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한국 교회의 새해 풍속 ‘신년 말씀 카드’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3. 1.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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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예배에서 한 교인이 뽑은 '신년 말씀 카드'. 신년 말씀 카드 뽑기는 한국 교회의 신년 문화로 자리잡았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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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힘이 되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지난주 지인 한 분은 교회의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에서 뽑은 ‘신년 말씀 카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카드에는 ‘2023년 OOO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란 제목 아래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라는 구약 여호수아서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카드는 비닐로 코팅된 책갈피 형태로, 1년 동안 성경에 꽂고 다닐 것이라 했습니다. 말씀 카드는 여러 장이었는데 스티커처럼 뒷면에 풀칠이 된 것도 있어서 수첩이나 노트북 컴퓨터, 휴대전화에도 붙입니다. 1년 동안 이 구절을 기도 제목으로 삼고 “이 말씀따라 살겠다”며 마음의 다짐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작년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는 사사기 구절을 받았다고 합니다.

개신교 신자가 아닌 분들에겐 다소 생소하겠지만 ‘신년 말씀 카드’는 한국 개신교계의 신년 풍속도로 자리잡은 지 꽤 됐습니다.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정도 됐다는 이야기이지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한인교회에서도 신년에 말씀 카드 뽑기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신년 말씀 카드’를 입력하면 관련 내용들이 많이 보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풍경인 것 같습니다. 물론 ‘신년 말씀 카드 뽑기’를 하지 않는 교회도 많습니다.

지난 연말 새에덴교회 송구영신 예배에서 교인들에게 나눌 '신년 말씀 카드'가 상자에 담겨 있다. /새에덴교회 제공

‘신년 말씀 카드’의 ‘말씀’은 대개 교회의 목회자들이 추천한다고 합니다. 경기 용인 새에덴교회의 경우는 소강석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목회자들이 성경 구절을 추천한다고 합니다. 교회 목사님들은 교인들이 사업체를 새로 열 때면 격려가 되는 성경구절을 골라 액자로 만들어 선물하곤 하지요. 마찬가지로 대부분 새해를 맞아 교인들이 1년 동안 마음에 새기며 용기를 낼 수 있는 격려의 내용을 고르지요. 이렇게 취합한 구절 중 겹치는 것을 제외하고 700여종을 추린답니다. 각각의 말씀을 인쇄하고 코팅해 봉투에 넣어서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예배당 문 앞에서 목회자들의 축복기도를 받은 후 상자 안에서 봉투 하나씩을 무작위로 뽑아 가지요. 상자 안에는 700여 종이나 되는 성경 구절이 적힌 봉투가 들어있기 때문에 대부분 각각 다른 내용을 뽑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가족 구성원이 똑 같은 구절을 뽑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같은 성경 구절을 1년 동안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지요.

‘신년 말씀 카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엔 온라인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연말에는 대면 예배가 거의 중단되다시피했지요. 성탄절 예배도 송구영신 예배 때에도 모일 수 없었지요. 자연히 송구영신 예배에서 해오던 ‘신년 말씀 카드 뽑기’도 할 수 없었지요. 그런 아쉬움을 온라인을 통해 풀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인기를 끌었답니다.

한편 ‘신년 말씀 카드 뽑기’가 ‘비기독교적’이란 주장은 매년 연초에 반복적으로 제기되곤 합니다. 성경은 전체를 읽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은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데 한 구절만 떼어서 읽는 것은 비기독교적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제비뽑기하듯이 ‘뽑는’ 것도 미신적이라는 지적입니다.

반면, 긍정론도 많습니다. 우선 ‘말씀’을 목회자들이 고민해서 고른다는 점, 말씀을 뽑았을 때 내 삶에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할까를 고민하고 묵상하게 된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성남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는 과거 한 개신교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년 말씀 카드 뽑기’에 대해 “목회자들은 모든 교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 보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말씀을 정성껏 준비한다”며 “말씀 카드는 ‘이렇게 되리라’는 점쟁이의 부적이 아니라 격려의 말씀”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연초에 교인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심방 때 교인들이 받은 ‘신년 말씀’의 의미를 해설해 주기도 합니다.

작년말 새에덴교회 송구영신예배를 마친 후 교인들이 '신년 말씀 카드'를 뽑는 모습. 새에덴교회 제공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신년 말씀 카드’도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신년 말씀’이 ‘올해의 운세’나 ‘부적’은 아니니까요. 누구나 한번쯤 새 결심을 하는 신년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등의 좋은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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