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사자 몸 꿰뚫은 물소의 뿔…이것이 ‘죽음의 피어싱’

정지섭 기자 2023. 1. 11.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파리 5대 천왕’ 아프리카 버펄로, 뿔과 발굽으로 사자도 죽여
털에 기생한 벌레들 쪼아먹는 새들과는 공생 관계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빅 스포츠 이벤트에서 약체가 강팀을 꺾는 ‘언더독의 반란’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약자에 아무래도 마음이 가는 인지상정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하고 억눌렸던 이들이 절치부심 끝에 고통을 되갚는 복수극은 영화·드라마·뮤지컬을 막론하고 가장 흥행이 보장된 서사입니다. 그렇다면 평생 물어뜯기고 잡아먹혔던 천생 약자들의 피비린내 가득한 복수극만큼 흥행요소를 고루 갖춘 이야기는 없지 않을까요?

사자 무리의 습격을 받은 물소가 최후의 저항을 하는 과정에서 뿔로 사자 한마리의 몸을 꿰뚫고 있다. /National Geographic Korea Youtube

시시각각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각본없는 잔혹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도 간혹 약자의 복수극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주연급 배우가 바로 아프리카 물소입니다. 오늘은 우선 유튜브(Latest Sightings) 에 올라온 잔혹복수극 동영상으로 시작하하겠습니다.

이 사자는 오늘 지독히도 일진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사냥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동료들과 진한 우애를 확인하며 사냥에 나섰을 것입니다. 풀숲에 몸을 숨기고 살금살금 다가가 동선을 파악한 뒤 약하고 뒤처진 물소를 집중 공략해 종국에는 쓰러뜨리고 마는 승리의 순간을 만끽할 생각에 설렘에 도취됐겠죠. 피비린내 물씬한 내장과 살코기맛에 곤한 하루의 피로감은 기분좋게 사그라들었을 거예요.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갔다면 말이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소 뿔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자. /Wild Life Youtube

물소 떼의 파워는 예상보다 강력했습니다. 다음 타이밍을 기약하며 퇴각하는 과정에서 그만 한마리가 뒤처지고 말았습니다. 육식동물이건 초식동물이건 무리지어 사는 녀석들이 뒤처진다는 것은 죽음으로 향해 질주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무리와 헤어져서 물소 떼에 갇히고 만 비련의 젊은 사자. 풀 뜯어먹고 사는 동물에게 사자고기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나 대대손손 자신들의 피와 살을 탐해온 이 악마 같은 존재에 대한 분노의 유전자가 종족 혼의 DNA를 지배한 걸까요? 어쩌면 단 한마리의 포식자라도 확실하게 제거하는게 종족의 안위를 지키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Latest Sightings Youtube 물소떼의 집단 공격으로 밟히고 짓뭉개진 사자가 물가까지 밀려오자 하마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광분한 물소떼들이 가련한 외톨이 사자를 향해 분노의 발길질을 퍼붓습니다. 발굽으로 짓밟으며 곤죽을 만든뒤에도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뿔로 걷어올려 허공으로 내동댕이 칩니다. 가련한 사자의 몸뚱이는 물소 뿔에 받혀서 공중제비를 여러 차례 돕니다. 그러다가 다시 바닥에 나동그라지면 발길질이 이어집니다. 그 잔혹한 집단 처형이 끝난 뒤 뼈가 부러지고 힘줄이 찢어지며 가죽이 엉겨붙은 사자의 몸뚱아리는 물가로 밀려옵니다. 그 광경을 늪의 깡패 하마가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사자를 상대로 집단 복수극을 완성한 아프리카 물소는 ‘버펄로’라는 이름으로도 친숙하지요. 사자·표범·코끼리·코뿔소와 함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5대 천왕’으로 꼽힙니다. 병든 개체나 어린 새끼는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지만, 머리몸통길이가 2.7m에 이르고 날카롭게 벼린 장검처럼 뾰족한 뿔을 가진 우람한 수컷은 다 자란 사자 몇마리가 덤벼들어도 쉽게 쓰러뜨릴 수가 없습니다. 1대1로 붙는다고 하더라도 어른 수사자를 능히 쓰러뜨리고도 남을 피지컬입니다. 한번의 공격으로 사자를 공중으로 내동댕이치는 물소의 파워플한 공격 한 번 보실까요?

이렇게 개별 개체의 공격에도 가차없이 나가떨어지는 사자인데, 집단 공격에 직면하면 어떻게 될까요? 분노한 물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뿔로 사자 몸뚱아리를 공중으로 내팽개치고 있는 두 편의 인스타그램 동영상(naturematata) 함게 보실까요? 이들에게 어쩌면 사자 들이받고 짓밟기는 분노와 적개심, 복수의 쾌락을 고취시키는 최고의 전투체육일지도 모릅니다.

아프리카 물소의 트레이드마크는 뿔입니다. 양옆에서 바깥을 향해 뻗다가 머리선에 맞춰 아래를 향하고 다시 위를 향해 뾰족하게 휘죠. 전세계 어느 야생소 중에도 이런 생김새를 한 무리가 없거든요. 암·수 모두 뿔이 돋는데,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이 그렇듯 수컷의 그것이 훨씬 장대합니다. 덩치가 커지면서 머리에서 뿔이 차지하는 면적도 점차 넓어집니다. 종내에는 머리 가운데를 향해 확장되다가 만납니다. 머리가 평생 벗겨지지 않는 거대한 투구를 쓰게 되는 셈인데 이런 상태를 보스(boss)라고 일컬어요. 거대한 투구이자 날카롭게 벼린 무기에 백수의 왕이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사자 떼의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최후의 저항을 하던 물소가 방심하던 사자를 향해 뿔 끝을 꿰어내며 치명상을 입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튜브 동영상을 잠깐 보실까요?

다섯마리의 사자가 성체 물소 한마리에게 달려듭니다. 그 과정에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자가 그만 물소 뿔에 어깻죽지가 그대로 꿰뚫렸습니다. 조금만 더 들어갔더라면, 뿔이 살갗을 꿰뚫고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꿰뚫지 않았더라도, 사자의 피와 근육, 살점은 물론 골격까지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피어싱’이 된 것이죠. 화면에 잡힌 장면만으로도 사자가 느낀 고통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결국 사자는 물소의 공격에서 벗어났고, 무리의 협업으로 물소를 쓰러뜨리고 피의 성찬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치명상을 입은 놈이 무리의 멤버로 온전히 살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실제의 사바나에는 병원도 없고 라이온킹의 맨드릴 원숭이 라피키 같은 주술사도 없으니까요. 더러는 사람들이 물소에게 공격당해 치명상을 입은 사자의 목숨을 구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소뿔에 살갗이 찢기면서 핏빛 조직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중상을 입은 사자가 긴급 치료를 받고 기력을 회복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Wild Life) 입니다. 상처 부위가 매우 적나라한 관계로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험상궃게 생긴 외모 때문에 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은 무지막지한 짐승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아프리카 물소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사회적 체계를 이루고 사는 동물입니다. 또 하나 돋보이는 건 다른 종과의 공존입니다. 사바나에서 아프리카 물소들의 친숙한 모습 중 하나는 등에 찌르레기나 백로 등이 주렁주렁 매달리다시피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이 작은 새들에게 물소는 ‘걸어다니는 식당’입니다. 덥수룩한 털 속에 진드기·벼룩·진딧물 등 맛좋고 영양가많은 먹거리들이 득시글거리거든요. 물소 입장에서는 이들 새들이 몸을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세신사이기 때문이죠. 특히 사자 등 포식자들이 다가올 때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경보기 역할도 하고 있고요.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