송재도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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