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05] 과학과 의도의 결합, 지도
외국의 성씨는 직업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애덤 스미스의 조상은 대장장이(스미스)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조상은 칼잡이(셰익스피어)다. 세계지도를 만든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의 조상은 장사꾼이다. 네덜란드어 메르카토르는 영어의 머천트에 해당한다. 세계를 떠돌며 무역을 하던 장사꾼의 후예가 세계지도를 만든 것이 우연은 아니다.
메르카토르 이전에도 세계지도는 있었다. 그것을 마파 문디라고 불렀는데, ‘커다란 천(마파)에 그려진 세상(문디)’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도라기보다 상상화에 가까웠다. 마파 문디에 에덴동산이 있을 정도였다.
상상이 만든 오류는 에덴동산에 그치지 않았다. 기독교 세계가 보기에 껄끄러웠던 이슬람 지역은 마파 문디에서 작게 표시되었다. 유럽에서 일본까지의 뱃길도 지나치게 짧았다. 아시아에 대한 정복욕이 가득했던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꿈은 금방 실현된다는, 자기 최면의 결과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 그 땅을 인도라고 굳게 믿었던 이유도 모든 마파 문디에서 인도까지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게 그려진 때문이다.
메르카토르는, 상상으로 범벅이 된 마파 문디를 폐기하고 과학적 방법으로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왜곡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극지방에 가까운 그린란드와 알래스카가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졌다. 나아가 왜곡을 일부러 조장하기도 했다. 지도 정중앙에 있어야 할 적도를 살짝 아래로 낮춰서 북반구를 부풀렸다. 그래서 미국 본토가 브라질보다 더 커 보인다. 남반구 사람들은 그런 지도를 제국주의의 산물로 여긴다.
왜곡은 세계지도뿐만 아니라 동네 지도에도 있다. 오늘날 많은 포털과 플랫폼 기업들이 동네 지도를 만든다. 거기에는 광고비를 낸 건물과 가게들이 강조된다. 결국 지도는 과학과 의도의 결합이다. 요즘 도처에서 쏟아지는 각종 새해 전망들도 마찬가지다. 작성자의 생각이 객관적 사실처럼 포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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