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수달 가족, 근친 교배의 수렁에서 구해내야 [한삼희의 환경칼럼]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3. 1. 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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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댐 넘은 임신 암컷
2016년 서울 한강에 정착
DNA로 ‘15마리 번식’ 식별
그중 ‘남매 교배’ 새끼 확인
싱싱한 외부 유전자 수혈로
건강한 수달 공동체를
서울 한강 일대에서 확인된 수달 집단에서 근친 교배 사실이 DNA 조사로 확인됐다. 한강에는 수달 15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서울시가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사진은 한강에서 발견된 수달의 모습. / 서울시

서울시가 지난달 27일 ‘서울 한강에서 1급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달 15개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강 일대에서 수달 배설물을 수집해 DNA 검사에서 15마리의 존재를 식별했다는 것이다.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박사팀이 1년간의 연구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1973년 팔당댐 완공으로 한강 상·하류 간 수달 이동 경로가 단절된 후 댐 하류 구간에선 수달이 목격된 일이 없다. 1997년 수달 사체가 나온 적이 있지만 죽은 상태에서 댐 방류수에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2016년 3월 탄천 하류에서 수영하던 수달 한 마리가 시민 카메라에 잡혔다. 이어 한강유역환경청이 무인 카메라 모니터링에 나섰고, 2017년 1월 천호대교 북단 쪽 둔치에서 어미 한 마리와 새끼 세 마리를 포착했다. 가족 네 마리의 야밤 이동 장면이었다. 같은 해 9월 팔당대교 인근 도로에서 로드킬당한 새끼 수달 사체가 발견됐다. 그 후 2020~2021년 민간단체들이 성내천·중랑천·고덕천 등의 한강 본류 합수부와 암사·고덕 습지생태공원, 난지한강공원 등에서 수달을 촬영하거나 분변·발자국을 확인했다.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찍히기도 했다. 한 박사팀에겐 서울시가 2021년 11월 용역 조사를 의뢰했다.

한 박사는 작년 11월 28일 동북아생명다양성연구소가 17년째 시상해온 ‘동북아생물보전대상’의 2022년 수상자로 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 누가 상을 받는지도 모른 채 박수 부대로 차출됐다가 한 박사를 만났다. 한 박사는 국내 수달 연구의 개척자로 30년 연구 경력을 갖고 있다. 그날 한 박사의 수상 소감 가운데 기억에 박힌 대목이 있다. 2016년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한강에서 발견된 수달이 임신 상태였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팔당댐 상류 쪽엔 수달이 서식한다. 그러나 댐에 가로막혀 하류 쪽으로 넘어올 수는 없다. 강 양쪽 산기슭을 타고 하류 쪽으로 건너오는 방법이 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강 양편의 4차선·2차선 강변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2016년 촬영된 탄천 수달은 그 도로를 건넜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나서 10개월 뒤 어미와 새끼 세 마리가 무인 카메라에 찍혔다. 처음 팔당댐을 건넌 어미가 당시 임신 상태였고, 그 어미가 팔당댐 하류 쪽에 정착한 후 새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로드킬 수달은 세 남매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 박사팀이 한강 일대에서 수집한 수달 분변 34개 시료의 분석은 유전자 기업인 마크로젠의 황인욱 박사팀이 맡았다. 황 박사는 “야외에 노출된 분변 DNA가 자외선에 분해되고 미생물에 오염돼 조각조각 끊어지고 훼손된 상태였다”고 했다. 어렵게 PCR 증폭을 거쳐 종(種) 특이성을 갖는 마이크로 새틀라이트 유전자 영역을 분석한 결과 15마리의 개체 식별이 가능했다. 황 박사팀은 이어 개체들의 가족 근연(近緣) 관계를 들여다봤다. 새끼는 암수 부모로부터 유전체를 각각 물려받는다. A와 B의 유전자 서열이 C에게서 함께 확인되면 C는 부모 A와 B의 새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엄마, 아빠, 새끼의 세 마리로 구성되는 가족 두 집단을 확인했다. 수달은 한배에 둘 또는 셋의 새끼를 낳는다. 나머지 9마리 중에서도 두 가족의 구성원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채취 유전자의 불완전성으로 더 이상 분석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두 가족 가운데 한쪽의 부모 수달이 남매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두 가족이 유전적으로 완전 분리된 집단인지도 알 수 없다. 맨 처음 팔당댐을 건넌 용감한 어미로부터 갈라진 친족 관계일 수 있다. 만일 사촌, 육촌 등의 친족 관계일 경우 그것들끼리 교배하면 기형 등 근친 퇴화의 개체들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추정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엔 야생 수달 집단이 산다. 그중 일부가 임진강과 한강 하구를 거쳐 서울 쪽으로 거슬러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남매 교배 사례가 확인된 만큼, 한강 수달은 근친 번식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유전적 다양성 수치에서도 한강 수달들은 건강한 집단보다 다소 떨어지는 수치로 나왔다고 한다.

수달은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하천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다. 수달 서식은 하천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강 오염도 개선됐다는 증거다. 한강 수달 가족이 건강하게 대를 이어가기 위해선 외부 생태계로부터 다양한 유전자를 수혈해줘야 한다. 한강 규모 하천에서 탄탄한 수달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최소 80개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뉴욕 허드슨강도 1990년대 후반 279마리를 방사해 수달 생태계를 복원시켰다. 서울 시민들이 한강에서 싱싱한 야생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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